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아 우주인
야로슬라프 칼파르시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관측된 적 없는 혜성 하나가 태양계로 진입하면서 거대한 먼지 폭풍을 일으키고, 사람들은 이 특이한 현상을 ‘초프라’라고 이름 짓고 세계 각국은 지구로부터 4개월 떨어진 곳에 있는 이 먼지 입자를 분속해 우주를 연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인구 천만의 작은 나라 체코의 외딴 마을에 조부모와 함께 살아가던 야쿠프가 세계의 이목이 쏠린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주인공이 되는데.... 위험하고 고독한 여정은 그가 꿈꾸던 영웅이 되는 길이며, 체코가 공산주의 국가가 되는 데 일조한 아버지의 죄를 씻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렌카가 날 떠났다. 이번에도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그녀를 정확하게 읽었던 것이다.  아내는 예전에도 날 떠난 적이 있다. 부모님 기일 전후에 유산한 아내를 홀로 둔 채, 내가 연구실에 며칠씩 처박혀 지낼 때였다. 그때는 내 두 다리가 중력에 고정되어 있었고 아내를 뒤따라 지하철역으로 뛰어갈 수도, 열차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 앞에서 다시는 절대로 혼자 내버려 두지 않겠다며 용서를 구할 수도 있었다. (물론 우주선 안을 떠다니는 지금은 그 말이 거짓이었음을 안다.) 그리고 열차가 도착했을 무렵 아내는 내가 손에 키스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옷 가방을 넘겨주었고, 우리는 망가진 결혼 생활을 어떻게 개선할지 협상할 수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곳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  한 시간이 지날 때마다 나는 아내로부터 3만 킬로미터씩 멀어지고 있다. /p50~51


야쿠프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아버지와 그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를 묘사한다.  야쿠프는 아내 렌카와 행복하게 살아갈 수도 있었는데 궂이, 왜! 영웅이 되고 싶어 했던가?   야쿠프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유년시절 갑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  조부모와 함께 살면서 어느날 찾아온 낯선 사내의 등장 이후 바뀌어버린 마을의 분위기 때문에  떠밀리듯 떠나와야 했던 고향과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집안이 무너졌다고 생각한다.  


성인이 된 야쿠프가 사랑하는 아내와의 잠시 헤어짐을 결심하고 우주비행을 하며 홀로 지내는 시간들의 독백은 아마도 자신이 지구를 떠나 있어도 자신을 기다려줄 이는 아내 렌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인다.  하지만 갑자기 떠나버린 아내,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야쿠프는 아내가 떠난 원인을 알지 못해 답답해하고, 우주선에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있다는 걸 느끼고 대화를 나누고 음식도 나누어 먹으며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하누시’와의 대화하며 그가 떠나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사실 저는 불행해진 지 꽤 오래되었어요.  우리가 가족을 꾸리게 되리라는 그이의 기대 때문에, 그이가 품고 다니는 죄책감 때문에, 내 인생보다 자신의 인생에 늘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내 노력과 불안감은 늘 대부분 뒤로 미루어두고 말았어요.  우리에게 결혼이라는 프로젝트는 거의 모두가 야쿠프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죠....(중략)....그이는 과거의 렌카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자신은 과거와 똑같은 야쿠프일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헤어진 그곳에서 마치 지나간 8개월이 그렇게 길지 않았던 것처럼 다시 시작할 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거리, 실패의 가능성 그리고 그이가 스스로 짊어진 위험이에요.  저는 페넬로페가 아니에요.  빈둥대며 영웅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싶지 않아요.  해변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세상을 정복하고 돌아오는 그이의 배를 예쁜 모습으로 기다리는 서사시 속 여인의 삶을 원하지 않아요. 끔찍하게 들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 삶은요? 제 희망은요?  그 모든 것이 야쿠프와 연결될 수는 없어요.  그냥 그럴 수 없다고요. /p315~318

“나는 몇 시간 동안 방 안에서 냉혹한 낯선 사람과 함께 인생을 만들었다.”  신발 사내가 말했다.  “야쿠프, 그걸 깨닫는 데 너무 오래 걸렸어.  네 아버지는 내게 그런 짓을 하기는 했지만, 어떻게 살겠다고 마음먹은 건 여전히 내가 내린 결정이었어.  내게 이 방은 기폭제였다.  네 아버지의 기폭제는 세상이 적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마음먹은 날이었지.  네 기폭제가 분노나 두려움, 뭔가를 잃어버린 상실감이 필요는 없어.  네 인생의 의미는 렌카나 네 아버지 또는 나한테 있지 않아.  물론 나는 가증스러운 짓을 했다.  널 지켜봤고 네 삶에 주제넘게 관여했지만, 선택은 모두 네가 한 거야.  너는 네 아버지와 나보다는 훨씬 훌륭했어.  넌 이런 상황이 너 자신을 해치도록 두지 않을 거야.  꼭 우리와 같은 종말을 맞이할 필요는 없다.” /p383~384


야쿠프가 원했던 야먕이 아내 렌카의 야망이기도 했을까?  야쿠프가 그토록 원했던 아기를 렌카도 원했을까? 그가 우주비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렌카는 떠나기 전과 같은 마음일까?  그가 ‘초프라’의 먼지 입자를 수거하는데 성공하고 돌아와 영웅이 된다 한들 그들에게 더 나아지는 것이 있을까?  단지 야쿠프 한 사람만의 독단적인 야망과 욕심이 아니었을까?  <보헤미아 우주인>은 SF 소설이지만 혼자만의 독백, 우주인의 등장(환각일지 모르는?) , 우여곡절 끝에 지구로 다시 돌아오지만 죽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야쿠프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주비행을 하면서 하는 독백들보다 떠나기 전과, 후 야쿠프와 렌카의 이야기들에 집중하게 됐다.  어쩌면 우주비행사들이 주인공인 SF 소설을 읽으며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는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으로부터 자극을 받고 변해가는지, 그것이 스스로의 선택일지 아니면 상황에 의한 어쩔 수 없는 끌림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우주에서 미쳐버리는 고통 대신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한 인간의 이야기였던 <보헤미안 우주인>은 SF소설을 새롭게 보게 했던 흥미로운 글이었다. 

 


그렇다.  이 세상에 남겨진 것들이 있다.  나는 우주를 지나 여행했고, 비할 데 없는 진실을 목격했지만 여전히 이곳 지구의 생활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본 것이 없다.  어떤 것들은 불멸의 영혼 속에 존재하면서 자신의 무한히 깊은 곳에 있는 모든 것을 느끼기를 갈망한다.  우주 그 자체처럼 끝이 없고 무한히 확장한다.  /p404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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