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 관해서는 사전 정보가 거의 없이 받아든 책이라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레즈비언 역사 스릴러'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라는 것과 슬쩍 훑어본 인터넷 서점 리뷰에서 아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처음 책을 받아들었을 때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하드커버에다 총 726쪽의 방대한 분량은 둘째치고, 행간이 좁아 글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그냥 몇 페이지를 훑어보는 것 만으로도 기가 질렸기 때문이다. 작은 판형임에도 한 쪽에 30줄이라니...정말 대담한(혹은 무모한) 편집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두껍고 빡빡한 책은 언제나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얼마나 방대한 양이든 모조리 독파해주지.'하는 정복욕과 '눈 아프겠다. 며칠은 걸리겠군. 읽다가 지칠지도 모르겠어.'하는 노파심. 나는 이 두가지 감정들을 느끼면서 책의 커버를 넘겼다. 과연 명성만큼 대단한지 두고보겠어, 라는 생각도 잠깐 하면서. 리뷰 평점이 높다는 것은 일종의 인증(?)같은 것인데, 일단 일정 수준의 재미를 보장하고 있다는 것이므로 그만큼 기대치를 높일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 그 기대치 때문에 실망할 확률도 높다는 위험부담도 감수해야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니까. 그래서 담담하게 그러나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읽게된 [핑거스미스]는, 사실 운 좋게 내 손에 들어오게 된 책인데, 더욱 운 좋게도 내용까지 끝내줬다. 두껍고 빡빡해서 읽는데 오래 걸리지 않을까, 하던 초반의 우려와는 달리 작품을 읽는 내내 두근두근했던 기억이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1부의 마지막에서는 예상치도 못했던 반전이 튀어나와 순간 얼마나 놀랐던지... 침대에 널부러져서 책을 읽고 있다가 그 반전에 놀라, 순간 벌떡 일어나서 자세를 고쳐잡았을 정도다. 그리고 박수를, 짝짝짝. 내 반응이 다소 과장되어 보이긴 하나, 1부를 다 읽을 시각이 새벽 2시 정도였는데, 고즈넉한 밤중에 그런 대반전을 맞이하니 그 효과가 2배로 다가왔음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이것은 흡사 내가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제인에어]를 읽었을 때의 놀라움과 맞먹을 정도였다. 여기서 잠깐, 밝혀두지만 내 최초의 반전소설은 [제인에어]였다. 어디가 그렇게 반전이었냐고 물으신다면 얘기하기 조금 곤란하다.;; 스포일러가 되어버리니까. [핑거스미스]는 굳이 그 반전이 아니라도 읽는 동안 이상하게 [제인에어]가 생각났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가의 인터뷰를 보니 그녀가 이 책을 쓰는 데 영향을 받은 작품중의 하나로 [제인에어]를 꼽았다. 왠지 반가운 느낌.

1부가 아니더라도 이 책은 놀라움 연속인데, 내가 그 반전에 뒷통수를 크게 맞았던 데에는 아마 이 소설을 '레즈비언 역사 스릴러'라고 한정지어 생각했던 이유가 가장 큰 듯 하다. 특히 방점을 '레즈비언'에다 찍고 봤다가 된통 당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흔하지 않은 소재니까. 허나 이 소설은 그 예상을 뒤집어 버리면서 시작되는 반전부터가 진정한 묘미다. 이는 1부에서 조금 더디게 흐르던 독서의 진행이 2부 부터 눈에 띄게 빨라졌음을 뜻한다. 반전의 효과로 집중력이 높아진 탓이다. 또 1부와 2부, 3부의 시점이 각기 다른 것과 문체의 변화도 재미있다. 이야기의 화자가 바뀌면서 마치 분위기가 환기되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래서인지 초반 열댓 장 빼고는 700페이지가 넘는 책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아아, 어떻게 하면 이 책에 대한 좀 더 맛깔스러운 리뷰를 쓸 수가 있을까, 고민을 했는데...역시 쉽지가 않다. 추리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 소설, 게다가 반전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설은, 읽을 때는 사정없이 빠져들지만 그 감상을 쓰기는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행여 스포일러가 되어 책을 읽을 예비독자들의 재미를 빼앗아 버리면 안되니까. (스포일러 그거, 예고없이 당하는 사람에게는 엄청 불쾌한 일이 되고 만다. 난 심지어 예전에 인터넷 서점에서 리뷰 읽다가 중요한 '반전 포인트'를 누설한 리뷰어에게 살의를 느껴본 적도 있다.-_-;;;) 어쨌든 짧지만 강한 한마디를 남기자면 '영화, 식스센스에 버금가는 반전'이라고 말하고 싶다. 조금 촌스러운 추천 문구겠지만 그 강렬함은 정말 상당하니까. 아, 혹시 이 리뷰를 읽고 그 반전이 뭘까, 고민하다가 책의 소소한 재미를 놓치는 일은 없길 바란다. 이미 알려진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말고, 화려한 조명 뒤의 어두운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니까 말이다. 특히 런던의 읍습한 뒷골목이라든가 한적한 시골 대저택의 풍경, 여인네들의 복장이나 그 시대의 문화적 관습,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위치와 대우가 어떠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문장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어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회가 된다면 그 시대의 문화사를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을 정도. 역사와 문화라면 무조건 열광하고 보는 내게 추리 혹은 스릴러라는 요소를 덧씌워놓았으니, 어쩌면 내가 이 책에 빠져드는 건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작가가 이 책을 위해 얼마나 탄탄한 자료 조사를 했는지 느껴져서 더욱 만족스러웠기도 했고. 여러모로 이 책은 나의 버닝 포인트를 제대로 눌러준 책이었다.

좋은 책은 그 작가의 다른 저서들이나 관련 작품을 모조리 감상해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세라 워터스의 처녀작이자 [핑거스미스]와 닮은 구석이 있(다고 하)는 [벨벳 애무하기]가 읽고 싶어졌다. 조만간 읽어야지! 아, 그리고 BBC에서 3부작으로 만들어진 TV판 [핑거스미스]도 있다던데, 그것도 보고 싶네. 평을 들어보니 꽤 괜찮던데... 봐야겠다. 앗, 그러고보니 이 작가 [나이트워치]의 작가다. 이것도 읽으려고 했던 책인데...?! 와, [핑거스미스]의 파급효과가 대단하구나... 훗, 고로 당분간 난 좀 바쁠듯 하다. 읽을 책이 많아져서 행복하다. :)


덧) 어머나, [벨벳 애무하기]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출간이 안 된 상태고, [나이트 워치]는 내가 알고 있는 책과 다른 작품이다; 제목이 같아서 같은 작가의 작품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구나... 이럴수가...;;;; 에잇, 바보. 괜히 들떠서 호들갑 떨었네...;ㅁ; 그럼 언제쯤 출간될까나...읽어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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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6-12-22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 홈페이지에 가서 찾아본적이 있는데 세라워터스 책은 앞으로도 나온대요.^^
티핑더벨벳이 먼저 나오고 어피니티가 나올것같습니다.
내년쯤에 티핑더 벨벳이 나온다는데....
저는 TV판으로 티핑더벨벳을 봤는데 핑거스미스와는 또다른 의미로 어마어마한 TV드라마라는......(드라마치고는 야해요.후훗)

다소 2006-12-22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pple 님// 그렇군요, 기대되네요.^^
[핑거...]도 TV드라마 치고는 강도가 좀 세다고 해서 놀랐는데, [벨벳...]도 그런 모양이군요. 호오...더욱(?) 기대되는데요? 히히히~
 
종말의 바보
이사카 고타로 지음, 윤덕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 '시한부 인생'이라 하면, 흰 가운을 입고 침통한 표정을 하고 있는 의사에게서 "앞으로 길면 6개월, 짧으면 3개월입니다." 따위의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사망(예정)통보를 받은 환자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그게 아니라면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의 삶 정도? 다소 가벼운 투로 예를 들고 있지만, 어쨌거나 그건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 아니 실제로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만약 전인류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는다면?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얘기냐고 손사레를 치며 (비)웃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전환해보면 이것은 마냥 웃어넘길수 만은 없는 얘기다. 여기 픽션이긴 하지만 그 예가 있다.

어느 날, 지구 종말을 운운하는 뉴스가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지구가 머지않아 소행성과 충돌할 것이라는, 마치 90년대 영화같은 내용이 그 이유다. 그리고 뉴스는 점차 종말을 확실시하는 보도를 했고, 결국 세계 멸망이 확실해졌다는 발표가 났다. 지구 종말까지 남은 시간은 8년. 이 어정쩡한 시간 앞에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어마어마한 소식에 얼이 빠져 있던 사람들은 8년이라는 구체적인 수치가 나오자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약탈과 살인, 방화와 폭력, 강도가 들끓고 피난 행렬이 줄을 지었다. 어차피 소행성이 충돌하게 되면 어디로 도망치든 마찬가지일 텐데도 사람들은 부지런히 짐을 싸고 허둥지둥 차를 몰아 도망가기에 바빴다. 폭동이 일어나고 차와 건물들이 불에 탔다. 이러다가는 소행성이 충돌하기도 전에 세상이 끝장나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은 격앙돼 있었다. 그렇게 5년여의 세월이 흘러 이제 남은 시간은 3년. 불안과 공포는 여전하지만 세상은 묘하게 차분하다. 아마도 잠시 소강기에 접어든 것일 게다. 그리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치 수능 D-100일을 세는 것처럼, 종말의 그날을 향해 카운트다운을 세기 시작한 지구. 이 SF 블록버스터급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차 안정을 찾아간다. 종말이 임박해 오면 또 어떻게 불안을 표출할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닥치지 않은 현실에 일일이 반응하기엔 사람들은 너무 지쳤다.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던 것 처럼, 사람들도 각자가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저마다의 사과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왜 사과 나무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사과 나무를 심었다'는 행위 그 자체일테니까. 종말이 오더라도 연애를 하고, 아이를 낳고, 복싱연습을 하고, 어차피 종말이 오면 저절로 해결될텐데도 복수를 계획하고, 자살을 꿈꾼다. 그러면서 용서하고, 이해하고, 화해하고... 그리고 가슴속에 '어쩌면...'이라는 조그마한 희망을 품고 미래를 꿈꾸는 것이다. 역시 판도라의 상자속에 마지막 남은 건 희망이야. :)

유사한 설정을 지닌 영화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는 애초에 어렵긴 해도 해결법이 제시됨으로써 영웅 탄생과 그로 인한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고, 그것이 목적인 영화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객은 고비가 있을 때마다 긴장은 될 지언정, 지구가 멸망할까봐 노심초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이런 유의 영화야 힘든 고비와 여정 뒤에 찾아오는 극적 해결이 관건이니까. 그런데 똑같은 설정인데도 포커스를 달리 맞추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고만다. 즉, <종말의 바보>는 위기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영웅들의 일대기가 아닌, 힘도 빽도 없는 소시민들에게 포커스를 맞춘 이야기라는 뜻이다. 긴장과 스릴은 온데간데 없지만, 대신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이웃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책은 센다이 힐즈 타운을 무대로 총 8가지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에피소드마다 이사카 고타로 특유의 기법이랄까, 특징이 고스란히 나타나서 읽다가 조금 웃었다. 이 작가는 아무래도 이야기의 구성 인물들을 거미줄 치듯이 연결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인 것 같다. '러시 라이프'나 '사신 치바'에서도 그랬는데, 예를 들면 한 에피소드에서 중심인물, 즉 주인공이었던 사람이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조연급, 혹은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것이다. 그래서 짤막한 단편성 이야기라도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하나의 큰 틀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것이 반복 되다보니 독자의 입장에서 또 하나의 재미가 되어버렸다. 텍스트로나마 아는 인물이 또 다른 이야기에 슬쩍 얼굴을 내미니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좀 우습지만 뜻밖의 장소에서 아는 얼굴을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랄까. 괜히 반가워서 씨익- 웃게 된다. 그 외에도 '이사카'스러운(?) 것은 많다. 분명히 무거운 소재인데 발랄하고 코믹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는 점, 인생의 긍정적인 면을 끊임없이 부각시킨다는 점, 그러면서도 책을 덮을 때엔 잠시나마 숙연하게 인생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 비교하자면 '정극'이라기 보다 '시트콤'인 셈이다. 지나치게 쿨하고 담백해서 자칫 가벼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인생의 짐이란 누구에게나 무거운 법. 이 책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그 짐을 내려놓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덧) <종말의 바보>를 읽으면서 난 끊임없이 '만약에 정말로 지구 종말이 온다면?'을 생각했던 것 같다.
음... 그렇다면 나는 역시 4번째 에피소드가 마음에 든다. :)
<동면의 소녀>에 나오는 '다구치 미치'처럼 서재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사두기만 하고 미뤄두었던 책들을 번호 매겨가며 읽고 기록을 남기는 거다. 년/월/일/시까지 꼼꼼히 체크해가며 열심히 읽어야지. 그건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아- 그런 생각을 하니까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더 생각할 것 없이 오늘부터 시작해야지. 아, 기분좋은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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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zart 2007-03-31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역자 후기가 좋았습니다...ㅎㅎ 물론 농담이고요, 번역한 사람으로서 즐겁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다소 2007-04-01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zart 님 / 하하, 그러시군요.^^; 재밌는 책이었어요.
 
레벌루션 No.3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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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중 화자인 '나'를 비롯한 이 책의 주인공들은 그들의 울타리 밖에서 보면 어느 모로 보나 '문제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중이떠중이들의 집합소인, 소위 삼류 고등학교에 다니는 그들을 세상이 달가워할 리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제 3자에게 '좀비' 혹은 '아메바'라 불리는데, 그 이유는 평균 학력이 뇌사 판정에 버금가는 혈압 수준이라서 살아있는 시체, 즉 좀비라고 부른다고도 하고도 하고, 워낙 단순해서 '아메바'라 불린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역설적으로 '죽여도 죽지 않는 존재(좀비)'이자 그리스 어로 '변화'를 뜻하는 단어(아메바)이기도 하다. 옛말에 '꿈보다 해몽'이라고 어떤 것이든 해석하기 나름이다. 교내 생물 선생인 '닥터 몰로'의 계몽적(?) 발언에 나름대로 자극을 받은 몇몇 아이들, 그들 중 자생적으로 모인 47명의 아이들은 아예 이 참에 '더 좀비스'라는 그룹을 정식으로 발족하고 그들만의 혁명을 꿈꾸고 계획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혁명은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지나고 보면 사소하고 치기 어린 젊은 날의 초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의 혁명에 지지를 보내주고 싶은 것은 유쾌,상쾌, 통쾌한 그들만의 방식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계급사회에 바람 구멍 하나 뚫기 위해 모인 그들의 좌충우돌 모험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슬며시 미소 짓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무모하지만 그 속에 가슴 찡한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파이팅'을 외치며 응원을 하고 만다. 그들의 세계에 동화되어 가는 느낌이 아주 좋다. 게다가 <레벌루션 No.3>에는 개성만점의 캐릭터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작중 화자인 '나'부터 순신, 히로시, 가노야, 아기까지 그 매력은 차고 넘칠 정도다. 특히 그 중에 최고봉은 뭐니뭐니 해도 '야마시타'인데, 그는 심각한 상황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분위기를 180도 전환 시켜주는 존재다. 그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슬랩스틱 코미디'가 따로 없다. 웃겨서 웃고, 기가 차서 웃고, 허탈해서 웃고... 그러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웃음으로 세상을 조롱할 줄 아는 기회를 제공하는 인물이기에 엄청난 민폐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혹은 사랑스러운) 인물인 것이다. (오 지저스! 나 이미 빠져든거야?)

'혁명'의 의미를 지닌 다소 무거운 제목과는 달리 가벼운 터치로 그려낸 <레벌루션 No.3>는 소위 '문제아'들의 모험담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물론 가벼운 터치라고 해서 내용마저 한없이 가벼운 것은 아니기에 유쾌함의 이면에는 쉽게 해결하기 힘든 사회적 편견이며 부조리가 앙금처럼 남아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의 최고 미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달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춤 춘다' 라는 끊임없는 패기와 투쟁 의식에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을 위한 최대의 밑거름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 밑거름을 바탕으로, 일류사회에서 늘 멸시당하는 삼류 인생들의 통쾌한 한방이 나를 기분 좋게 한다. 내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을 무렵 가슴이 조금씩 벅차올랐던 것도, 책을 덮었을 때 나도 모르게 씨익- 웃음 지었던 것도, 왠지 모르게 박수를 치고 싶었던 것도 모두 그 한방 탓일 것이다. 마치 힘들고 지치는 어느 오후의 박카스 한병 같은 그런 소설. 그래, 딱 그런 소설이다.

책을 읽다보면 '읽고 치우는 책'이 있는 반면, '그 작가의 책을 모조리 다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후자다. 나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대표작 < GO >를 아직 못봐서 이 책이 그와 만나는 첫 소설이다. 앞으로 하나씩 하나씩 읽어봐야겠다. 특히 <스피드> <플라이 대디, 플라이>는 이 소설과 어느 정도 연속선상에 있다니까 그 연결고리를 찾아가며 읽어 보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 '더 좀비스'의 또 다른 활약상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




+) 단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번역. (OTL)
이미 여러 사람들이 문제점으로 꼽았던 일이라 긴 말은 않겠다만, '킨다이치 소년(金田一少年, 우리에겐 '김전일'로 알려진 인물)'을 '가네다 이치 소년'이라고 번역한 것이라든가,'하지메의 일보(はじめの一步, 우리나라에는 '더 파이팅'이란 만화로 출간)'를 그냥 '첫걸음'이라고 번역한 것, 쿄진(巨人, 거인이라는 뜻)을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아닌 일본식 독음 그대로 쿄진으로 번역한 것은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면 일본어나 일본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먹을 수가 없잖앗!! (-_-+) 그래서 과감히 별 하나 빼버렸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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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네즈 슬라이딩 팩트 블루 SPF24 [피지조절효과]
아모레퍼시픽
평점 :
단종


'슬라이딩 팩트'는 전지현의 광고로 이미 유명하지만 제 경험에 미루어보면 라네즈 쪽의 팩트는 굳이 그 광고가 아니더라도 저와는 꽤 잘 맞았던 기억이라 이미지가 좋습니다. 더욱이 '피지 조절'에 있어서는 더욱더요.

 이번에 새 제품이 나와서 저도 쓰게 되었는데, 우선 케이스 디자인에 있어서 정말이지 맘에 쏙 들었어요. 바깥으로 바로 보이는 거울은 굳이 열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에, 화장이 아니더라도 자꾸 꺼내서 들여다보고 싶어질 정도예요. 전면이 거울이다보니 다른 팩트에 비해 거울 면적이 큰 것도 장점이구요. 게다가 케이스 색깔도 반짝반짝 빛나는 청아한 블루톤에 메탈감이 산뜻하죠. 어쩜 여자들의 마음을 이리 세심히 신경썼는지, 크기도 딱 한 손에 잡혀서 용기에 대한 만족감이 상당히 큽니다. 팩트를 슬라이드로 땡겨서(?) 본체를 살짝 위로 들면 스펀지가 있는데, 밑으로 가려져 있어서 먼지도 덜 타고 좋아요. 음, 스펀지 크기가 좀 작은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불편한 정도는 아니예요.(다만 아쉬울 뿐)

현재 이 팩트를 20여 일 정도 쓰고 있는데, 일단 트러블은 없습니다. 제 피부는 살짝 민감성 피부라 팩트의 경우 만약 제 피부와 맞지 않을 경우, 초반에 살짝 뾰루지가 나는 편인데, 그게 없는 걸로 보아 웬만한 피부에는 다 잘 맞을 듯해요. (그게 아니라면 제가 라네즈 제품을 써 봤기 때문에 면역이 되어있을 수도 있구요. ^^;) 이 제품은 피지 조절에 중점을 둔 제품답게 수정화장 시, 번들거림을 단번에 잡아주는데 아주 빠른 효과를 보입니다. 특히 T존 부위를 순식간에 뽀송뽀송하게 해주죠. 하지만 가끔 피부가 건조할 때에는 피지조절이 과해서 얼굴이 푸석해 보일 때도 있어요. 특히 화장을 금방 하고나면 얼굴에 기름기가 별로 없기 때문에 팩트 양 조절을 잘못할 경우 피부가 메말라 보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이렇다보니 아무래도 건성피부에는 별로 맞지 않을 듯해요. 하긴 제품 자체에 피지조절 기능이라고 나와있는 걸 보면 지성피부에 더 적합하다고 볼 수 있겠죠.  그 외,  커버력에 있어서는 무난한 편으로 기존의 팩트와 대동소이합니다.

소소하지만 '슬라이딩 팩트 블루'가 좋았던 또 다른 이유에는 향기가 좋다는 것도 있습니다. 은은하지만 상큼하게 퍼지는 향기때문에 화장을 하면서 기분이 아주 좋았어요. 주위 사람들도 향기 좋다고 한 마디씩 해 주더라구요. 과도하지 않은 향기가 제품의 효과를 높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을 하나 뺀 이유는 케이스에 손 때가 잘 묻는다는 아쉬움 때문이었는데요. 케이스가 깔끔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거울이 바깥으로 나와있는데다 케이스 자체가 손 자국이 많이 나는 재질이라 쓰다보면 지문 자국이 좀 많이 남아요. 그리고 핸드백 안에서 빙빙 돌다보니 미세한 먼지도 많이 달라붙구요.. 케이스를 넣을 수 있는 작은 주머니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뻔 했어요. 타사에는 주머니 있는 팩트도 많던데, 다음번에 업그레이드 출시하게 되면 이 부분이 보완, 반영되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제품 자체는 대단히 만족스럽습니다. 지성 피부이신 분들은 한번쯤 써봐도 좋을 듯 해요.

덧) 어느날 아무 생각없이 핸드백에서 이 팩트를 꺼냈는데, 조금 멀리서 그걸 본 친구 왈,
"새로 나온 핸드폰이야? 예쁘다!!" 

 -_-;;;; 멀리서 보면 슬라이딩 폰으로 보이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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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한창 장맛비가 내리는 요즘, <사신 치바>를 읽는다는 것은 어쩐지 묘한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신인 치바가 활동을 할 때는 늘 비가 내리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지 않는 경우도 간혹 있긴 한데, 그 경우는 눈발이 미친듯이 날린다던가, 엄청나게 흐린 날씨이기 때문에 결국 치바는 '비를 몰고 다니는 사나이'라 할 수 있겠다. 우연이겠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비가 왔고, 빗소리가 굵어질 때마다 '설마 진짜로 치바가 임무수행중인가?'하는 생각에 괜히 하늘 한번 쳐다보고 피식 웃기도 했다. 소설에 너무 빠져들었구만!

내가 가진 사신의 이미지는 꽤 다양한 편인데, 그래도 그 중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미지는 역시 <데스노트>의 '류크'다. 그 이유는 가장 최근에 읽은 사신 관련 작품이 <데스노트>이기도 하거니와, 류크는 그 인물 자체가 존재감이 상당하기 때문에 <데스노트>를 읽은 사람이라면 '사신=류크'라는 공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외에도 신일숙의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 잠깐 등장하는, 그러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명계의 사신이나, 이미라의 단편집에 등장하는 초 꽃미남 사신, 이소영의 만화 <사신死神>속의 사신도 꽤 기억속에 오래 남아있는 사신의 이미지이긴 한데.. '류크'에 비하면 존재감이 아주 적은 편; - 그러고보니 나의 사신에 대한 이미지는 전부 만화속에서 나왔군;)

<러시라이프>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이사카 코타로의 최근작인 이 책을, 나는 꽤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기대가 되는 것을...!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흡족하진 않았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웠다고 말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치바의 직업은 사신死神으로, 인간의 죽음에 관여하고 있다. 흔히 인간이 죽은 후 그 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저승사자와는 다르게 사신 치바는 <데스노트>의 '류크'와 비슷한 임무를 수행한다. 즉, 특정 인간이 죽어도 될지 안될지를 조사하는 것. 대신 차이점이 있다면 '류크'의 경우 조사, 판단, 실행을 모두 하는데 반해, 치바는 단순히 조사원으로서의 임무만 수행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사신 치바>쪽이 좀 더 분업;이 잘 되어 있어 각자의 임무가 더 세분화 되어 있다는 말이다. 정보부에서 특정 인간의 정보를 넘겨주면, 치바는 사람으로 변신한 다음, 자기가 맡은 인간의 주변에 머물며 조사에 착수, 죽여도 될지 말지를 결정한 후 통보를 한다. 만약 '가'로 결정이 나면 저 위의 높은 분께서는 그 보고를 믿고 8일째 되는 날에 그 인간의 수명을 뚝 끊는 것이다. 치바의 설명에 따르면 병사나 제 수명이 다해 죽는 경우가 아닌, 돌발적인 사고사나 예기치못한 사건으로 죽는 경우, 모두 사신들이 관여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한다. (화재나 지진, 익사 등..) 어째 조금 무서운 걸;

이야기는 옴니버스 식으로 묶여 있는데, 간단히 말하면 치바의 관찰 일기쯤 될 것이다. 자신이 맡은 몇몇 인간의 조사 중 인상에 남았던 에피소드를 엮어놓았다는 느낌이랄까. 그렇다. <사신 치바>는 제목에서 풍기는 무거운 이미지 -죽을 사死가 들어가잖아;;- 와는 달리, 재미있게 조금은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이야기는 총 6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마다의 스토리가 색다른 매력을 풍기고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리포트. 하드보일드, 추리, 로맨스, 로드 무비 등, 각각의 장르로 구별되어진 이 책은 사실은 '단편'을 모아놓은 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실 그렇지 뭐;) 동시에 여러가지 맛을 느껴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인 이 책은,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독자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을 유도하고 있다. 이는 <러시라이프>에서 인생에 대한 고찰을 유도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작가의 세계관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사신 치바>는 이야기와 인물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책이기에, 이 장마가 지루해 죽을 것 같다는 분이 있다면 추천해주고픈 책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1, 4, 5번째 에피소드가 좋았다^^)

사신이라...'치바'같은 엉뚱하고 귀여운(?) 사신이라면 한 번쯤 만나 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단, 나를 조사하러 와주진 말았으면 좋겠다.-_-; 나는 그냥 제 수명에 죽고 싶은, 그저 한 사람의 소심한 여성이거든요;; (나 지금 떨고 있니? >_<) 아아, 이 여름에 어울리는 제법 즐거운 소설이었다. :) 느낌이 좋아 별 4개.



아, 이건 사족인데.. 증정용으로 받은 휴대폰 액정 클리너가 내 휴대폰 색깔과 어울려서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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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7-07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체적으로 만족^^ 저도 그랬는데 그게 매력이더군요.

다소 2006-07-07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우와~ 오랜만이예요! >_< 보고싶었어요. 잇힝~
음, 치바는... 느낌좋은 사신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