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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지는 중입니다
안송이 지음 / 문학테라피 / 2018년 7월
평점 :

인생의 어떤 일은 시간과 함께 지나가기도 하지만
어떤 일은 지나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무런 기대감 없이 읽기 시작했던 글이었다. 제목과 책표지가 마음에 들었고 책을 펼치고서야 저자에 대한 정보와 글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글을 읽으면서 점점 안송이라는 한 여자의 삶 속에 빠져들었고 함께 울고 웃기도 했다. 이십 년째 스웨덴에 살고 있으며 마음에 더 가깝게 살려고 애쓰다 보니 싱글맘의 삶을 살고 있는 안송이.
우리의 가엷은 육체는 늘 무엇인가 필요하다. 매일매일 크든 작든 무엇인가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야 한다. 그것이 극심한 추위일 때도 있고, 너무나 따가운 햇살일 때도 있고 어쩌면 맨발로 디디면 찌릿찌릿하게 아플 자갈길일 수도 있다.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건 몸뿐이 아니다.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찬바람 부는 영혼의 겨울을 견디어나가기 위해 더 조심하고 단단히 지켜야 한다./p019 #영하18도 추위를 견뎌나가기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알기를 미루고 있었던 것, 그다음이란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날은 부정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마흔이 넘으니 삶에 대해 그 전과는 다른 태도를 가지게 된다. 그냥 살아남는(survive) 게 아니라 살아가야겠다는(live). 정말 인생은 짧고, 빨리 지나가고, 어떤 때는 이게 다 인가 싶다. 스무 살 때는 노력만 하면 내가 원하는 건 다 될 줄 알았는데, 그때 생각한 미래에 있는 지금 나는 내가 가진 능력이 어디까지 인지도, 이변이 생가지 않는 한 내 생에 없을 일들도 생기고 있다. 그래서 더 마음을 잡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쓴다. /p052~053 #캐러멜도넛은남겨주면안될까요
타지에서 혼자로 살아간다는 건 어떨지 상상도 안되지만 가까운 지인 중에도 그런 아이가 있었다. 짧은 시간 대학을 함께 다녔고 유학길에 올라서 그대로 외국에 자리 잡고 살게 된 동생이 있다. 몇 년에 한 번씩 프로필 사진으로 아이를 낳았구나, 둘째를 낳았구나 잘 살고 있는지 sns로 안부를 묻곤 하는 참 체격에 작고 다부진 아이였는데, 이렇게 잘 살고 있구나 한 번씩 대견하게 생각되었던 아이였다. 타인의 삶은 타인의 삶일 뿐이다. 하지만 글을 읽으며 공감은 할 수 있다. 아이가 없어 싱글맘으로서의 그녀의 마음은 '그렇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정도였지만 그녀의 삶과, 생활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깊은 공감을 하게 했다.
나이를 먹고, 이혼을 하면서 삶이 교과서 같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어릴 때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자라서 학교에 가면 공부를 열심히 하고, 대학에 가고, 성실히 일하면 그에 맞는 대가를 받고, 내가 정직하고 다정하면 나 역시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세상이 그만큼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노력한 만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나이를 먹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부모의 사랑조차 자연의 진리가 아니었다./p094 #너의심장은부서질거야
집을 나서기 전 그는 말했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참 평안해요' 우리는 손을 맞잡았다....(중략)....그와 내가 영원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안정을 붙잡은 것 같아서, 미래에 대한 어떤 약속이 있어서 행복한 게 아니다. 지금은 거짓이 아니라는 믿음, 그리고 바람 불면 날아가는 그런 가벼움이 아니라는 믿음에 행복하다. 적어도 '당신은 참 사랑스러운 사람이에요.'란 말을 단도로 쓰지는 않겠지. 모든 따뜻한 말들이 그 의미 그대로 남아 있겠지. 그리고 내가 이 사람의 침묵도, 다른 행동도 오직 이 사람의 것으로만 바라본다면, 과거에 다른 사람이 입힌 상처에 기대어 해석하지 않는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p159~160
한국에서 살았어도 일어날 일은 피할 수도 없이 일어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에게 선물 같았던 아이 '선물이'와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라보고 살아가기 위해 최선의 선택을 했다. 혼자이기 때문에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없기에 혼자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곁에는 그녀와 선물이를 걱정하고 지지해주는 이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된 엄마를 두고 공부를 하기 위해 스웨덴으로 떠나겠다고 울었을 때, 그녀는 그곳에서 정착하게 될 걸 알았을까? 그녀가 면목동에 살았었다는, 어린 유년시절을 내가 지냈던 그 지역에 살았었다는 이유만으로 더 친근한 글이었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많은 이들이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그녀의 상황이었더라면...' 주저앉고 싶고, 다 내려놓고 싶었을 테지만 그녀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행복에 감사하면서 그 순간을 아끼지 않고 누릴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참 많이도 먹먹하고 애틋했다. 그녀와 선물이가 무사하고 안온한 삶을 살기를 그리고 그녀의 다음 이야기를 또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정말 힘든 건 말이지, 행복했던 지난날이 다 잊혀지는 것뿐만 아니라, 정말 그때 난 행복했던 건지, 그런 날들이 정말 있었던 건지, 그날들이 거짓이었는지 생각하게 되는 거야.' /p219
예전 관계의 습관으로 혹시나 그가 오해할까 봐 내가 자꾸만 설명하고 있을 때면, 그는 곧 나를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말아요, 이해해요.'
어느 순간 알았다. 이 사람은 나를 온전히 보고 있다. 나의 행동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니 주저리주저리 반복해서, 여러 언어를 사용해서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한 번만 말하면 된다. 내가 나를 거듭 설명하고 또 설명했던 것도, 노력하고 또 노력했던 것도 상대방이 사실 나를 믿지 않는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어떤 말로도 나를 이해시킬 수 없었다는 걸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을 걸.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해도 같은 말을 여러번 다르게 했을 뿐이라면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해야 할 이야기를 다 나누는 것이다. 그런 관계에서는 그립다는 말 대신 시간이 지나갔다는 말 한마디로도 그 뒤에 있는 긴긴 사연의 그리움을 다 느낄 수 있다. 이제야 알았다. 한 관계가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 어떤 것도 이야기할 수 있고, 어떤 말도 할 필요 없다.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p245
/p244~245
어디서 어떻게 살아도 어떤 일은 피할 수 없었다.
중요한 건 그 다음,
다시 괜찮아질 수 있을까?
견뎌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삶이지만,
행복을 찾아내는 일은 포기하지 않았다.
삶을 매만지고 다시 가꾸어나갔고 때로 아프게 넘어지기도 했던
스웨덴에 사는 한국인의 평범한 삶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