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작년 겨울, 새로 나온 책이 뭐가 있나 싶어 둘러본 일서(日書) 코너.
하늘 색 표지. 평상인지 뭔지 모를 곳에 나른하게, 조금은 시시한 표정으로 발 장난을 하며 앉아있는 여자아이. 책에 둘러진 띠지속에는 책의 작가로 보이는 상큼하게 웃는 미소녀.
'흐응- 일본에도 귀여니류의 소설이 있나보지? 제목은 좀 특이하네!'
'응? 역대 최연소 아쿠타가와 수상작? 이게? 일본 문학계도 이젠 별 수 없군!'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이런 편견섞인 시큰둥하고 삐딱한 반응.
사실은 '얼마나 대단하길래 19살에 저 큰 상을 받았을까?'라는 질투 섞인 감정도 섞여있었으리라.

그렇게 지나칠뻔 했던 이 책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여러곳에서 내 눈에 띄었다. 그것은 지인의 블로그나 책 관련 사이트에서였는데, 이 책에 대한 호평과 함께 너무 좋아서 몇번이나 읽었다며 비슷한 느낌의 책들을 더 읽고 싶다는 열혈 추종자들의 글도 간간히 있었다. '뭐야? 그 정도란 말이야? 의외네..'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얼마전에 책을 구입하고는 조심스레 읽어보았다.

육상부 소속의 소녀답지 않은 외모를 가진 조금 냉소적이고 모난 외톨이 '하츠'와 오타쿠같은 광적인 면모에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기질까지 있는 '니나가와'. 이 묘하게 어울리면서 어울리지 않는 두 주인공의 공통점은 무리속에 섞이기를 거부한다는 것. 관심없다는 듯이, 시시하다는 듯이 무리의 바깥쪽에서 혼자만의 세계에 만족하듯 살고 있는 그들은 어쩌면 조금 외로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서로에게 무심한 척, 들키지 않게 관찰하고 있었던 걸 보면...

학창시절, 새 학기가 시작되면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점심시간에 같이 밥 먹을 친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라면 좋겠지만 운 나쁘게 혼자만 뚝- 떨어져 낯선 아이들과 같은 반이 되면 그것만큼 곤혹스러운 것이 없다. 그까짓 밥 한끼, 혼자 먹으면 어떠랴. 그러나 문제는 혼자일 경우, 나를 마치 거지 동냥하듯 쳐다 볼 그 시선들이다. 우습지만 세상은 혼자인 사람을 별종 취급하는 곳이다. 그 시선이 싫어서 사람들은 무리를 짖고, 그 속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그렇게 노력하나 보다. (사실, 학교다닐때 실제로 혼자 밥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그 결과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감수성 예민한 10대에 혼자라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공포다.)

그 기분을 아는 탓에 그들(무리)를 유치하다고 생각하며 시니컬하게 대하는 '하츠'를 보며 묘하게 쾌감을 느낀다. 아예 '무리'에 신경도 안 쓰는 '니나가와'가 멋있어 보이기까지 하다. 은근히 지지를 해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지 않았는가? 혼자서는 살 수 없는게 세상이다. 무리하게 집단속에서 나를 꾸밀 필요도 없지만 호의로 다가오는 그들을 비뚤어진 생각으로 애써 거부할 것도 없지 않을까? '호의인지 동정인지 모른채, 나에게 다가오는 그들이 싫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어설픈 열등감이다. '하츠'와 '니나가와'는 사실 '타인과 교류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냉소와 방관으로 포장하고 있을 뿐.

그러던 그들이 서로 어울리게 되면서 세상과의 첫 번째 교류를 시작한다. '하츠'가 '니나가와'의 등을 볼 때마다 발로 차 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교류의 물꼬를 트기위한 의식일지도 모른다. 나를 포장하지 않고, 남에게 잘 보이려 애쓰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조금씩 세상에 발을 내딛는다...

'하츠'와는 반대로 혼자 다니기를 싫어하여 무엇이든 친구와 같이 하려들었던 나는 나이가 들고 생각이 자라 이제는 혼자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것 쯤 (여전히 힘들긴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고(심지어는 아저씨들 수두룩한 백반집에서 혼자서 밥먹는 일도 해봤다-_-;), 여행이라던지, 쇼핑도 혼자 잘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친구와 같이 하는게 좋은 것은 함께 할 수 있는 즐거움이 때문이겠지. 집단에서 도태될까봐 두려워하는게 아니라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여유. '하츠'가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그 집단속의 아이들도 나이가 들고 생각이 자라면 나처럼 혼자서도 뭐든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하츠'도 어울려 살아가는 즐거움을 알게 될 거고.. 그런게 바로 성장일테니까!

오랜만에 읽는 성장 (혹은 청춘)소설이 나를 기분좋게 한다. 평론가들이 극찬을 할 정도의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과연 감각적이고 세련된 작품이다. 보통 책을 읽고나면 인상깊은 구절이나 상황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슬라이드 필름을 보듯 영상이 주욱-떠오른다고나 할까? 특히 하츠와 니나가와, 키누요 이 세사람이 콘서트에 늦지 않기 위해 전력질주하여 뛰는 장면이 묘하게 머릿속에 남아 '아- 뭐라고 해도 청춘은 청춘이구나..'싶은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삐져나온다.

읽을 당시에는 몰랐던 묘한 여운이 가슴 언저리에 남는 책이다. 마치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하나와 앨리스>처럼... 막상 볼때는 지루하고, 별로 재미있어 하지도 않았는데 이따금씩 보고 싶어지는 <하나와 앨리스>. 나에게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은 그런 책이 될 것 같다.


덧) 분명 감각적인 언어가 작품의 매력을 더해주고 있고 번역도 무난하지만, 가끔 보기 싫은 번역투가 영~ 껄끄럽다. 원본에 어떻게 써져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굳이 이렇게 직역하지 않았어도 되었을텐데...'하는 아쉬운 부분이 몇 군데 있어 원본의 느낌도 알고싶으니 아무래도 원서를 살 것 같다. (하드커버는 국내판을 갖고 있으니 웬만하면 문고판으로 사고 싶은데 있으려나...; 하드커버는 비싸!-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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