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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엄마와 인도 여행이라니! - 세 여자의 ‘코믹액숀’ 인도 방랑기
윤선영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7년 12월
평점 :

환갑 다 된 엄마가 인도에 가겠다고 말했다.
골드미스 이모와 서른한 살 딸과 함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미친 짓이다!
모녀의 여행 에세이에 관심이 많다. 근 10년 가까이 엄마랑 여행을 가야지 않겠냐며 이야기하는 자매들이랑 시간을 맞추지 못한 건 집안의 대소사도 있었지만 올해 69세의 연세에도 매일 같이 매장에 출근하시는 부모님의 일정을 조율하기가 쉽지 않은 탓도 있었다. 그래서 이런 여행 에세이들이 보이면 먼저 읽어보고 엄마, 아빠 눈에 잘 띄는 곳에 슬쩍 놓아두기도 했다. 언젠가 엄마가 넋두리처럼 "너네 어릴 땐 너희 아빠가 해만 넘어가면 나 데려오라고 너희를 보내서 내가 이 나이 되서 친구가 하나도 없잖아." 하시는데 그게 왜 그리도 슬프게 들리던지.....
지극하게도 옛날 사람인 아빠는 '어디 여자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는 분이다. 그래도 그런 아빠가 어린 시절엔 넷이나 되는 우리 형제를 데리고 여름이면 이고지고 어디는 휴가를 떠나서 추억을 만들어주시고 집안 대청소를 할 때면 엄마는 열외! 였다는 거? 두 분이 여행도 꽤 많이 다니셨는데, 자영업 12년 차가 되는 기간 동안 어딘가를 떠난다는 게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일이 되어버렸다.
엄마와 딸의 여행은 옳다. 거기에 까칠한 골드미스 이모까지 낀다고 했을 땐 '이 여행 쉽지 않겠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행선지도 심지어 '인도!!!'. 심상치 않았던 여행 멤버와 여행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참으로 기대가 됐지만, 눈여겨보게 되었던 건 역시 엄마가 여행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딸이 생각했던 엄마의 이미지는 잊어라. 여행지에서는 내 엄마가 아닌 '생활 여행자'인 박귀미 여사일 뿐이었다. 살림만 하시던 엄마가, 해외여행은 가본 적 없었던 분이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 멤버들 중 누구보다도 즐겁게 인도에서의 여행을 즐기는 분이 되셨다. 딸의 여행을 적극 지지하다가, 딸과의 여행에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라서 책으로만 읽었던 인도를 직접 경험했던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두근거렸을까?
엄마 또는 아빠와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한 번쯤 권해보고 싶은 글이다. 꼭 여행을 계획하고 있지 않더라도 글을 읽고나면 어디든 함께 떠나고 싶어질 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엄마와 인도여행이라니 책장을 넘기며 '엄마랑 여행을 한다면?' 이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 시작했다.
처음이었다.
가까운 사람과 배낭여행을 하는 것이.
걱정됐다.
잘할 수 있을까 싶어서.
이 여행을 무사히 끝낼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일어나 무릎을 꿇고 인도의 '시바 신'에게라도 기도를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p37
사실 나는 엄마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항상 엄마는 엄마라고만 생각했다.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에 대해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길을 가다가 신기한 것을 만나면 휴대폰 카메라를 드는 엄마.
영어는 못하지만 인도인에게 나보다 더 다정하게 말을 거는 엄마.
맛이나 보라며 사다준 망고를 맛있게 먹는 엄마.
창밖에 있는 물건들을 자세히 관찰하는 엄마.
나는 이번 여행이 '엄마와 딸'의 여행일 뿐만 아니라 '58세, 박귀미 씨'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여행이 되었으면 한다. /p87
나는 여행이 끝날 때쯤 엄마에게 꼭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여행하니까 어때? 뭔가 달라진 게 있어?"
"음...."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엄마가 입을 열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혹시라도 다음 생을 산다면 나는 다르게 살아볼 끼다. 더 많이 도전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세상을 구경하고, 그동안 닥치지도 않은 일들을 왜 그렇게 두려워하며 살았나 후회가 된다."
엄마의 말은 내 질문에 대한 답이라기보다 엄마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이었다. 나는 쟁여놓았던 또 하나의 질문도 던졌다.
"엄마도 인도가 좋아?"
"좋지! 아주 좋다. 좋아!" /p219
혼자 좋은 것 보고 다니는 게 죄송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에 대한 기대 때문에 벌인
'여행 이벤트'가 왠지 헤어 나올 수 없는 블랙홀이 된 것 같다고
느끼는 건 나 뿐일까?
세상에 처음나와 마냥 수줍던 엄마가 인도와 친구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