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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퍼홀릭 1권 1 - 레베카, 쇼핑의 유혹에 빠지다 ㅣ 쇼퍼홀릭 시리즈 1
소피 킨셀라 지음, 노은정 옮김 / 황금부엉이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이름 : 레베카 블룸우드.
세일이나 한정판매, 특별적립이란 문구가 보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정말 미친듯한 쇼핑광.
카드빚과 대출에 허덕임에도 줄어들지 않는 소비욕구.
대책이 없다못해 대단해보이기까지 하는 여자.
밑도 끝도 없이 낙천적 성격의 소유자이며 망상의 대가.
하고 있는 일에 흥미를 느끼지도, 그렇다고 뛰어난 자질도 보이지 않는 25살의 아가씨.
주인공 레베카 블룸우드를 정의하자면 이쯤 될 것이다.
첫 장부터 강력한 흡인력으로 독자를 잡아당기는 이 책은 여자라면, 혹은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을 할 만한 이야기이다. 레베카는 길거리를 지나다니다 세일이라는 문구가 보이면 심장이 요동치고 '내가 필요한게 뭐가 있지?'를 고민한다. 뭐라도 건져내야한다는 일념으로 마치 전투에 임하는 장수처럼 돌변하는 그녀. 집에 가는 길에 조그만 거라도 하나 사지 않으면 왠지 허전해지고, 고가의 물건을 살라치면 '이건 나에 대한 투자야!'라며 자신을 정당화 한다. 그리고는 카드고지서가 나오면 '이건 뭔가 잘 못 된거야!'라며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그녀. 대금을 독촉하는 은행담당자의 카드를 보고 아연실색. 어떻게 돈을 갚을지 고민하지만 그날 저녁에도 어김없이 카드를 긁고만다. '어차피 늘어난 빚, 여기서 조금 더 쓴다고 달라질게 뭐야!?'라는 말도 안되는 자기합리화와 함께.
난 '으휴- 한심해! 미친거 아냐?'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도 차마 입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게 미친듯이 쇼핑을 해대는 레베카의 모습에는 일면 나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한심하다고만 보기엔 꽤 사랑스럽고 귀엽거든. 엉뚱한 그녀의 망상은 보는 사람으로하여금 배꼽잡고 웃게하다가도 어느새 공감하게 만드니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다. 대출금을 갚기 위해 현실적으로 노력해도 부족할 판에 독촉장을 몰래 갖다 버리고는 "난 독촉장 같은거 받은 적 없어!"라고 세뇌를 한다던가, 로또 1등에 당첨되면 만사 해결될거라 생각하고 로또를 사고, 당첨되지도 않은 1등 금액으로 뭘할까를 고민하하며 잠시 행복감에 젖는 그녀를 보면 대책이 없다가도 마냥 천진한 모습에 웃음이 비어져 나오는 것이다. 피식.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재벌 2세를 꼬셔볼까 생각도 하고, 시골집에 내려가 부모님께 말해볼까 고민도 하지만 일말의 양심은 있었던지 차마 그럴 수는 없던 그녀. 이쯤되니 '자업자득이지 뭐!'라고 생각하던 나도 슬슬 걱정이 된다. 얘 진짜 돈 못갚아서 신용불량자 되고 길거리에 나앉는거 아냐? ...하지만 나의 걱정도 잠시 그녀는 시골 부모님댁에 피신해있던 도중 번뜩 떠오르는 궁금증을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결합시켜 문제를 해결한다. 그것도 아주 멋지고 쿨하고 완벽하게 말이다. 아 그 유쾌,상쾌,통쾌함이란. 1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갑자기 희망이 샘솟는 듯 하다. 전화위복은 이럴때 쓰라고 있는 말인가보다.
그녀의 문제해결 방법은 딱 그녀다운 최고의 방법이었다. 게다가 이제껏 대책없게만 보이던 그녀의 낙천적 성격과 엉뚱함이 없었다면 아마 그런건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한심하게만 보였던 그녀의 기질이 결국은 그녀를 살리는 일등공신이 된 것이다. 중간중간 신데렐라류의 신파로 흘러가는 분위기에 내심 '설마...어정쩡하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 싶었는데, 그런 내 걱정을 알았는지 그녀는 다행히도 그녀만의 재능으로 문제를 해결해냈다. 그것이 다소 드라마틱하긴 했지만 뭐 어떤가. 이 소설 최고의 미덕은 바로 그것인데.
만약 이 소설의 마지막이 결국 돈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그녀가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어 고생을 하게 된다는 결말이었다면 '쯧쯧. 내 그럴 줄 알았다. 꼬시다!'라며 혀를 차고 비난을 하며 잠시동안 신나게 씹어댈 수는 있겠지만 금세 마음은 우울해질 것이다. 하지만 쇼퍼홀릭은 '정말 운이 좋군!'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지게 문제를 해결해내는 레베카를 그려냄으로써 보는 사람에게 대리만족을 경험하게 해준다. 거기에 다소 질투어린 시선은 보낼지언정,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어찌보면 그것도 그녀의 재능이고 그녀의 낙천적인 성격이 그렇게 만든거니까. 그리고 나는 거기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이힛. :)
그러나 내가 이렇게 빙긋이 웃으며 '잘됐다!!'하고 박수칠 때 쯤, 작가는 살짝 뒷통수를 때린다. 개과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레베카가 이번엔 요행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된통 고생을 했으니 앞으로 대책없는 쇼핑은 자제하겠지?'싶은 내 생각을 비웃기나 하는 듯, 유유히 홈쇼핑 물건을 주문하는 그녀를 묘사한 것이다. 그것도 여전히 번지르르한 발언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면서.
후아- 결국 제 버릇 남 못주는 걸까. 앞으로도 파란만장한 그녀의 쇼핑일기가 계속 될 걸 생각하니 살짝 두통이 생기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근데 묘하게 기대되되는게 두근거리기까지 하니, 어쩌면 난 이미 대책도 없고 한심하지만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레베카 블룸우드에 빠져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다음 이야기 <쇼퍼홀릭 2 - 레베카, 맨해튼을 접수하다>가 심히 기대되는 바이다. 얼른 읽어야지!
+)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결코 가벼운 소재는 아니다.
웃으며 즐기지만 그 속에서 얻는 교훈은 결코 우스운게 아니다.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은 코믹함속에 묻힌 빛나는 진주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단, 레베카를 보면서 '대리만족'은 할지언정, 실제로 그렇게 무턱대고 쇼핑하지는 마시길!
'나도 저렇게 멋지게 해결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고 카드를 마구 긁어대다간
멋지게 신용불량자 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