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플라이트 오늘의 젊은 작가 20
박민정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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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 사이에서 미루고 미루어 두었던 <미스 플라이트>를 꺼내들었다.  노조와의 갈등으로 끝내 죽음을 선택했던 '유나',  평생 몸담았던 군에서 관성처럼 비리에 침묵했던 '정근'.  딸과 아빠의 이야기는 항공사, 승무원, 갑질, 인권 침해, 공군, 방산 비리, 내부 고발을 다루며,  작가는 이 뜨겁고 민감, 복잡한 단어들을 성실한 자료 조사와 정교한 형식으로 풀어낸다.



아빠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내가 같이 싸워 줬을까요.  난 아마 같이 싸워 주지 못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나는 귀찮아했을 거예요.  심지어 나 자신의 일도 귀찮았거든요.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따귀를 맞았을 때 나는 집에 가고 싶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반신욕하고 누워 자고 싶다.  온통 그런 생각뿐이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들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물건들 같은 것 말이에요.  /p31~32


유나, 남자친구였던 주한, 아빠인 정근, 어린 시절 아빠의 운전병이었고 사회에서 같은 회사의 부기장으로 다시 만나게 된 영훈의 목소리로 진행되는 글은 정근이 유나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쫓으면서 오래전 침묵을 선택했던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당시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딸의 죽음을 마주하고 유나의 사건이 오래전 자신이 침묵했던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오래전 사건과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100미터, 500미터를 그토록 애써 달리지 않았다면, 시커먼 밤의 해변에서 맨발로 울며 달리지 않았다면, 아비고 어미고 형제고 모르는 척하고 공부하지 않았다면.  고향을 떠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아비처럼 쓰레기같이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지숙을 얻고 유나를 얻었다.  양복 입은 아버지랑 피아노 치고 우유 마시며 살던 지숙을 아내로 얻었고 얌전하게 책만 읽는 딸 유나를 얻었다.  가정은 그렇게 완성됐다.  자신이 이룬 걸 잃고 싶지 않아서 했던 선택이 결국 자신을 파멸로 몰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가 죽었지만.  그건 그의 선택이었으니까.  /p83

- 어떻게 그것도 몰라요?  아줌마 배부를 때까지 불러다 일 시켜 놓고. 

- 유나야. 

- 그렇게 부려먹고, 힘든 일 있을 때는 모르는 척해요?   /p148


사회와는 다른 조직, 어렸을 땐 그게 뭔지 어렴풋하게만 알았다.  같은 어른인 아빠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다 시키는지, 자신의 집에 찾아오는 다른 군인의 부인들이 왜 인형이나 선물들을 들고 오는지를 어느 정도 커서야 이해했던 유나는 그런 잘 이해되지 않았다.  강압적이었던 아빠를 피해 가끔 도피했던 영훈과 혜진 부부는 유나의 피신처이기도 했지만 그들 부부에게도 유나는 기쁨이었다.  자신의 아빠 운전병이었던 영훈이 엄마와 자신을 위해 운전하는 게 당연한 건지 판단할 수 없었지만 그 당시엔 다들 그렇게 했으니 따랐고, 그래도 뒷좌석이 아닌 앞 좌석이 편하다고 앉았던 유나의 행동은 아이답지 않은 깊은 생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군과 사회는 다르다.  현실의 법과 군대 법은 다르게 적용된다.  그와 다른 이유로 자신도 옷을 벗게 되었지만 나약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나약한 선택, 정근은 자신의 생각에 어이가 없었다.  유나가 죽고 나니 모든 게 복잡해졌다.  정근은 유나가 살아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지 이제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아빠, 아직도 몰라요?  아빠가 잘못한 거예요.  윤 대령 아저씨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요.  /p189

아저씨는 노조 간부이며 내가 그런 아저씨와 어울려 지낸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를 더러운 사람들로 얼마든지 몰아갈 수 있다는 걸 아저씨는 몰랐어요.  꾸며 내지 않은 진짜로 일어났던 비극을 이용해서, 하나의 허름한 인생과 그 사람의 진심을 이용해서.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요.  아저씨는 팀원이 나를 그런 식으로 고발했다는 말을 듣고도 동료로서 어떻게 배신할 수 있냐는 말만 했어요.  그게 전부인가요? /p119


<미스 플라이트>는 열린 결말로 끝을 맺는다.   유나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아내겠다는 정근의 다짐, 하지만 정근이 유나의 기록들을 찾을 수 있을지, 남겨진 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들이 모르던 진실이 주는 상처에도 그들은 연대할 수 있을지 많은 물음들을 남긴 글이었다.  책장을 펼쳐 읽기 시작해서 덮는 순간까지 다른 책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두께가 꽤 된다고 생각했는데 마음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금방 읽어낼 수 있는 글이면서도 마음 한켠 묵직하게 쌓이는 쳇증은 읽는 독자의 몫이 될 것이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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