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들의 역사 - 20년차 기자가 말하는 명화 속 패션 인문학
유아정 지음 / 에이엠스토리(amStory)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평소 패션, 뷰티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는데 단순히 제목 때문에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아름다운 것들의 역사>라니, 게다 20년차 기자가 말하는 명화 속 패션 인문학이라 더욱 궁금증을 일게 하는 책이었다.



나도 가끔은 누군가가 내 초상화를 그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도 셀카를 수백 장은 거뜬히 남길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제3자가 깊이 있게 나를 관찰하고 수십 시간을 들여 토해낸 초상화는 내가 찍은 셀카와는 질적으로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p104 


가끔 명화를 이야기하는 책들을 부러 찾아 읽곤 한다.  혼자 영화를 볼 수 있게 되면서부터 미술관 관람도 혼자 하는 걸 즐겼는데, 이는 누군가와 함께 가 아닌 나 혼자만의 생각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었는데, 이것도 재미있게 즐기는 팁들은 따로 있는 것!  알고 보면 조금 더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인데 부러 찾아 읽은 책들이 오히려 관람의 재미를 반감하게 하는 글도 아주 가끔 있기는 했다.  그런데, 이 기자님 글 참 맛깔나게 잘 쓰신다.



'소매를 그었다'고 해서 '슬래시 패션'이라 명명된 이 기이한 스타일의 시작은 1476년의 그랑송 전투 이후 스위스 병사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르네상스 시대 스위스는 지금처럼 천혜의 자연이나 정말 공업이 아닌 용병 파견이 주요 산업이었다.  험준한 산악 지대인 탓에 달리 할 일이 없던 남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전쟁에 나섰고, 이들은 곧 온 유럽에 용맹함을 떨쳤다.  오죽하면 '돈이 없는 곳엔 스위스 용병도 없다'라는 말이 나왔을까.  목숨 걸고 돈을 위해 싸우는 스위스 용병들은 또 다른 점으로도 유명세를 탔는데 바로 화려한 옷차림이었다.  싸움터에서 약탈한 귀족들의 값비싼 옷들로 치장을 거듭한 스위스 용병들은 날이 갈수록 화려함을 뽐냈다.  문제는 싸움터에서 빼앗은 값비싼 옷은 보기에는 좋지만 신축성이 나빠 칼을 휘두를 때 불편했던 것.  이에 그들은 소매를 군데군데 긋고 안쪽의 옷감을 끌어내 팔을 잘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신선한 시도는 칼을 휘두를 일이 그다지 필요 없는 왕족부터 쟁기질만 열심히 하면 됐던 농민까지, 남녀를 가리지 않고 흉내 내는 최고의 패션 스타일로 떠올랐다. /p130


명화 속 그림을 등장시키고 그 시대 그림이 유행했던 패션들을 이야기하며 현재의 시간들과 연관 지어 하는 이야기들은 과거 명화 속의 그림들을 다시 보게 하고 그녀가 하는 이야기 속으로 점점 빠져들게 된다.  40여 가지에 달하는 패션에 대한 다양한 이야깃거리는 명화에 가려 자세히 보지 못했던, 다양한 소품이나 뷰티에 대한 부분을 더 세심하게 감상하게 되는 눈을 뜨게 해 준다.  책장을 넘기며 그림과 유아정 기자의 글을 읽어갈수록 미술관이 가고 싶어지는 건 나뿐이었을까?  유아정 기자의 <아름다운 것들의 역사> 명화 속 패션 인문학.  패션, 뷰티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부채는 17~19세기에 이르러 유럽에서 문화와 예술을 아우르는 소품으로 자리매김했는데, 당시 부채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장식 미술의 거장이자 달걀 공예로도 유명한 러시아의 구스타포비치 파베르제는 그가 만든 부채의 독창성과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아 영국 왕실 및 귀족들로부터 초청을 받기도 했다.  한발 더 나아가 부채는 액세서리뿐 아니라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도 사용됐는데, 말 대신 부채로 은밀하게 자신의 감정을 전하는 '부채 언어'가 그것이다.  스페인에서 시작된 이 맛깔나는 유희는 이내 런던과 파리에 아카데미를 탄생시킬 만큼 발전했다.  길게는 석 달에 걸쳐 배워야 마스터할 수 있을 정도로 표현 방법이 복잡했는데, 남녀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을 일일이 표현하고 배우려면 그 정도 기간은 필요했겠다 싶다.  /p170

오랜 시간 동안 여성미와 섹슈얼리티를 상징했던 립스틱은 오늘날 더욱 다양한 의미를 갖게 됐다.  1912년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는 시위대의 붉은 입술 덕에 립스틱은 '여성 해방'을 의미하게 됐는가 하면, 1930년대 대공항기에 나 홀로 매출이 증가하면서 '립스틱 효과'라는 경제학 용어까지 탄생시켰다.  립스틱 효과란 원래 립스틱만 발라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됐지만, 이를 계기로 불황기에 립스틱 같은 저가 화장품 매출이 증가하는 현상을 뜻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결국 립스틱은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세상의 모든 여자에게 필요할 뿐 아니라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서, 사회와 맞서기 위해서, 나만의 작은 위안을 위해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됐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편견과 맞서 새빨간 립스틱을 당당하게 바르던 사라 베르나라는 오늘날 거리에 넘치는 붉은 입술의 물결을 보면서 '거봐, 내가 옳았지'라며 어깨를 으쓱거리고 있지 않을까. /p209



해당 서평은 리뷰어로 선정되어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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