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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치바 ㅣ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한창 장맛비가 내리는 요즘, <사신 치바>를 읽는다는 것은 어쩐지 묘한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신인 치바가 활동을 할 때는 늘 비가 내리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지 않는 경우도 간혹 있긴 한데, 그 경우는 눈발이 미친듯이 날린다던가, 엄청나게 흐린 날씨이기 때문에 결국 치바는 '비를 몰고 다니는 사나이'라 할 수 있겠다. 우연이겠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비가 왔고, 빗소리가 굵어질 때마다 '설마 진짜로 치바가 임무수행중인가?'하는 생각에 괜히 하늘 한번 쳐다보고 피식 웃기도 했다. 소설에 너무 빠져들었구만!
내가 가진 사신의 이미지는 꽤 다양한 편인데, 그래도 그 중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미지는 역시 <데스노트>의 '류크'다. 그 이유는 가장 최근에 읽은 사신 관련 작품이 <데스노트>이기도 하거니와, 류크는 그 인물 자체가 존재감이 상당하기 때문에 <데스노트>를 읽은 사람이라면 '사신=류크'라는 공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외에도 신일숙의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 잠깐 등장하는, 그러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명계의 사신이나, 이미라의 단편집에 등장하는 초 꽃미남 사신, 이소영의 만화 <사신死神>속의 사신도 꽤 기억속에 오래 남아있는 사신의 이미지이긴 한데.. '류크'에 비하면 존재감이 아주 적은 편; - 그러고보니 나의 사신에 대한 이미지는 전부 만화속에서 나왔군;)
<러시라이프>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이사카 코타로의 최근작인 이 책을, 나는 꽤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기대가 되는 것을...!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흡족하진 않았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웠다고 말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치바의 직업은 사신死神으로, 인간의 죽음에 관여하고 있다. 흔히 인간이 죽은 후 그 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저승사자와는 다르게 사신 치바는 <데스노트>의 '류크'와 비슷한 임무를 수행한다. 즉, 특정 인간이 죽어도 될지 안될지를 조사하는 것. 대신 차이점이 있다면 '류크'의 경우 조사, 판단, 실행을 모두 하는데 반해, 치바는 단순히 조사원으로서의 임무만 수행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사신 치바>쪽이 좀 더 분업;이 잘 되어 있어 각자의 임무가 더 세분화 되어 있다는 말이다. 정보부에서 특정 인간의 정보를 넘겨주면, 치바는 사람으로 변신한 다음, 자기가 맡은 인간의 주변에 머물며 조사에 착수, 죽여도 될지 말지를 결정한 후 통보를 한다. 만약 '가'로 결정이 나면 저 위의 높은 분께서는 그 보고를 믿고 8일째 되는 날에 그 인간의 수명을 뚝 끊는 것이다. 치바의 설명에 따르면 병사나 제 수명이 다해 죽는 경우가 아닌, 돌발적인 사고사나 예기치못한 사건으로 죽는 경우, 모두 사신들이 관여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한다. (화재나 지진, 익사 등..) 어째 조금 무서운 걸;
이야기는 옴니버스 식으로 묶여 있는데, 간단히 말하면 치바의 관찰 일기쯤 될 것이다. 자신이 맡은 몇몇 인간의 조사 중 인상에 남았던 에피소드를 엮어놓았다는 느낌이랄까. 그렇다. <사신 치바>는 제목에서 풍기는 무거운 이미지 -죽을 사死가 들어가잖아;;- 와는 달리, 재미있게 조금은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이야기는 총 6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마다의 스토리가 색다른 매력을 풍기고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리포트. 하드보일드, 추리, 로맨스, 로드 무비 등, 각각의 장르로 구별되어진 이 책은 사실은 '단편'을 모아놓은 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실 그렇지 뭐;) 동시에 여러가지 맛을 느껴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인 이 책은,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독자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을 유도하고 있다. 이는 <러시라이프>에서 인생에 대한 고찰을 유도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작가의 세계관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사신 치바>는 이야기와 인물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책이기에, 이 장마가 지루해 죽을 것 같다는 분이 있다면 추천해주고픈 책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1, 4, 5번째 에피소드가 좋았다^^)
사신이라...'치바'같은 엉뚱하고 귀여운(?) 사신이라면 한 번쯤 만나 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단, 나를 조사하러 와주진 말았으면 좋겠다.-_-; 나는 그냥 제 수명에 죽고 싶은, 그저 한 사람의 소심한 여성이거든요;; (나 지금 떨고 있니? >_<) 아아, 이 여름에 어울리는 제법 즐거운 소설이었다. :) 느낌이 좋아 별 4개.
아, 이건 사족인데.. 증정용으로 받은 휴대폰 액정 클리너가 내 휴대폰 색깔과 어울려서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