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의 시작 오늘의 젊은 작가 6
서유미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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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생한 생명력을 자랑하던 엄마가 어느 날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아내는 이혼을 요구해오고 영무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이혼 유예를 부탁한다. 여진과 사랑이 깊어서 결혼 한 건 아니었지만 이혼 통보는 영무에게도 충격이었다. 아내가 힘들어하는 것도 알고 있었고, 유산했을 때도 보듬어 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다가서야 할지를 몰랐다.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자신의 일은 잘하지만 도통 곁을 주지 않는 것 같은 사람. 이 남자라면...이라는 생각에 여진은 결혼을 강행했지만 막상 결혼하고 나서 보이는 영무의 행동은 조금 더 다가와 주기를 바라는 여진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여진은 그런 생활에 점점 지쳐가기만 한다. 20대의 소정은 평범한 남자를 만나 남들과 비슷하게 사는 것도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가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연인인 진수는 소정의 삶에 겹겹이 드리워진 가난 앞에 자주 당황하고 의아해했다. 하지만 소정의 처지를 함께 고민해주며 종종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별, 상실, 공허... 저마다의 끝에서 상처받은 사람들

어쩜 하나같이 안타깝고, 아프고 아린 인물들인지... 아내의 애인이나, 남자친구의 새로운 연인도 악한 면이 없다. 보통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면 그 원인을 상대방에게 찾으려 하거나 원망의 대상을 찾기 마련인데, 그 과정이 순하게 느껴지면서도 과정의 감정이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악이 없이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구나... 너는 너의 삶을 나는 나의 삶을... 묵묵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아픔은 감당하며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승우 소설가의 추천사처럼 '베인 상처 위에 붙일 수 있는 밴드'같은 소설이다. 상처가 바로 아물지 않겠지만, 밴드를 붙였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지 않은가? 마음에도 밴드를 붙이고 싶은 순간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은 글이었다.

54~55p.

두 사람은 처음부터 아빠가 안 계시고 엄마는 아프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 궁색한 졸업 예정자 신붓감과 부모님도 다 살아 계시고 집안 형편도 넉넉하고 번듯한 회사에 입사할 계획을 가져 좋은 평점을 받게 된 신랑감으로 만난 게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수록 둘의 연애는 그런 식의 평가에 자주 노출되고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그럴 때마다 소정은 아무렇지 않은 듯 반응했으나 덤덤한 척하는 데 한계를 느꼈고 진수는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도 표정이 복잡해졌다.

75p.

사춘기 이후로 늘 진정한 사랑을 꿈꾸고 사랑에 빠지기를 갈망하며 열심히 달려왔는데 사랑은 늘 그녀의 영역 밖에서 빛났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존재가 터질 것 같은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거울에 선명하게 비치던 목주름이 떠오르자 조바심이 취기처럼 올라왔다. 서른여덟 살이 되도록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흉내만 내며 살아왔다는 걸 깨닫게 되면 사랑 앞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내면의 온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104p.

아버지가 떠오를 때마다 영무는 감정과 사람에 대해 냉담해졌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갈등에 대해 짐작하지 못했으므로 그가 흔들리는 걸 눈치채는 사람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에 대해선 많이 자유로워졌으나 어떤 상황 앞에서 뜨겁게 달아올라 뛰어들고 싶을 때마다 끓어오르는 자신을 차분하고 냉정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자신을 외면하기가 어려웠다.

138p.

사랑이 끝난 것에 대해, 이별의 이유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될수록 설명의 방식이 달라진 다는걸, 주관에서 객관으로 옮겨 간다는 걸 깨닫게 될 뿐이었다. 예전에는 자신의 느낌이나 직관에 맞는 표현을 찾기 위해 애썼다면 이제는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틀에 맞추고 통용되는 언어로 말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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