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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의 나레이션 1 - 시공 애장 컬렉션
강경옥 지음 / 시공사(만화)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내 주위의 누군가에게 '타임머신이 있다는 가정하에, 돌아가고 싶은 시기를 골라봐!'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창시절이라고 말한다. 그중에서 '고교시절'을 꼽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내주위 사람들의 90%는 고교시절이라 말한다) 그건 아마 '고등학교때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했었다면...혹은 조금더 진지하게 진로에 대해 고민했더라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라는 일종의 후회가 아닐까? 아무래도 고교시절이 지나면 어떻게든 사회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것이니까...
'나의 17세는 어땠지?'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너무 평범해서 히죽, 웃음이 난다. 정말 평범하게, 특별한 일 없이 보냈구나...싶어서 조금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이렇게 말하면 나를 아는 사람들은 '그게 평범한거냐?'라고 목소리를 높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다지 사건을 일으켜가며 지내진 않았으니, 나름대로 평범한거지 뭐! ( -_-);; - 적당히 야자 땡땡이 치고, 적당히 선생님께 반항하며, 적당히 교칙을 어기는 정도랄까? 어차피 중학교때 놀만큼 놀았으므로(-0-;;) 고등학교땐 얌전하게 지냈다고..!(당당)
원래 난 강경옥의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뭐랄까 난해하다라고 해야하나? 독백같은 것이 많아서 글자수도 많고,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다들 조금 어두운 캐릭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했던 데에는 처음 강경옥님의 작품을 대했을때 제대로 읽지 않았던 탓도 있겠지만 만화잡지에 연재되던 것을 내용도 모른채 중간부터 봤기 때문이라는게 더 큰 이유일 듯 하다. 그러니 당연히 흥미도 떨어지고, 중간중간 나오는 독백들이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리가 없지...-_-;; 더욱이 그 작품은 '노말시티'였다. 앞 내용을 전혀 모르고 봤기 때문에 전체적인 상황만 알뿐 세세한 부분은 전혀 몰랐던지라 미묘한 인물들의 감정과 대사가 하나도 감정이입 되지 않고 어렵게만 보였다. 또, 당시에 내가 만화를 보는 기준은 스토리도 중요했지만 예쁜 그림 우선이었으므로 딱 순정만화적인 그림이 아니면 잘 보지를 않았었다. (예를 들면 이은혜, 원수연, 한승원, 이미라같은 작가의 그림..) 아..강경옥의 그림체가 이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취향이 그 쪽이었다는 말이다.(에..변명이라나...;;)
어쨌든, 별로 좋아하지 않다가 '별빛속에'라는 작품을 보고 완전히 눈 뒤집혀서, 그때부터 찾아읽기 시작했던것 같다. (너무 감동한 나머지 서울문화사에서 재출시 된 것을 한꺼번에 사들이느라 한달동안 쫄쫄 굶었다.-_-;;;) 그렇게 해서 읽게 된 것 중에 '17세의 나레이션'이 있었는데 사실 당시의 느낌과 최근 새로 읽었을때의 느낌은 사뭇 틀리다. 책에서 세영이가 연극에서 '어린왕자'의 '여우'역을 맡았을때 말한것과 같이 '어렸을때 읽었던 그 느낌'과 '다시 읽는 느낌'은 확실히 다르다고 했던 것 처럼...(이래서 좋은 책은 한번 읽는게 아니라는 걸까?)
어릴적 부터 친하게 지내온 형제같은 남자친구가 나 외에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품는 것이 기분 좋을 여자애가 과연 있을까? 그건 남자의 경우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내가 그 애를 좋아한다, 안한다의 문제가 아니라 나만의 것이라 여겼던 어떤것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는 기분! 그런 것이리라. 실제로 세영이가 현우를 좋아한다고 느낀건 혜미가 나타나면서부터니까...^^ 사실 친구에서 연인이 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친구사이가 연인사이가 된다해도 지난 세월동안의 버릇, 행동, 기타 등등 때문에 오히려 '연인'이란 말로 묶여버리면 더 서먹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안그런 경우도 많겠지만...하하..
이 만화는 얼핏 보면 학원물의 삼각관계 혹은 사각관계가 주된 내용 같겠지만 잘 살펴보면 이것은 성장물에 가까운 만화다. 특별히 교우관계가 나쁜건 아니지만 썩 친한 친구도 없는 세영이가 17세를 맞이하면서 겪는 일련의 사건과 감정변화가 주축을 이룬다. 얼떨결에 든 연극부에서 만난 부장 연호선배, 어릴적 소꼽친구 현우, 그리고 그를 빼앗아간(?) 혜미, 어쩌면 이때부터 가장 든든한 세영의 우방이 되어줄 반장 현정은 17세의 세영이에겐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들이다. 서로를 길들이고,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그들! 세영이가 느끼는 감정들, 고민하는 것들, 그리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들을 보면서 읽는 나도 같이 느끼고, 고민하고, 더 나아가서는 내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런면에서 정말 잘 만들어진 만화다. 단지 재미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드는 만화란 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고등학교때 읽을때는 그냥 연호선배랑 사귀면 될 것을 괜히 현정이를 위한답시고 연호선배의 마음을 의심하는 세영이가 참 답답했는데..^^ 지금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또, 그때는 '현정이 같은 이해심 넓고 어른스러운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라 생각했던 것이 지금보니 '현정이도 역시 어렸던거야..'라는 걸 알겠고... 그러고보면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시간이 흐르면 점점 이해되는게 많아지고, 포용력이란게 생기는건가보다. 하지만 그때와 바뀌지 않고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건 '남자들은 정말 무신경해!'라는 것! (-_-+) 현우는 말 할 것도 없고, 연호선배도 사실은 무신경한 남자라는 건 여전하다.(연호선배! 좋아하는 여자의 친한 친구와 가까이 지내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대놓고 만나는 건 무신경 한 것일수도 있다구요! -_-;; 그러니 현정이도 딴 마음 가지게 되고, 그것땜에 세영이가 쉽게 마음을 못 연것 아니겠어요? 난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어른들은 곧잘 '지나고 나면 그런것쯤 아무것도 아니야. 어른이 되면 알꺼야!'라고 말하곤 한다. 하긴 이런말은 나도 사촌동생들에게 하곤 하니까...;; 그러나 그런말은 어른이 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말이다. 17세때는 17세 나름대로의 커다란 고민이 있게 마련이고, 어차피 속시원히 해결해주지 못할거라면 그들을 믿고 기다려봐주는것도 어른의 몫이다. 내가 17세때 느꼈던 고민과 그들의 고민이 같을 수 없으므로, 경중을 따질수는 없지만 함부로 말하면 곤란하지.. 난 나의 지난시절을 잊지않는 그런 어른이 되고싶다. ^^v
무얼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는 경우는 없어.
분명히 무언가는 후회하게 돼.
그래서 모든 건 섣불리 결정하는 게 아니야.
시간이 지나면 상황은 또 변하니까.
...본문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