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뺀 세상의 전부 - 김소연 산문집
김소연 지음 / 마음의숲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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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과 함께 살아가므로

완성되어간다.



  특정 작가, 책표지, 제목에 끌려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꽤 많은 편이다.  김소연 작가의 책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읽다가 덮어둔 채 완독하진 못했던 책이었구나!  책표지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책표지가 시선을 더 끌었다.  유난히 포근하게 느껴졌던 겨울, 곧 봄이 올 것만 같은 연둣빛에 어중간한 계절을 나고 있는 듯한 외투를 걸친 한 사람. 표정이 밝아 보이진 않아서?  시크해 보여서? 호감이 가기도 했다.   이 책이 더 끌리니까 <나를 뺀 세상의 전부>부터 읽어보기로 한다.



  나를 뺀 세상의 전부, 내가 만난 모든 접촉면이 내가 받은 영향이며, 나의 입장이자 나의 사유라는 걸 믿어보기로 했다.  이 사소한 하루하루를 읽고서 누군가는 부디 자신을 둘러싼 타인과 세상을 더 멀리까지 둘러보게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하루하루가 차곡차곡 쌓여서 언젠간 아주 먼 곳까지 다가갈 수 있다는 걸 끝까지 믿으며 살아가고 싶다.  /책머리에 

  선물은 주거나 받는 것이라기보다는 되는 것이라고.  선물이 되는 사건.  선물이 되는 시간.  선물이 되는 사람.  선물이 되는 말.  선물이 되는 표정.  선물이 되는 사람이 선물이 되는 말과 함게 선물이 되는 표정을 지으며, 자그마하고 사소한 선물 하나를 건넸을 때, 그것은 선물이 되는 시간이자 선물이 되는 사건이다.  그때 손과 손 사이에서 전달되는 사물 하나는 그 무엇이어도 상관이 없다. /p23

 

  자신의 일상을 글로 담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왜일까?  글로 표현하는 연습이 부족한 탓일까?  아니면 생각의 깊이가 약간은 제한적이기 때문일까?  사실 글 읽기는 즐기는 편이지만, 짧은 글이라도 하루의 일과를 간단하게 기록하는 것 외에는 글이라곤 써본 일이... 없다.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의 에세이와 산문집을 찾아 읽지만 읽어도 '내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크게 들지 않는 걸 보니 글쓰기엔 소질이 없는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이다.   쉽게 읽히는 문장은 아니다.  때론 문장을 읽고 또 읽기도 했고, 눈길이 머물러 생각이 깊어지는 페이지도 있었다.   



  문학은 악몽과 현실 사이의 온도 차이에 맺힌 결로처럼 존재한다.  이젠 악몽보다 현실이 더 지독해졌다.  악몽의 내부에서 더 지독한 현실을 내다보며 문학은 겨우 지탱하고 있다.  악몽을 현실과 혼동한다는 죄목을 짊어진 채로 문학은 장문의 테두리를 타고 결로처럼 맺히는 듯하다. /p44 

  결혼과 출산에 의한 가족이 아닌, 다른 방식의 가족을 탄생시키며 사는 이들을 요즘은 꽤 자주 목격한다.  오랜 고정관념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삶을 꿈꾸는 이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내게도 새로운 꿈이 생긴다. /p71 

  우리는 빨라도 너무 빠르다.  빠른 것이 주는 편리함을 지나치게 선호한다.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오랜 끈질김이 아니라 속도일 때, 그 위태로움이 무섭다.  /p117


  시인의 산문집은 어떨까? 하는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한 글은 쉽게 넘길 수 없는 페이지들을 종종 마주치기도 했다.  한 달에 한 권쯤은 시집으로 읽으려고 노력 중인데, 요즘 시집 다운 시집을 읽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읽다 보면 이런 글도 '시'가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  어쩌면 시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해서 글을 탓하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에 글을 탓하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나'와 부딪힌 세상에 대한 이야기와 쌓인 시간들의 이야기는 조금은 천천히 살아가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생각하고 기록하고 손으로 짚어가며 읽었던 문장들이 꽤 많았던 나를 뺀 세상의 전부 살아가다 걸림돌에 걸려 넘어졌다고 생각될 때, 나만 뒤처진 게 아닐까 싶을 때 읽어보길 조심스레 권해보고 싶은 책이다.



  독자는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적혀 있는 시집을 찾아 헤맨다.  꼭 듣고 싶은 한마디가 시에 적혀 있기를 바란다.  이 시대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사랑한다는 말도, 희망이 있다는 말도, 인간을 믿어보자는 말도,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다는 말도 뻔히 거짓말인 줄 다 아는 시대다.  어쩌면 뻔한 거짓말이 거짓말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다시 한번 고려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시가 다시 읽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 번 사람을 믿어보겠다며 다른 방식으로 고백해보고 싶어서 시집을 선물하게 되는 건 아닐까.  /p173 

  어쩌면 인생 전체가 이런 시행착오로만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죽는 날까지 경험할 필요 없는 일들만을 경험하며 살다가 인생 자체를 낭비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을지라도, 커다란 후회는 안 해야겠다 생각한다.  수많은 인생 중에 시행착오뿐인 이생도 있을 테고, 하필 그게 내 인생일 뿐이었다고 여길 수 있었으면 한다.  대신, 같은 실수가 아닌 다른 실수, 같은 시행착오가 아닌 새로운 시행착오, 겪어본 적 없는 낭패감과 지루함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빛나는 경험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걸 이제는 안 믿는다.  경험이란 것은 이미 비루함과 지루함, 비범함과 지극함을 골고루 함유하기 때문이다.  /p252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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