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문구 - 나는 작은 문구들의 힘을 믿는다 아무튼 시리즈 22
김규림 지음 / 위고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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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부모님이 사주시는 연필들로 필통을 채웠다면, 용돈이란 걸 받기 시작하고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문방구에 드나들며 펜, 노트 등을 취향대로 골라 구입하는 재미를 알게 됐다. 이러한 소소한 즐거움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잘 써지는 볼펜, 취향의 노트, 포스트잇, 파일철 등등 분야를 점점 넓혀가다 뒤늦게 마스킹 테이프와 스티커의 세계에 빠지게 되었다. 포스트잇의 종류와 메모장의 디자인도 다양하지만 마스킹 테이프는 한번 빠져들면 개미지옥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무궁무진하고 금액도 천차만별! 그렇다고 이렇게 수집한 스티커나 노트들을 쓰냐? 하면 또 그건 아니다. 아까워서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끼다 똥 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겠지? 올해 초 열심히 수집했던 귀여운 문구들은 어느새 공구함으로 한가득이 되었고 필사를 하겠다고 펜과 노트를 야금야금 들이다 보니 여기저기 쓰다만 노트들이 꽤 돌아다니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문구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이런 소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써도 다 쓰지 못할 펜을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 펜이 나오거나 '이 펜 정말 좋더라.'라는 글을 보게 되면 구입하지 못해 몸살이 나곤 한다. 간혹 외출을 하게 되면 문구 관련 코너는 꼭 들러 아이쇼핑이라도 한다. <아무튼, 문구>의 김규림 작가의 글을 읽으며 덩달아 행복하고 문구인으로 앞으로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길 바라기도 했다. '그래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건 거창한 게 아니야, 소소한 작은 물건 하나에도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지.' 그리고 알토란같이 소개해준 문구들도 챡챡 메모해두었으니 조만간 외출길에 몇 종류 구비해둬야겠다.

14p.

사랑에 이유가 있나 그냥 좋으니까 좋은 거지 생각했는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문방구에 대한 내 사랑은 꽤나 깊은 사랑이었구나 싶다. 무언가에 쉽게 빠지고 또 금방 질리는 성격임에도 문방구에 대한 사랑만큼은 해가 갈수록 깊어진다. 많은 것이 디지털화되어가는 요즘 세상에서도 나는 아직도 문구류를 활용해 손으로 직접 쓰고 붙이고 만드는 걸 제일 좋아한다. 수고로워도 즐겁고, 투박해도 따뜻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평생을 문방구와 함께 하지 않을까 싶다. 꼭 그랬으면 한다.

21p.

문구를 사용하면서 생각나는 차분하고 고요한 순간들이 참 좋다. 그저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만으로도 갑갑한 마음이 해소되고 위로를 얻었던 순간의 기록들. 그 순간들이 모여 한 권 한 권 책으로 쌓여간다.

38p.

아끼는 물건들로 복닥거리는 내 책상을 좋아한다. 긴 하루 끝에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으면 안도와 위안이 몰려온다. 하루 평균 8시간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평일의 3분의 1 정도를 책상에서 보낸다고 할 수 있겠는데 (사무직이라면 말이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곧장 책상 앞에서 보내는 셈이다. 그러니 책상 위에 부지런히 사물들을 들여놓고 사용하고 기록하는 행위는 결국 나의 삶을 가꾸는 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더 살뜰히 가꿔야겠다. 책상도, 나의 삶도.

49p.

나의 문구 서랍에는 같은 물건이 늘 여러 개씩 있다. 써보고선 좋다 싶은 문구는 곧장 문구점으로 달려가 두세 개씩, 혹은 몇 박스씩 더 사놔야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고 마음껏 쓰기 위한 생존 전략이랄까.

94~95p.

문구의 세상은 결코 실용성만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나는 쓸데없는 것들의 힘을 믿는다. 생필품들은 삶을 이어나가게 해주지만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쓸모없는 물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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