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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단어들
에피톤 프로젝트 (Epitone Project) 지음 / 달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봄 같은 책을 들었다. 사계절 중, 겨울이 가장 힘든 나에게 겨울은 마음이 가는 책을 읽으며 견뎌내는 계절이기도 하다. 해가 갈수록 겨울을 버티는 일이 점점 고통스럽다. (하....) 흔히 말하는 덕질도 해보지 못했다. 책을 읽으며 선호하는 작가가 조금 늘었을 뿐 음악을 듣는 취향도 딱히 없어 책을 읽을 때 크게 방해받지 않는 정도의 팝을 즐겨듣곤 하는데 매장에서 플레이하는 음악 중 귀에 들어오는 노래들은 무한 반복으로 듣기도 한다. 2~3년전쯤?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반이 그랬다. 그 당시 이런저런 일들로 책 읽기도, 일도 겨우겨우 해내던 시기였으니까... 그런데 위로처럼 노래로 위안을 받았던 시기가 있었다.
봄은 늘 거짓말처럼 다녀간다.
온 듯 만 듯, 아는 척 모르는 척, 취한 듯 아닌 듯.
만우절 농담처럼. 그날 마신 몇 잔의 낮술처럼 /p051
글을 쓰는 사람, 특히 좋은 문장을 쓰는 사람에게는, 늘 존경 이상의 경외심이랄까, 그런 마음이 있다. 잠시 품은 나의 꿈 중에 하나는 극작가였다. 베케트까지는 너무 먼 이야기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극', 배우의 대사 한 줄을 창조하는 '작가', 그런 것들이 너무 멋있게 느껴졌었다. 극 전체를 뒤흔들며,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맞춰봐,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아니, 지금이 정말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야기에 홀딱 빠져 정신 못차리게 만드는 사람. 거짓말도 진짜로 믿게 만드는 사람.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사람. 나에게 '작가'는 그런 직업이었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p070~071
노래를 하는 사람은, 만드는 사람은 시인인 걸까? 마음속 단어들을 꺼내어 어떤 모양인지 보고 싶어 글을 쓰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고 자신의 마음으로 인해 상처받은 이는 없는지 슬프거나 괴로운 이는 없었는지 생각해보게 되는... 글을 읽는 것과 다르게 쓴다는 건 자신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게 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게 아닐까? 누가 대신해줄 수 없고, 오롯이 나만이 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행위. 글쓰기는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생각하고, 마음에 담긴 말들을 꺼내어 글로 쓰기까지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꾸미지 않고 쓰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나 결국 내가 머무르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다시 떠난다. 매번 여행을 떠나며, 나 스스로에게 하는 주문. 내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새로워질 수 있을까? /p074~075
계획한 대로, 마음먹은 대로 세상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저 내일 날씨를 예측할 뿐이지, 정작 내일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비가 올지, 오지 않을지, 온다면 얼마나 올지. 정확한 것은 내일이 되어봐야 알 수 있다. 그래서 가방 한켠엔 늘 우산이 필요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갈아 신을 양말도 챙겨 넣게 된다. 우리는 살아본 적 없는 내일을 기다리고, 우산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겹겹이 흘러간 시간들을 어제라는 이름으로 머릿속에 적어놓는다. /p155~157
내가 너에게 다가가려 했을 땐 너는 저만치 멀어져 있었고,
네가 나에게 다가오려 했을 땐 나는 너에게서 조금 더 멀어져 있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도버해협의 터널 같은 시간을, 우린 서로 스치듯 지나고 있었다.
너를 생각한다.
너는 내게 멜로디의 연속성과 화음의 지속성이라는 것에 대해. 가장 정확히 알려준 사람이다. /p171~172
/p171~172
일상을 떠나 런던에서의 짧은 생활을 이어가며 집필한 글은 음악을 생각하며 살고, 낯선 곳에서의 생활로 일상에서 찾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하는 순간들을 기록하기도 했다. 때론 사진가가 직업인가? 싶을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카메라에 관한 에피소드와 사진들은 그가 풀어놓은 마음속의 단어들을 한층 더 가깝게 느끼게 하기도 한다. 마음속의 단어들 한겨울 지독한 차가움 속에 잠시 마주한 따스함 같은 글을 다 읽고, 다시 한번 넘겨보며 그의 최근 앨범을 찾아 재생해보았다. 앨범의 타이틀도 [마음속의 단어들], 책표지는 겨울이지만 앨범의 노래들도 글의 분위기도 겨울을 닮아있는 느낌이었다. 에피톤 프로젝트 음악도 잘하는데, 글도 잘 쓰는 가수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마음이 아팠고, 모든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다른 계절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시간 동안 가만히 살폈습니다. 내 마음의 모양이 이렇게 생겼는지를,
언젠가 연약함을 감추려 뾰족하게 굴던 내 마음은, 조금 무뎌졌을까...하고 말이죠.
꽤나 긴 꿈속에서
찾아 적은 멜로디들입니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지우고 고쳐쓴
마음속의 단어들입니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