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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할 지도
김성주 사진.글 / 카멜북스 / 2018년 12월
평점 :

어쩌면 산다는 건 각자의 세상을 여행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세계일주(世界一周) 아닌 생애일주(生涯一周)를 말이죠.
'바닥난 통장 잔고보다 고갈되고 있는 호기심이 더 걱정인 어른' 김성주 작가의 어쩌면 할 지도 는 선뜻 일상을 뒤로하고 떠날 용기를 내지 못해 일상으로부터의 갈증을 느끼고 있던 차에 읽게 된 글이었다. 고갈되고 있는 호기심이 더 걱정인 어른...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해마다 돈벌이에 대한 고민으로 현실을 뒤로하지도 못하면서 어설프게 걸쳐있는 현실. 미루고 미루다 책장을 넘기며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던 건, 현재를 살아내기 급급했던 조급함에 조금의 여유도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한 번을 산다는 것은 하루를 산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생을 굳이 수많은 하루들의 집합이라 풀어 말하지 않아도, 그의 한마디에서 나는 일생(一生) 못지않은 일생(日生)의 무게를 보았다. /p18
따지고 보면 처음이 아닌 하루가 어디 있으며, 능숙하기만 한 여행이 어디 있겠어. 같은 도시를 몇 번이고 다시 찾아도 이야기는 매번 새로운데, 장소에 익숙해지고, 시간에 능숙해지면 그것을 더 이상 여행이라 부르지 않잖아. 일상 아니면 일이라고 하지. 적어도 여행 그리고 인생에선 미숙함의 반대말이 익숙함 혹은 능숙함은 아닐 거야. /p164
이곳이 아닌 저곳을 여행하는 이들의 삶에도 나름의 고충이 있을 테지만, 살아가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이의 삶은 그 삶이 어떠할지라도 빛나 보이는 것 같다. 한 발자국이 어렵다. 조금 더 일찍 한 발자국만 내디뎠더라면,이라는 생각을 나이가 들어가며 조금씩 하게 된다. 살아가며 겪는 어떤 일이 그렇지 않을까? '그때 그랬더라면' 하는 후회는 나이를 불문하고 해당되지 않을까?
‘서툴지 않은 여행이 있을까? 있다면 그것을 사랑할 수 있을까?’
여행은 그 안에 미숙함이나 서투름 같은 풋내 가득한 의미들을 품고 있기에 누구에게나 아름답다. 삐뚤빼뚤 적힌 꿈을 안고 날아오른 천등을 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이미 그들이 품은 소망의 절반쯤 이뤄진 듯 행복에 차 있었던 것처럼. 여행을 삶으로 바꿔도 등식은 변함없이 성립할 것이다. 나는 엄마가 되는 것도, 아이들을 키우며 겪는 일도 모두 처음이라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는 엄마의 말을 통해 그것을 확인했다.
인생에 익숙한 이는 아무도 없다. 능숙해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생의 무게는 훨씬 가벼워진다. 그동안 인생의 여러 ‘처음’들 앞에서 미숙함과 서투름을 실패의 다른 이름으로 여기며 어리숙하게 보일까 두려워했던 내게 스펀에서의 짧은 오후는 긴 위로로 남았다. 어떤 형태든 모든 삶은 날아오를 수 있다는 희망도 함께./p175
혼자 여행,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여행을 계획하게 되는 건 함께 떠날 친구나 지인이 있을 때만 마음먹게 된다. 준비가 되어야 떠날 수 있다는 강박 때문에 여행 준비를 하고 또 하고, 출발 전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고 있다가 비행기에 올라서야 내려놓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아직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1인이기도 하다. 핫스폿을 짧은 시간에 많이! 가 목표였던 게 초창기 여행의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하루 3~4곳을 넘지 않게 일정을 조절할 줄 아는 여유도 생겼고, 이번에 못 보면 다음에...라는 너그러움도 생겼다. 물론 다음에 다시 방문하게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장담은 없지만 아무리 짧은 일정이라도 하루의 시간 정도는 현지인처럼 조금은 늘어져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완벽하지 않기에 여행은 '다음'을 생각하게 하는 게 아닐까? '그랬더라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이 우리를 또 길 위로 부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김성주 작가의 글을 읽으며 때론 그 길 위에 있는 것 같았고, 책을 읽다 말고 항공권을 검색하며 예전 여행했던 사진들을 찾아보게 되기도 했다. 책장을 덮으며 더 짙어진 여행에 대한 갈증, 올핸 가까운 국내라도 잠시 떠나봐야겠다. 김성주 작가의 글과 사진을 읽고 사진을 넘기다보면 어느새 항공권을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지도... ^^
우리의 생을 품기에 이 세상은 너무 좁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여행을 떠나 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손에 쥔 스마트폰 화면 바깥에, 사람들을 욜로(YOLO)라는 말 너머에 각자가 품은 세상이 있으니까요. 그 안에 있는 대륙과 해협, 초원과 사막을 발견하며 나만의 세계 지도를 그려보는 것, 그것이 제가 여행하는 이유입니다. /p315
'나는 주인공으로 여행하고 있는가?' /p268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