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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 하우스
김영하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에. 김영하마저 트렌드에 편승하여 이런 신변잡기류의 책을 낼 줄이야.'...라는 생각을 전혀 안했다면 그것은 명백한 거짓말. 그래서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김영하'라는 작가를 훨씬 더 좋아하고 있었나보다. 책을 직접 손에 잡아보고는, 앞서 했던 실망따위 한 큐에 날려버렸으니 말이다.

처음에 이 책이 출간되었을때, 읽기를 꺼려했던 이유는 광고카피 때문이었다.
'김영하의 미니홈피로 놀러오세요!'라는...지극히 상업적이고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카피.
언제부턴가 우리나라는 '미니홈피'가 붐을 일으키며 우리 생활을 파고들기 시작했고, 그에 맞추어 자신을 PR하고 홈피 방명록을 통해 안부를 주고 받으며, 홈피의 방문자수로 인기의 척도를 가늠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에 반해,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서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엽기적인 사진을 찍어 올리고, 1촌이라는 관계설정의 이면에는 사생활의 침범이 심각한 양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것이 싫어서 '미니홈피'에게 등을 돌리던 중,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미니홈피에 게재했던 글'을 책으로 묶어냈다는 것은 썩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던 것이다. '다 좋은데...왜 하필 '미니홈피'야!?' 라고 투덜투덜.

무언가가 마음에 안 들면 그에 부속된 모든 것이 미워보이는 법.
미니홈피에서 차용해온 듯한 편집과 구성마저도 탐탁지 않았던 나는 '어디 얼마나 괜찮은지.. 그 대단한 미니홈피좀 볼까?'라며 비아냥 거리듯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나의 비아냥은 보기좋게 꺾였고, 책을 다 읽고 덮을 즈음에는 슬며시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책은 3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중에 첫 번째 파트가 책의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파트는 또 3가지로 분류되는데, 그중 첫 번째 이야기는 김영하의 '고양이 이야기'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일상 이야기', 세 번째는 '문학 이야기'이다. 솔직하게 고백하련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순간순간 정말 자지러지듯, 깔깔거리며 웃었다. 책 보면서 이렇게 웃어본 것은 실로 몇 년만의 일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코미디 풍'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다만, 일상의 경험에서 묻어나는 그의 이야기가 유려한 글 솜씨와 유머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니 공감이 백배라는 것. 게다가 그렇게 신나게 웃다가도 이야기의 끝엔 항상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는 것이 참 마음에 든다. 아마 그것이 에세이가 가진 가장 큰 효능이리라. 특히 마지막 문학이야기의 경우, 어릴 적 감히 작가의 꿈을 꿔보기도 했던 나에게 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주어서 더 좋았다. 자료수집차 여행을 떠나고, 도서전을 다니고, 사진을 찍고, 끊임없이 생각을 하고... 그런 작가적 생활을 나에게 적용하여 상상해보는게 즐거웠달까?

<랄랄라 하우스>의 또 다른 백미는 김영하가 글 속에서 잠깐씩 언급한 책들이 묘하게 독서욕을 자극한다는 것에 있다. 그저 예시를 들기위해, 혹은 말문을 열기 위해 언급했을 테지만, 그것은 여타 리뷰보다도 더 강하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 읽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나의 독서가 또 다른 독서를 조장한다?
아- 매우 바람직한 일. 독서증진에도 기여하는 <랄랄라 하우스> 짝짝짝.

책에 대하여 이렇게 만족스러운 평가를 내리면서도 별 하나를 뺀 것은 역시 앞서 얘기한 상업성 짙은 편집구성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방명록'은 사실 좀 오버였다. 아니, 그것이 오히려 이 책의 구성에 가장 적합한 것인가? 그렇다면 할 말 없지만...

책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일일히 즐겨찾기를 해두고 심심할 때나, 울적할 때, 시간이 남을 때면 찾아볼 것 같은 글들이다. 게다가 게시자가 지워버리면 더이상 볼 수도 없을테니, 팬의 입장으로서는 책으로 내준게 고마울 따름이다. 말 그대로 디지털의 아날로그화다. 부족한 별 하나의 자리에 하트♡를 달아주고 싶은 책.


덧)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드는 생각은 '작가의 실물이 보고 싶다!'
도대체 피부가 얼마나 좋은지 직접 확인하고 싶은...가벼운 호기심이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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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설탕 두 조각 소년한길 동화 2
미하엘 엔데 지음, 유혜자 옮김 / 한길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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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지금에도 동화를 읽는다는 건, 아직도 가슴이 두근두근 할 만큼 즐거운 일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은 물론이요, 짧은 텍스트와 삽화를 통해 전달하는 메세지는 때로 어른들이 하는 어떠한 말보다 더 훌륭한 교육적 효과를 창출하기도 한다. 그것은 윽박지르거나 훈계조의 잔소리가 아닌, 진정으로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가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 한 아이와 부모가 있다.
부모님의 말이라면 옳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토를 달며 말을 듣지않는 아이.
부모라는 이유로 권위를 내세우며, 아이의 의견은 무시하는 부모.
과연 어느쪽이 잘못한 것 일까?

엄마, 아빠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 골치가 아픈 렝켄은 요정을 찾아 나선다.
요정은 렝켄의 말을 곰곰히 들어주더니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을 내밀며 이렇게 말한다.
'부모님이 이걸 먹으면 네 말을 안 들어주실때마다 키가 반으로 줄어들꺼야!'
집으로 돌아온 렝켄은 엄마,아빠의 주스에 설탕을 넣고만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모모'의 작가로 유명한 미하엘 엔데는 이 책에서, 아이와 부모의 역할 전환을 통해 서로의 존재가치를 일깨워주고 있다. 점점 작아지는 부모는 상대적으로 커지는 아이에게서, 그동안 아이가 그들에게서 느꼈을 압도적 힘(이를테면 강요나 명령)에 대한 공포와 반발심을 직접 체험했을 것이고, 아이는 부모가 없는 생활이 결국은 자신의 불행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바른 아이로 키운답시고, 아이들에게 '~해라'와 '~하지마라'라는 두 종류의 말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아이였을때, 그런 명령이 너무나도 싫었음에도 막상 어른이 되니 그 기억을 잊은 건 아닌지...

또 가끔 이런 생각도 한다.
엄마, 아빠의 소중함을 알면서도 때론 그들에게 불평만 늘어놓고 있지는 않은지...
내 입장만 생각한 채, 그들의 희생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결국 중요한 건, 나와 내 부모가 그렇듯, 세상 모든 아이와 부모도 원래는 서로를 너무나도 사랑한다는 것.
물론, 가끔씩 그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린다는게 문제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미덕과 교훈을 제대로 보여주는 이 책을 좀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교훈도 교훈이지만 상상력을 건드리는 독특한 설정이 맘에 쏙 든다.
말을 안 들을때마다 키가 반으로 줄어드는 설탕이라니, 흥미롭지 않은가?
조금 더 응용해서 착한 일을 할때마다 키가 1cm씩 자라는 설탕같은 걸 만들어도 좋을텐데...(키 작은 내가 먹게..-_-; 물론, 너무 많이 자라면 곤란하니까 원하는 만큼만 자라고 멈춘다면 더 좋을테고...)
아~ 이래서 동화는 좋아. 상상력을 키우거든. 그속에서는 뭐든지 가능하니까 말야...!^^


덧) 동화답게 너무나 초현실적 이야기를 진드라 차페크의 그림이 커버해주고 있다. 외국사람이 그린 동화그림은 가끔 너무 사실적이라 무서울때가 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진지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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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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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의 사춘기시절 행동패턴은 홀(hall)이 말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몸소 입증해보이기라도 하려는 듯, 반항과 일탈로 점철되어 있었다. 흔히 그 시절의 아이들이 겪는 가치관의 혼돈과 주체할 수 없는 감정변화는 어떤 형태로든 겉으로 드러나기 마련인데, 나의 경우 '어른들이 원하는 모범적인 학생상'을 거스르는 행동을 통해 그것들을 발산했던 것 같다. 비록, 그 생활이 길진 않았지만 말이다. (소위, '날라리')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도 그 시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물론, 나보다 훨씬 심오한데다 조금 더 미쳐있긴 하지만(본인도 말하지만, 정말 이 표현이 어울린다), 기본적으로 사춘기적 행동패턴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책은 이미 몇 번이나 퇴학을 경험한 그가 '펜시'에서 또 한번 퇴학을 당해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3일간 겪는 일들을 독백형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은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하며, 온통 불만투성이인 그는 충동적으로 짐을 싸서 학교를 나오지만 그를 반겨줄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가출한 아이들이 의례 그렇듯, 처음에는 의욕과 배짱이 두둑한 법. 콜필드는 전혀 그런상황에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세상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여자를 꼬시는 것도, 술을 마시는 것도, 심지어 학교를 나온 첫날 부터 마주치기 싫은 사람을 만나기 까지했다. 나중에는 호텔 종업원과 짠 '콜 걸'에게 돈을 빼앗기는 지경에까지 이르니 이건 상상했던 것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러나 콜필드는 그런 상황에서도 혼자 상상에 빠져 영화를 찍는다.(-_-;) - 사실, 이 부분에서야 '콜필드가 아직 어리긴 어리구나!'를 실감하게 되어 오히려, 가장 즐거웠던 부분이랄까.^^)

그 이후에도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콜필드는 꽤 많은 일을 겪고 무수한 감정의 변화를 맛 보지만 결국 '세상에 마지막 남은 순수'라 여기는 막내동생, '피비'를 통해 어느덧 성난 파도같던 감정들을 잔잔하게 가라앉힌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그가 여기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 진다는 말을 하며 추억에 잠기는 모습은, 아쉽지만 그간의 혼란과 사춘기의 종지부를 찍고 있음을 인정한다는 걸 의미할지도 모른다. . 그는 아직 완전한 어른이 아니다. 그렇다고 어설픈 세태비평으로 반항만을 일삼던 청년또한 아니다. 그가 앞으로 어떠한 어른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 시절 그가 했던 생각과 행동을 잊지 않는다면 좀 더 그럴듯한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그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눈에 띄는 죽음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겸손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p.249


덧) 1. 때로 콜필드의 과대망상은 '빨강머리 앤'의 그것과도 흡사하다. 게다가 놀라운 일에는 심하게 오버하는 말투도 어쩐지 재미있고...^^ 모든일에 부정적이거나 불만투성이인 그는 마음에 안들지만, 가끔 위와 같은 행동을 하는 콜필드가 귀여워서 슬며시 웃음짓게 된다. 이건 내가 이미 그 시절을 지나왔기때문에 그런거겠지?

2.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제대로 된 번역이 필요해!'였다. 그 말을 몸소 실감했다. 전체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번역은 없었지만 묘하게 '이 느낌이 아닐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드는 문구가 많다. 다른 역자가 번역한 걸로 한번 더 읽어보고픈 생각이 불쑥 든다. (가장 좋은 건 원서를 읽는 것이겠지만...;)

3. 과연, 청소년기(특히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학생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면 좋을법한 책이다. 내가 그때 이 책을 읽었다면 아마 엄청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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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초콜릿 공장 (양장) - 로알드 달 베스트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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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면,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영화 예고편을 보고 난 뒤였다.
여느날과 다름없는 인터넷 서핑중에 '조니 뎁'이 나오는 (게다가 '팀 버튼' 감독의) 새 영화 예고편을 본 것이었다. 예고편에 나오는 '조니 뎁'의 모습은 내가 알고 있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 옛날 가위손을 연상케 할 만큼의 분장은 아니지만, 단발머리와 연미복의 조화는 살이 쏙 빠져버린 그의 얼굴만큼이나 놀라운 것이었다. 게다가 '팀 버튼' 감독의 연출답게 화려한 영상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고, 내용마저 흥미로왔으니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라는 제목은 순식간에 뇌에 입력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온라인 서점 '아동 베스트'의 순위권에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대대적인 할인판매를 해대니, 안 그래도 동화류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가 안 사고 베길수가 있겠는가. 조금 늦었지만 사서 읽어보았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윌리 웡카라는 초콜릿 공장 주인이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공장 내부를 초콜릿 속에 숨겨진 '황금빛 초대장'을 찾아내는 5명의 어린이에게만 공개한다는 광고를 내면서 시작된다. 이에 찢어지게 가난한 우리의 주인공 찰리가 마지막 초대장을 발견하면서 본격적인 공장탐방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찰리외에 황금빛 초대장을 발견한 아이들을 살펴보자.

1. 뚱뚱한 몸, 잔뜩 부풀은 볼에는 욕심이 가득해 보이는, 먹는게 취미인 아우구스투스 굴룹.
(그의 엄마도 마찬가지. 그러나 아이가 아무리 먹어도 그저 예뻐하기만 하는 바보엄마.)
2. 갖고 싶은 것은 무조건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떼쟁이 버루카 솔트.
(그녀의 부모는 더 한심. 딸이 조금만 떼를 써도 '오냐오냐'받아주며 무조건 해준다.)
3. 자나 깨나 껌을 씹으며, '그만 씹으라'는 엄마의 말을 무시하는 바이올렛 뷰리가드.
4. 하루종일 TV 앞에서 떠날줄을 모르는 마이크 티비.
(이들의 부모도 앞의 부모와 다를바가 없다. 몇번 잔소리만 할 뿐, 아이를 방치해 두는 건 마찬가지.)

이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님, 그리고 조 할아버지와 함께 초콜릿 공장에 들어가게 된 찰리는 상상할 수도 없던 신기한 일들을 겪게 된다. 그 안에는 유쾌한 윌리 웡카씨 외에도 들어본 적도 없는 움파룸파 사람들이나 호두까는 다람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나로 하여금, 마치 '백설공주'에 나오는 난쟁이들을 연상케 하고, 숲속의 동물친구들을 연상케 해서 잠시 옛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책은 단순히 '신기한 초콜릿 공장 여행기'를 통한 아이들의 상상력 증진만을 다루고 있진 않다. 오히려 그 뒷면에 자리잡고 있는 좀 더 중요한 교훈을 일깨우고 있다. 바로 위에서 나열한 꼴불견 아이들의 막 돼먹은 행동의 결과가 그것.
대부분의 아이들이 청개구리마냥 '하지 말라는 것'은 하고 싶고, '하라는 것'은 하기 싫어하는 성향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이건 어른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일 뿐. 그러나 위의 네 아이들은 그저 자신이 '어린이'라는 이유로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야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먹고 싶고, 하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은 '강력한 주의'에도 불구하고 멋대로 하고 마니 당연히 그에 합당한 응분의 대가를 얻을 수 밖에. 이 대가는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고 멋대로 방치한 그 부모에게도 똑같이 돌아간다.

책의 끝 부분에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가 개과천선하고 올바른 생활을 하는가의 여부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잘못된 판단과 행동의 결과만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아동기에 아이의 인성형성은 중요하다. 그래서 동화를 읽어주고,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바른 말을 가르치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통제능력이 약해서 무언가에 빠지기 시작하면 끝을 모르는 집중력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를 대신해서 통제를 해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고, 제 멋대로 하려는 아이들은 눈물이 쏙 빠질만큼 엄하게 타이르고 벌을 세워서라도 바로잡아 줘야 한다. 버릇 없는 아이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나쁘지만,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부모와 주위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아이들도 자신의 잣대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안다. 다만 판단을 함에 있어서 일부 잘못된 교육으로 기준이 되어야 할 잣대가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책은 아이는 물론, 부모님도 꼭 같이 읽어 봐야 할 책이다.


덧) 최근에 보는 TV 프로그램중에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지금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프로그램 속, 모 쌍둥이 형제에게 기회가 되면 꼭 이 책을 읽어주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든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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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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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새로 나온 책이 뭐가 있나 싶어 둘러본 일서(日書) 코너.
하늘 색 표지. 평상인지 뭔지 모를 곳에 나른하게, 조금은 시시한 표정으로 발 장난을 하며 앉아있는 여자아이. 책에 둘러진 띠지속에는 책의 작가로 보이는 상큼하게 웃는 미소녀.
'흐응- 일본에도 귀여니류의 소설이 있나보지? 제목은 좀 특이하네!'
'응? 역대 최연소 아쿠타가와 수상작? 이게? 일본 문학계도 이젠 별 수 없군!'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이런 편견섞인 시큰둥하고 삐딱한 반응.
사실은 '얼마나 대단하길래 19살에 저 큰 상을 받았을까?'라는 질투 섞인 감정도 섞여있었으리라.

그렇게 지나칠뻔 했던 이 책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여러곳에서 내 눈에 띄었다. 그것은 지인의 블로그나 책 관련 사이트에서였는데, 이 책에 대한 호평과 함께 너무 좋아서 몇번이나 읽었다며 비슷한 느낌의 책들을 더 읽고 싶다는 열혈 추종자들의 글도 간간히 있었다. '뭐야? 그 정도란 말이야? 의외네..'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얼마전에 책을 구입하고는 조심스레 읽어보았다.

육상부 소속의 소녀답지 않은 외모를 가진 조금 냉소적이고 모난 외톨이 '하츠'와 오타쿠같은 광적인 면모에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기질까지 있는 '니나가와'. 이 묘하게 어울리면서 어울리지 않는 두 주인공의 공통점은 무리속에 섞이기를 거부한다는 것. 관심없다는 듯이, 시시하다는 듯이 무리의 바깥쪽에서 혼자만의 세계에 만족하듯 살고 있는 그들은 어쩌면 조금 외로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서로에게 무심한 척, 들키지 않게 관찰하고 있었던 걸 보면...

학창시절, 새 학기가 시작되면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점심시간에 같이 밥 먹을 친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라면 좋겠지만 운 나쁘게 혼자만 뚝- 떨어져 낯선 아이들과 같은 반이 되면 그것만큼 곤혹스러운 것이 없다. 그까짓 밥 한끼, 혼자 먹으면 어떠랴. 그러나 문제는 혼자일 경우, 나를 마치 거지 동냥하듯 쳐다 볼 그 시선들이다. 우습지만 세상은 혼자인 사람을 별종 취급하는 곳이다. 그 시선이 싫어서 사람들은 무리를 짖고, 그 속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그렇게 노력하나 보다. (사실, 학교다닐때 실제로 혼자 밥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그 결과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감수성 예민한 10대에 혼자라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공포다.)

그 기분을 아는 탓에 그들(무리)를 유치하다고 생각하며 시니컬하게 대하는 '하츠'를 보며 묘하게 쾌감을 느낀다. 아예 '무리'에 신경도 안 쓰는 '니나가와'가 멋있어 보이기까지 하다. 은근히 지지를 해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지 않았는가? 혼자서는 살 수 없는게 세상이다. 무리하게 집단속에서 나를 꾸밀 필요도 없지만 호의로 다가오는 그들을 비뚤어진 생각으로 애써 거부할 것도 없지 않을까? '호의인지 동정인지 모른채, 나에게 다가오는 그들이 싫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어설픈 열등감이다. '하츠'와 '니나가와'는 사실 '타인과 교류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냉소와 방관으로 포장하고 있을 뿐.

그러던 그들이 서로 어울리게 되면서 세상과의 첫 번째 교류를 시작한다. '하츠'가 '니나가와'의 등을 볼 때마다 발로 차 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교류의 물꼬를 트기위한 의식일지도 모른다. 나를 포장하지 않고, 남에게 잘 보이려 애쓰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조금씩 세상에 발을 내딛는다...

'하츠'와는 반대로 혼자 다니기를 싫어하여 무엇이든 친구와 같이 하려들었던 나는 나이가 들고 생각이 자라 이제는 혼자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것 쯤 (여전히 힘들긴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고(심지어는 아저씨들 수두룩한 백반집에서 혼자서 밥먹는 일도 해봤다-_-;), 여행이라던지, 쇼핑도 혼자 잘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친구와 같이 하는게 좋은 것은 함께 할 수 있는 즐거움이 때문이겠지. 집단에서 도태될까봐 두려워하는게 아니라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여유. '하츠'가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그 집단속의 아이들도 나이가 들고 생각이 자라면 나처럼 혼자서도 뭐든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하츠'도 어울려 살아가는 즐거움을 알게 될 거고.. 그런게 바로 성장일테니까!

오랜만에 읽는 성장 (혹은 청춘)소설이 나를 기분좋게 한다. 평론가들이 극찬을 할 정도의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과연 감각적이고 세련된 작품이다. 보통 책을 읽고나면 인상깊은 구절이나 상황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슬라이드 필름을 보듯 영상이 주욱-떠오른다고나 할까? 특히 하츠와 니나가와, 키누요 이 세사람이 콘서트에 늦지 않기 위해 전력질주하여 뛰는 장면이 묘하게 머릿속에 남아 '아- 뭐라고 해도 청춘은 청춘이구나..'싶은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삐져나온다.

읽을 당시에는 몰랐던 묘한 여운이 가슴 언저리에 남는 책이다. 마치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하나와 앨리스>처럼... 막상 볼때는 지루하고, 별로 재미있어 하지도 않았는데 이따금씩 보고 싶어지는 <하나와 앨리스>. 나에게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은 그런 책이 될 것 같다.


덧) 분명 감각적인 언어가 작품의 매력을 더해주고 있고 번역도 무난하지만, 가끔 보기 싫은 번역투가 영~ 껄끄럽다. 원본에 어떻게 써져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굳이 이렇게 직역하지 않았어도 되었을텐데...'하는 아쉬운 부분이 몇 군데 있어 원본의 느낌도 알고싶으니 아무래도 원서를 살 것 같다. (하드커버는 국내판을 갖고 있으니 웬만하면 문고판으로 사고 싶은데 있으려나...; 하드커버는 비싸!-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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