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 하드 럭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요시토모 나라 그림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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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8곡이 수록된 '머라이어 캐리'의 베스트앨범 '#1'을 틀어놓고, 그때부터 읽기 시작해서 16번째 트랙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 읽어버렸다. 글자 하나하나 정성들여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에 분량이 적은 책이라 금방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읽었던 시간만큼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딱히 어려운 내용은 아니지만 '왜 <하드보일드 하드 럭>이란 제목인가?'와 '두가지 이야기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를 생각하면 가볍게 넘길 수는 없는 책이다.

책은 두 파트로 나뉘어 진다. <하드보일드>파트와 <하드 럭>파트.

첫번째 파트는 (아주)살짝 공포스럽달까? 주인공이 가는 곳에 예상치 못한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유령이 나오기도 하니까... 요즘처럼 더운 열대야에 읽으면 살짝 더위가 가시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가 워낙에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어, 그 공포감은 몇 초도 안되어 사라져버린다.
여자이면서도 여자를 사랑한 적이 있던 주인공은 그 사랑했던 여자, '치즈루'에 관해서 잊고 살다가 홀로 여행을 하던중 그녀를 생각해내게 된다.
그리고 낮에 보았던 이상한 사당, 맛이 없던 우동집, 낡고 허름한 호텔... 그곳에서 꾸었던 꿈과 기이한 사건은 치즈루에 대한 그녀의 기억을 점점 선명하게 드러낸다.

두번째 파트는 결혼을 앞두고 퇴직을 위해 무리하게 일을 마무리짓다가 과로로 쓰러져 죽음의 길을 가게 된 언니를 지켜보는 동생의 이야기이다. 언니의 입원으로 인해 일어나는 사건들,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변화하는 생활,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되새기는 추억을 동생의 관점에서 풀어나가고 있다.

<하드보일드>와 <하드 럭>은 각각의 이야기이지만 묘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은 아무리 그것을 좋게 포장하려해도 <불운 Hard Luck>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인간은 슬픔을 건너뛰고, 외로움을 이겨내어 결국은 <하드보일드 Hard-boiled>하게 살아가야만 한다.
쉽지 않겠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버겁겠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꿈'은 그런 현실을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는 비상구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비상구에 언제까지나 머무를수는 없는 일. 현실로 돌아와 자신의 길을 담담히 가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영원히 멈춰져버릴것 같은 시간도 문득 정신을 차리고보면 어느새 흐르고 있고, 그것을 느끼는 순간, 내 삶도 조금씩 변화하고 발전해나간다.
자기자신을 질책하지 말고 하드보일드하게 살라는 치즈루의 말처럼 조금은 뻔뻔하게 남은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사랑했던 사람을 위하는 길이며 동시에 나를 위한 길일 것이다.


+기억에 남는 문구 +

「넌, 정말 운이 강해. 그래서 좀 남다른 인생을 보내게 될 거야. 많은 일이 있겠지. 하지만 자기를 질책하면 안돼. 하드보일드하게 사는 거야. 어떤 일이 있어도, 보란 듯이 뽐내면서」55p. 치즈루.

「목욕탕에서, 옛날에 언니에게서 해외여행 기념으로 받은, 좀처럼 닳지 않았던 불가리 동물 모양 비누가, 이제는 동물 모양이 아니라 그저 딱딱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또 엉엉 울었다.
시간이, 가버린다. . .」123p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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