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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회계사 사건수첩 - 주가 조작과 비자금 조성 편
야마다 신야 지음, 김진태 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신간코너를 기웃거리다 이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발견한 건 순전히 우연이다. <女회계사 사건수첩 - 미녀 회계사 모에미의 감사보고서 : 주가조작과 비자금 조성편>이라는 장황한 제목과 부제를 달고 나타난 이 책은 이미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가끔 버스를 타고가다 보면 '세무사', '공인회계사'같은 간판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런걸 볼 때면 '세무사와 회계사의 차이점이 뭐지?'하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아쉽게도 잠깐 생각하는 걸로 그칠 뿐 제대로 알아본 적은 없다. 막연하게 느낌으로만 알지 누군가 설명해보라면 '엄...그냥 세무사는 세금관련일 하는 사람이고, 회계사는 기업의 장부를 감사하는 사람이 아닐까?'라며 우물쭈물할게 뻔한 그런 지식이었다. 사실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의 소개를 보니 회계사라는 직업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낸 직업문학이라고 한다. 스르륵 넘겨 뒷부분에 실린 부록을 보니 '회계사'와 '세무사' '세무공무원'에 대한 차이점과 회계에 대한 몇 가지 사항도 Q/A코너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엉? 세무사랑 세무공무원이랑은 또 어떻게 다른거야? 흠. 읽어봐야겠네.
이야기는 서른의 노총각, 가키모토 가즈마가 스물여덟에 갓 입사하여 2년간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기록한 것이다. 패기는 넘치나 융통성이 조금 부족한 가키모토가 노련한 모에미와 파트너가 되어 회계감사를 다니며 겪게 되는 일들은 꽤 흥미진진하고 즐겁다. '후지와라 모에미'는 최연소 공인회계사에 합격한 인물로 현재는 24세, 5년차 회계사이다. 서른이 훨씬 넘어서 겨우 합격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녀는 스무살에 보란듯이 합격했으니 나이는 어리지만 꽤 실력가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모에미가 공부벌레타입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패션과 유행에 민감하고, 유흥과 남자에 관심이 많다. 게다가 미인형이라 추종자도 많으며 자신의 외모를 이용할 줄도 아는 여우다. 한마디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인재랄까.
기업의 회계감사라면 왠지 지루하고 고리타분할 듯한데, 소설은 추리적 요소를 살짝 집어넣어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기업의 드러나지 않은 문제점을 지적해내고 바로잡아가는 모에미를 보고 있으면 꼭 미녀탐정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모에미는 겉으로는 빈둥빈둥 노는 것 같아 보여도 결정적인 순간, 문제점이나 비리를 포착하는 능력은 과연 프로임을 보여주는 주인공이다. 짓궂은 말로 후배사원을 골탕먹이기 일쑤이고, 경마장에 갔다가 지각하기를 밥먹듯이 해도 그녀가 프로일 수 있는 이유는 평소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으로 정보를 빨리 습득하기 때문이다. 경마장에서 귓등으로 흘려들은 소문조차 사건해결에 결정적인 역할로 쓸 줄 아는 그녀다. 가끔 너무 앞서가는 엉뚱한 추리가 황당할 때도 있지만 그 엉뚱함이 사건(?)해결의 열쇠가 되기도 하니 도저히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다. 전형적인 주인공 타입이랄까.
왜 학교 다닐때 보면 꼭 이런 사람 하나씩 있지 않나. 학교에서 맨날 잠만 자고 땡땡이 치고 노는데도 시험보면 성적이 톱을 달리는 괴물 같은 아이. 여러 분야에 대해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알기를 좋아해서 이야기를 해보면 박식하기까지한 아이. 모에미가 딱 그렇다. 매뉴얼대로만 해서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문제를 그녀는 나름의 경험과 추리를 통해 멋지게 풀어가니 샌님같은 가키모토는 그저 부러울 수 밖에.
이 책은 지루하지 않게 회계사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는 것과 회계용어나 주식관련 용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어서 좋다. 나처럼 그 쪽으로는 전혀 모르는 문외한에게는 참 고마운 책이다. 하지만 전개가 빠른 탓에 회계감사의 과정이 비교적 쉽게 묘사되어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다는 게 단점이다. 그 부분은 작가가 '무겁지 않고 대중성과 오락성을 갖춘 회계 관련 소설을 쓰는 것'이 목표라고 했으니 오히려 목적에는 충실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마지막 에피소드에 뜬금없이 들어간 판타스틱 동화같은 이야기는 조금 지나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지은이의 소설가로서의 욕심일까. 어쨌든 독자로서는 조금 안타깝다. 회계의 구조를 알면 회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꼭 경영자가 아니라도 주식을 하는 사람은 회사를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으니 회계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그래도 기회가 되면 경영이나 주식관련 공부를 해보고 싶었는데 이 책이 촉발제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니 이미 진행중일지도.
+ 생각해보면 회계사와 세무사, 세무공무원이 차이는 헷갈릴 것도 없는 거였다. 입장의 차이만 제대로 알면 되는 거였는데...; 어쨌든 이제는 헷갈릴 일 없겠지! :)
+ 간단히 정리하여 부록으로 실은 회계용어를 알아두면 꽤 유용하겠다. 대차대조표라던지, 분개, 분식 같은 용어를 일반시민이 어찌 정확하게 알까.(설마 나만 몰랐던 거?) 이 기회에 알아두면 좋을 듯 하다.
+ 모에미같이 선천적으로 가진 능력도 좋은데 알게 모르게 노력하는 애들 보면 참 자극받는다. 이건 기분 좋은 자극이다. 음. 좋은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