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의 사랑 오늘의 젊은 작가 21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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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의 사랑>은 '내가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가 되다니!'라는 놀라움과 감탄 속의 첫사랑 이야기다. 생각해보면 학창시절 동경했던 대상은 멀고 먼 연예인보다 가까이 있었던 친구, 선배들이었던 것 같다. 교복 치마 안에 체육복 바지를 껴입고 쉬는 시간이면 복도로 뛰어나가 말뚝박기를 하고, 수업 중에 도시락을 까먹기도 했다. 짓궂게도 수업종이 치기 직전 학급 임원들의 블라우스를 헤집어놓기도 했다. 짝사랑하는 선생님들에 대한 애정표현 또한 진지했던 소녀 시절, 지금 생각해보면 '사랑'에 거침없었던 시절이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제목과 책표지가 너무 예뻐서, 그 시절 우리를 사로잡았던 것에 대한 이야기는 짧은 분량이라 앉은 자리에서 읽어낼 수 있는 글임에도 조금씩 아껴가며 읽었던 것 같다. 여중, 여고, 여대를 졸업한지라 여학생들 특유의 짓궂음이라던가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여학생들의 분위기, 무리들.. 이런 추억들이 새록새록 해서 추억여행을 한 듯한 기분이 드는 글이기도 했다. 빛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시간이 흘러 돌아보니 참 예쁘고 반짝였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 시절 함께 했던 그녀들이 문득 궁금해진다.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14p.

이 애는 내게 왜 이렇게 해 줄까? 어린 마음에도 인희의 행동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인희는 나를 특별한 친구로 선택한 듯했고, 나는 다른 모든 일들에 그랬듯이 그 호의를 그저 받아들였다. 그 아이가 요구한 우리 관계, 나의 자리를 수락했다. 내게는 더없이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인희를 통해 매사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는 관계, 마음 편한 관계가 가능하다는 걸 배웠다. 인희와 어울리면서 나는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다.

82p.

왜 누군가를 사랑하면 갑자기 주변 모든 사람들이 위협적일 만큼 매력적인 존재로 보이는지 모르겠다. 아름다움은 도처에 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나는 울고 싶어진다. 그들은 모두 아름답고, 모두 나의 적이다. 그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둘러싸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들의 매력을 알아볼 것만 같아서 나는 애가 탄다. 그들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어 보인다.

135p.

한 번도 실제로 본 적 없는,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고 친해질 수도 없는 애인이었다. 자기가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다들 그런 애인을 한 명씩 갖고 있었다. 한 번은 민지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오빠가 진짜 그 오빠가 맞을까?

150p.

"우리 고등학교 때 말이야. 그건 다 뭐였을까?"

나는 인희의 시선을 피한 채 단호하게 말했다.

"그땐 다 미쳤었어."

157p.

선배, 나 선배를 진짜 좋아했어. 정말 정말 좋아했어. 그만큼 미워하기도 했지만. 그때는 매 순간 선배 생각만 했었고, 선배와 같이 있을 땐 아무것도 부럽지 않았어.

168p.

이건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제 서른이 넘은 나는 그 모래사장에서 처음으로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가 말한 사랑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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