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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 ㅣ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묵배미의 사랑>이란 영화가 있다.
박영한의 동명소설이 원작이고, 박중훈, 최명길 주연의 영화로 소외계층의 불륜이 소재인데 90년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및 남우주연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뜬금없이 웬 영화얘기냐며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다름이 아니고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했을때, 제목을 '우묵배미의 여름'이라고 읽고는 '<우묵배미의 사랑>후속작쯤 되겠거니..;;'라는 생각에 당연히 불륜소설일 거라고 착각을 했었다는 우스꽝스러운 얘기를 하고 싶어 영화얘기부터 꺼냈다.
그 후, 이 책 제목을 제대로 인지를 하고 난 후에도 내 뇌는 처음 인지했던 '우묵배미'의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는지 한동안 '우부메'가 아닌 '우무베'로 읽는 실수를 범했다. 딱히 그 영화를 감동적으로 본 것도 아닌데 단순히 쓰인 자음이 비슷하단 이유만으로 뇌에서 제 멋대로 글자를 재조합하다니..참 난감하다.;; (하도 이런일이 많아 이젠 놀랍지도 않다만;) 그리곤 잊고 지내다가 얼마전 교고쿠도 시리즈중 하나인 '망량의 상자'가 출간되면서 이 소설도 같이 이슈로 떠올라 그제서야 나는 이 소설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책은 국내에도 꽤 많은 매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로 2004년 3월에 출간되어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소설이다. 고서점 교고쿠도(京極堂)를 운영하는 주인공 교고쿠도. 본명은 따로 있으나 지인들은 그를 서점이름으로 부르곤 한다. 괴짜같은 행동에 지식은 방대하고, 지독한 애서가(愛書家)에 기억력도 남다르며 그에 걸맞게 말솜씨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수준급이다. 달변인지 궤변인지 모를 그의 이론을 듣고 있자면 어쩐지 내가 알고 있는 건 다 거짓정보이고, 심지어 허접하고 쓸데없는 것 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그는 세간의 시선과 편견탓에 그리 즐기지는 않지만 음양사(陰陽師)의 일도 겸하고 있으니 이제는 우러러보이기까지 할 정도다.
그런 교고쿠도의 주변에는 비범한 사람들이 많다. 눈이 잘 안보이는 관계로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간판만 탐정인 에노키즈, 능력좋고 혈기넘치는 형사인 기바 슈타로, 보이쉬하고 발랄한 숙녀이지만 교고쿠도의 여동생답게 가끔 번뜩이는 생각과 논리정연한 추리를 해내는 추젠지 아츠코... 그런 사람들 틈에서 전체 이야기를 서술하는 삼류작가, 세키구치 다츠미는 그저 범인(凡人)일 수 밖에 없다. 그를 보고 있자니 '어휴-답답해'하다가도 순간 안쓰러워지는 건 나도 비범(非凡)보다는 범인(凡人)에 가까운탓에 절로 느껴지는 못난 안타까움 같은 것이리라.
'우부메의 여름'은 일본적인 색채가 아주 짙은 작품이다. 더욱이 괴담과 전설, 역사, 신학, 과학에 대한 방대한 주변지식을 기초로 한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추리&미스테리 쪽이겠지만 사건을 토대로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것들에는 기존 소설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치밀함과 번뜩임이 있다. 미스테리 소설의 길을 따르고 있으나 묘하게 철학적이고, 문학적이다. 아마 그 점이 이 소설의 매력을 극대화 하고 있지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총 600페이지가 넘는 나름,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하드커버 양장본에 나무랄데 없는 번역과 독자를 배려하는 자세한 각주설명이 있어 이해하기 힘들지는 않지만, 앞에서 말했듯 일본적 색채가 짙어 일본의 역사나 민속학, 전통문학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중간중간 읽어도 읽어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심지어 관심도 있고, 깊이있게 다루지는 않았지만 기초적인 건 다 배운 나도 진도가 더뎠으니...참..할 말이 없다.)허나, 그것도 전체적인 스토리 진행상 읽고만 넘어가도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나마 '각주'이기에 망정이지 '미주'였으면 미쳤지 싶다.-_-;; 더운 여름날 앞 뒤로 이리저리 책 넘기는게 보통일인가..!)
다만 아쉬운 점은 '이 두꺼운 책에...그것도 하드커버 양장본인데... 웬만하면 '책갈피 줄' 하나 있으면 좋잖아!'하는 생각이다. 물론 아무거나 종이 책갈피를 이용해도 되겠지만 '책갈피 줄'의 편리함에 비할바가 아니지..! 게다가 난 여태껏 하드커버는 다 '책갈피 줄'이 있는 걸로 인식해왔기때문에 그게 없는 걸 알고 일말의 배신감도 느꼈더랬다. (- _-;;) 나처럼 이 책을 처음잡은 순간부터 놓을때까지 빈틈없이 쭈욱 읽을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바쁜 시간 쪼개어 틈틈히 읽을 사람은 '책갈피 구비'는 필수다.
또한가지! 이 책이 '외국어 표기법'에 충실히 입각해서 쓴 것은 알겠지만 일본어를 좀 아는 사람이나 혹은 전공자일 경우, 인명이나 지명같은 고유명사 표기가 엄청 신경쓰인다. 여기서 '외국어 표기법'의 실용성을 따지자는 건 아니지만 '쿄고쿠도' '키바 슈타로' '쿄코'라는 발음에 더 익숙하기에 현행 표기법 상 '교고쿠도' '기바 슈타로' '교코'라고 하니 일본어 좀 아는 사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영~ 찜찜하다. (영어 표기법상 'tsunami'이고 듣기에도 '츠나미' 혹은 '쯔나미'가 맞다고 생각했는데 표기법상 어두에 오는 된 소리는 무조건 예사소리로 바뀌고, 'tsu'의 경우 '쓰'로 발음한다 하니...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고..답답해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이야 많이 무뎌졌지만...;; '하루빨리 이 '외국어 표기법'을 개정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은 굴뚝같다. (특히 '키무라 타쿠야'를 '기무라 다쿠야'라 표기한 것을 보면 아우~ 그 답답함이란...;; 끄어-)
어쨌든, 그런것이야 무시하고 편한대로 읽으면 그만이니 이 여름,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고 무료함에 지친다면 이 책으로 더위를 식혀보는것도 괜찮은 방법인 듯 싶다. 읽는 내내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덧) '우부메'란 사전상 원래 의미는 '산녀産女'라 하여 '임신을 한 여자'라는 뜻이지만 책에서는 '고획조姑獲鳥'라 하여 아이를 낳다가 죽은 여자 혹은 그 여자의 집념이 이것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고획조와 우부메도 미묘하게 차이가 있으니 마지막에 헷갈리지 않으려면 잘 인지하고 봐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