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잠시만 도망가자 - 잘해야만 했고 버텨야만 했던 나를 구하는 법
이종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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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타인의 모습은 잘 보는 우리다.  정작 나는 가까이 있기 때문에 못 보는 것일까?  다른 이의 결점은 장점보다 더 잘 찾아내면서 정작 내 결점은 무엇인지, 장점은 무엇인지 꼬집어 이야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원하진 않지만 잘 버티고 있다.  하지만 원하지 않으면서 버티고 있는 상황이 얼마나 오래 버텨줄까?  언젠가는 터질 것이다.  그렇게 터졌을 때, 나는 과연 그렇게 터져버린 나를 감당할 수 있을까?  



 꿈은 행복하기 위해서 꾸는 것이다.  그러나 아주 일찍 꿈을 정하고 진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훗날 자신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무언가를 만나게 되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속인다.  앞뒤가 바뀌는 것이다.  차라리, 아직 자신이 무엇에 몰두하는지 몰라서 아무런 계획도 진로도 세우지 못한 상황이 낫다.  조금 더 불안하고 초조할지언정 자신을 속이진 않기 때문이다.  (중략) 꿈은 늘 변한다.  그리고 변했다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러니 장렬하게 열정을 불태워 만화건 소설이건 또는 그 무엇에 건 목숨을 걸 시간에 그 직업 자체와 자신의 행복 포인트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p21~22  꿈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

상처는 내 것이다.  지금 당장 내가 아픈 거니까 내 고통이고 내 피다.  그 누구도 그 상처에 대해서 점수를 매기고 평가할 수 없다.  (중략)  내가 진심으로 주변 친구들에게 권하는 말은 이것이다.  정말로 힘들 때는 잠깐 숨자.  지금 당장은 잠깐 도망치자.  회피하고 외면해도 괜찮다.  이 말은 정말 아무도 안 해주는 말이다.  그러니까 나 스스로에게 해줘야만 하는 말이다.  괜찮아, 잠시만 도망가자.  나중에 내가 다시 직면할 수 있을 만큼 상처에 딱지가 앉을 때까지, 피가 멈출 때까지.  잠시만 숨어있고 피해있고 외면하고 도망가자.  /p30~32  그래, 잠시만 도망가자


이종범 작가의 에세이는 자신을 자신이 아닌 듯 제 3자를 보며 이야기한다.  남들보다 늦고, 상황이 견디기 힘들 때 자신의 능력 밖이라고 생각된다면 잠시 멈추고 도망치는 은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쉼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빠르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멈춤이라는 걸 쉽게 결정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내가 망가지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자신이 스스로 겪고 통과한 시간들과 경험을 토대로 집필한 그의 글은 이불킥! 하고 싶은 정도의 흑역사도 술술 풀어놓는다. 



 가끔 '좋은 선택이란 뭘까'라는 고민을 한다.  결과가 좋은 선택이 좋은 선택일까, 아니면 과정이 좋은 선택이 좋은 선택일까.  나는 남이 내려준 선택은 결과가 좋더라도 나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내가 직접 내린 선택은 결과가 썩 좋지 않더라도 좋은 선택이라고 본다.  겁이 나서 선택을 보류할 수도 있다.  뭐 어떤가 싶다.  만약 원하는 목적지만 확실하게 알고 있다면, 대부분의 갈림길은 어떤 걸 택하건 큰 상관이 없다.  아주 조금 돌아갈 수는 있겠지만. /p51  선택장애 세대

 내가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가, 언제나 이것이 중요했다는 느낌이 든다.  행복하려면,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자신을 잘 이해하려면 무언가를 끊임없이 자신에게 던져주고 그 과정을 가만히 응시해봐야 한다.  조용히 자신에게 물어보는 과정도 포함해서 말이다.  /p 78자신 매뉴얼


자신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다면, 적절한 타이밍에 쉬어가기도 하고 내 행복을 위해 조금은 서툴고 후회스러운 결과가 나올지언정 선택하는데 있어서도 조금 더 과감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많이 이른 나이(8살)에 자신의 꿈을 결정했고 그 꿈을 위해 살아왔던 작가는 한 우물만 파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들을 직접 체험하고 살면서 '참치형 인간'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살기 위해서 열심히 헤엄치는 참치!  하지만 자신의 그러한 모습이 싫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오늘의 자신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작가의 삶이 어쩐지 행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

이 대사는 10대 시절 내내 나를 사로잡는 문장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 번민하고 방황하는가에 대하여 잠정적으로 설명해주는 멋진 문장이다.  나는, 한 사람의 내가 아니다.  요구받고 기대받는 수많은 '나'들이 어쩔 수 없이 부대끼며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꽤 많은 순간 그런 '나'들은 서로 싸우게 된다. 그러나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나를 죽여가는 삶을 살아서는 온전한 삶을 살 수 없다. /p86~87  나는 단수가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반드시 되어야만 하는 모습을 겹겹이 입은 채 살아간다.  사원이었다가 아빠가 되고, 직업인이었다가 누군가의 아들이 된다.  그중 어느 모습도 될 필요가 없는 장소, 강한 나를 만들어줄 수 있는, 약해도 되는 어딘가.  당신에겐 있을까.  진심으로 있었으면 좋겠다.  /p102  위로 내리는 눈을 보던 밤들

  우리 대부분은 자기 방식으로 각자 첫 고통을 경험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에 주저하게 되는 시기도 함께 경험한다.  그러나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그 상상력을 닫아두거나 혹은 의도치 않게 그 상상력을 잃어버린다.  나는 이것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p178~179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


때론, 도망치는 것도 더 멀리 나가기 위한 쉼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종범 작가의 글은 그의 웹툰을 하나도 읽어보지 않았던 내게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웹툰 작가들의 세계에 대해 조금은 디테일하게 알게 되기도 했고 창작이란 정말 힘들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책만 읽지 말고 가끔은 웹툰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인기 심리 웹툰이었던 <닥터 프로스트>를 늦었지만 찾아봐야겠다.   김혜리 작가의 추천사처럼 대체로 정성껏 사는 성실한 쾌락주의자의 수첩이란 표현보다 더 적절한 말이 있을까 싶다.  읽다 보면 이렇게 하면 될까? 싶은 부분들을 꽤 자주 마주치게 된다.  얇고 가벼운 책이니 짬시간 읽기에도 좋은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자기 삶이면서 너무 무책임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무언가가 무서워지거나 혹은 무언가에 지칠 때마다 내 삶을 마치 남의 삶인 것처럼 쳐다보는 습관이 있다.  그러다 보니 에세이를 쓰게 되었다.  남의 삶에 대해서는 맘 편히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기 객관화라는 멋진 단어는 사실 무책임함의 최고 레벨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러한 무책임함이 어느 정도 우리 삶에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먼저 뻔뻔함과 무책임함이 필요하다.  /에필로그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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