소년이로 - 편혜영 소설집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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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실패"라는 제목을 붙여두었다던 작가는 우연에 미숙하고 두려워서 모른 척하거나 오직 잃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아픈 사람들이 많은 소설이어서 실패라는 말을 나란히 두기 힘들었다고 이야기한다. 편혜영의 다섯 번째 소설집이자 열 번째 책. 그녀의 단편들을 읽어나가면서 공감하지 못할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단편 하나씩을 읽어가면서 다음 글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던 소설집이었다.

"또다시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인생에 속아 넘어갔다."

편혜영의 주인공들은 누군가의 죽음이, 실수와 불운이, 사고가 결정적인 한 방으로 달라질 거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은밀한 시선으로 진행되는 글 같지만 무엇보다 날것의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글은 너무도 생생해서 때론 멈칫하게 되기도 했다. 담담한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글엔 명확한 사건의 개요도 단서도 주지 않지만 글을 읽으며 무한한 상상을 하며 읽다 보니 '아무도 탓할 수 없는' 사건들 속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놓지 못했던 글이었다.

삶의 곳곳에 감춰진 고통스러운 함정에 발 하나쯤 빠진 채 우두커니 서 있는 건 그리 큰일도 아니다. 편혜영의 단편들은 함정 옆에 세워진 작은 경고판이다. 이 경고를 읽고 당신만은 무사히 함정을 피해 가시길_김용원 편집장 추천사

23p.

그녀는 중학생인 유준의 얼굴을 어린아이에게 하듯 쓰다듬었다. 사람들이 다 총을 겨누고 있어. 공장과 나한테 말이야. 네 아빤 벌써 전사한 거나 마찬가지지. 유준 어머니가 돌연 낄낄거렸다. 유준은 연민에 찬 눈빛으로 어머니를 보았다가 이내 표정을 바꾸었다. 소진은 유준의 그런 표정을 불안한 마음으로 감지했다. _소년이로

111p.

수만은 그저 운이 없었다. 짐작할 수 없고 모르는 채 당하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애를 쓰거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준비하거나 노력할 수도 없었다. 그냥 벌어지는 일일뿐이다. 기민하고 착실하고 선량한 것과 상관없는 사고여서 도덕이나 양심을 문제 삼을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수만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누군가에게 엄청난 반감을 품었다. 소영이 생각하기에 그 대상은 모호하고 불확실하고 심지어는 아예 없는데, 수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_원더 박스

193p.

자주 원망하는 마음이 든다. 남편이 아니라 임시교사에게. 그런 생각이 들면 아찔해진다. 남편은 사과하지 않았다. 부인했고 아무 일도 아니라고 하다가 막판에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을 바꿨다. 어째서 남편이 아닌 임시교사가 원망스러운가를 생각하면 나는 참을 수 없다. 그건 남편이 왜 수치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인지, 발뺌하는 사람인지, 자신이 저지른 일의 결과로 겪어야 할 일을 두고 억울하다거나 부당하다고 말하는 사람인지 헤아리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_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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