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사춘기시절 행동패턴은 홀(hall)이 말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몸소 입증해보이기라도 하려는 듯, 반항과 일탈로 점철되어 있었다. 흔히 그 시절의 아이들이 겪는 가치관의 혼돈과 주체할 수 없는 감정변화는 어떤 형태로든 겉으로 드러나기 마련인데, 나의 경우 '어른들이 원하는 모범적인 학생상'을 거스르는 행동을 통해 그것들을 발산했던 것 같다. 비록, 그 생활이 길진 않았지만 말이다. (소위, '날라리')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도 그 시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물론, 나보다 훨씬 심오한데다 조금 더 미쳐있긴 하지만(본인도 말하지만, 정말 이 표현이 어울린다), 기본적으로 사춘기적 행동패턴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책은 이미 몇 번이나 퇴학을 경험한 그가 '펜시'에서 또 한번 퇴학을 당해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3일간 겪는 일들을 독백형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은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하며, 온통 불만투성이인 그는 충동적으로 짐을 싸서 학교를 나오지만 그를 반겨줄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가출한 아이들이 의례 그렇듯, 처음에는 의욕과 배짱이 두둑한 법. 콜필드는 전혀 그런상황에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세상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여자를 꼬시는 것도, 술을 마시는 것도, 심지어 학교를 나온 첫날 부터 마주치기 싫은 사람을 만나기 까지했다. 나중에는 호텔 종업원과 짠 '콜 걸'에게 돈을 빼앗기는 지경에까지 이르니 이건 상상했던 것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러나 콜필드는 그런 상황에서도 혼자 상상에 빠져 영화를 찍는다.(-_-;) - 사실, 이 부분에서야 '콜필드가 아직 어리긴 어리구나!'를 실감하게 되어 오히려, 가장 즐거웠던 부분이랄까.^^)

그 이후에도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콜필드는 꽤 많은 일을 겪고 무수한 감정의 변화를 맛 보지만 결국 '세상에 마지막 남은 순수'라 여기는 막내동생, '피비'를 통해 어느덧 성난 파도같던 감정들을 잔잔하게 가라앉힌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그가 여기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 진다는 말을 하며 추억에 잠기는 모습은, 아쉽지만 그간의 혼란과 사춘기의 종지부를 찍고 있음을 인정한다는 걸 의미할지도 모른다. . 그는 아직 완전한 어른이 아니다. 그렇다고 어설픈 세태비평으로 반항만을 일삼던 청년또한 아니다. 그가 앞으로 어떠한 어른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 시절 그가 했던 생각과 행동을 잊지 않는다면 좀 더 그럴듯한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그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눈에 띄는 죽음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겸손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p.249


덧) 1. 때로 콜필드의 과대망상은 '빨강머리 앤'의 그것과도 흡사하다. 게다가 놀라운 일에는 심하게 오버하는 말투도 어쩐지 재미있고...^^ 모든일에 부정적이거나 불만투성이인 그는 마음에 안들지만, 가끔 위와 같은 행동을 하는 콜필드가 귀여워서 슬며시 웃음짓게 된다. 이건 내가 이미 그 시절을 지나왔기때문에 그런거겠지?

2.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제대로 된 번역이 필요해!'였다. 그 말을 몸소 실감했다. 전체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번역은 없었지만 묘하게 '이 느낌이 아닐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드는 문구가 많다. 다른 역자가 번역한 걸로 한번 더 읽어보고픈 생각이 불쑥 든다. (가장 좋은 건 원서를 읽는 것이겠지만...;)

3. 과연, 청소년기(특히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학생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면 좋을법한 책이다. 내가 그때 이 책을 읽었다면 아마 엄청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찰리와 초콜릿 공장 (양장) - 로알드 달 베스트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솔직히 고백하면,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영화 예고편을 보고 난 뒤였다.
여느날과 다름없는 인터넷 서핑중에 '조니 뎁'이 나오는 (게다가 '팀 버튼' 감독의) 새 영화 예고편을 본 것이었다. 예고편에 나오는 '조니 뎁'의 모습은 내가 알고 있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 옛날 가위손을 연상케 할 만큼의 분장은 아니지만, 단발머리와 연미복의 조화는 살이 쏙 빠져버린 그의 얼굴만큼이나 놀라운 것이었다. 게다가 '팀 버튼' 감독의 연출답게 화려한 영상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고, 내용마저 흥미로왔으니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라는 제목은 순식간에 뇌에 입력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온라인 서점 '아동 베스트'의 순위권에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대대적인 할인판매를 해대니, 안 그래도 동화류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가 안 사고 베길수가 있겠는가. 조금 늦었지만 사서 읽어보았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윌리 웡카라는 초콜릿 공장 주인이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공장 내부를 초콜릿 속에 숨겨진 '황금빛 초대장'을 찾아내는 5명의 어린이에게만 공개한다는 광고를 내면서 시작된다. 이에 찢어지게 가난한 우리의 주인공 찰리가 마지막 초대장을 발견하면서 본격적인 공장탐방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찰리외에 황금빛 초대장을 발견한 아이들을 살펴보자.

1. 뚱뚱한 몸, 잔뜩 부풀은 볼에는 욕심이 가득해 보이는, 먹는게 취미인 아우구스투스 굴룹.
(그의 엄마도 마찬가지. 그러나 아이가 아무리 먹어도 그저 예뻐하기만 하는 바보엄마.)
2. 갖고 싶은 것은 무조건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떼쟁이 버루카 솔트.
(그녀의 부모는 더 한심. 딸이 조금만 떼를 써도 '오냐오냐'받아주며 무조건 해준다.)
3. 자나 깨나 껌을 씹으며, '그만 씹으라'는 엄마의 말을 무시하는 바이올렛 뷰리가드.
4. 하루종일 TV 앞에서 떠날줄을 모르는 마이크 티비.
(이들의 부모도 앞의 부모와 다를바가 없다. 몇번 잔소리만 할 뿐, 아이를 방치해 두는 건 마찬가지.)

이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님, 그리고 조 할아버지와 함께 초콜릿 공장에 들어가게 된 찰리는 상상할 수도 없던 신기한 일들을 겪게 된다. 그 안에는 유쾌한 윌리 웡카씨 외에도 들어본 적도 없는 움파룸파 사람들이나 호두까는 다람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나로 하여금, 마치 '백설공주'에 나오는 난쟁이들을 연상케 하고, 숲속의 동물친구들을 연상케 해서 잠시 옛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책은 단순히 '신기한 초콜릿 공장 여행기'를 통한 아이들의 상상력 증진만을 다루고 있진 않다. 오히려 그 뒷면에 자리잡고 있는 좀 더 중요한 교훈을 일깨우고 있다. 바로 위에서 나열한 꼴불견 아이들의 막 돼먹은 행동의 결과가 그것.
대부분의 아이들이 청개구리마냥 '하지 말라는 것'은 하고 싶고, '하라는 것'은 하기 싫어하는 성향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이건 어른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일 뿐. 그러나 위의 네 아이들은 그저 자신이 '어린이'라는 이유로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야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먹고 싶고, 하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은 '강력한 주의'에도 불구하고 멋대로 하고 마니 당연히 그에 합당한 응분의 대가를 얻을 수 밖에. 이 대가는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고 멋대로 방치한 그 부모에게도 똑같이 돌아간다.

책의 끝 부분에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가 개과천선하고 올바른 생활을 하는가의 여부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잘못된 판단과 행동의 결과만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아동기에 아이의 인성형성은 중요하다. 그래서 동화를 읽어주고,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바른 말을 가르치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통제능력이 약해서 무언가에 빠지기 시작하면 끝을 모르는 집중력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를 대신해서 통제를 해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고, 제 멋대로 하려는 아이들은 눈물이 쏙 빠질만큼 엄하게 타이르고 벌을 세워서라도 바로잡아 줘야 한다. 버릇 없는 아이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나쁘지만,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부모와 주위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아이들도 자신의 잣대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안다. 다만 판단을 함에 있어서 일부 잘못된 교육으로 기준이 되어야 할 잣대가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책은 아이는 물론, 부모님도 꼭 같이 읽어 봐야 할 책이다.


덧) 최근에 보는 TV 프로그램중에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지금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프로그램 속, 모 쌍둥이 형제에게 기회가 되면 꼭 이 책을 읽어주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든다. -_-;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작년 겨울, 새로 나온 책이 뭐가 있나 싶어 둘러본 일서(日書) 코너.
하늘 색 표지. 평상인지 뭔지 모를 곳에 나른하게, 조금은 시시한 표정으로 발 장난을 하며 앉아있는 여자아이. 책에 둘러진 띠지속에는 책의 작가로 보이는 상큼하게 웃는 미소녀.
'흐응- 일본에도 귀여니류의 소설이 있나보지? 제목은 좀 특이하네!'
'응? 역대 최연소 아쿠타가와 수상작? 이게? 일본 문학계도 이젠 별 수 없군!'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이런 편견섞인 시큰둥하고 삐딱한 반응.
사실은 '얼마나 대단하길래 19살에 저 큰 상을 받았을까?'라는 질투 섞인 감정도 섞여있었으리라.

그렇게 지나칠뻔 했던 이 책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여러곳에서 내 눈에 띄었다. 그것은 지인의 블로그나 책 관련 사이트에서였는데, 이 책에 대한 호평과 함께 너무 좋아서 몇번이나 읽었다며 비슷한 느낌의 책들을 더 읽고 싶다는 열혈 추종자들의 글도 간간히 있었다. '뭐야? 그 정도란 말이야? 의외네..'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얼마전에 책을 구입하고는 조심스레 읽어보았다.

육상부 소속의 소녀답지 않은 외모를 가진 조금 냉소적이고 모난 외톨이 '하츠'와 오타쿠같은 광적인 면모에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기질까지 있는 '니나가와'. 이 묘하게 어울리면서 어울리지 않는 두 주인공의 공통점은 무리속에 섞이기를 거부한다는 것. 관심없다는 듯이, 시시하다는 듯이 무리의 바깥쪽에서 혼자만의 세계에 만족하듯 살고 있는 그들은 어쩌면 조금 외로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서로에게 무심한 척, 들키지 않게 관찰하고 있었던 걸 보면...

학창시절, 새 학기가 시작되면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점심시간에 같이 밥 먹을 친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라면 좋겠지만 운 나쁘게 혼자만 뚝- 떨어져 낯선 아이들과 같은 반이 되면 그것만큼 곤혹스러운 것이 없다. 그까짓 밥 한끼, 혼자 먹으면 어떠랴. 그러나 문제는 혼자일 경우, 나를 마치 거지 동냥하듯 쳐다 볼 그 시선들이다. 우습지만 세상은 혼자인 사람을 별종 취급하는 곳이다. 그 시선이 싫어서 사람들은 무리를 짖고, 그 속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그렇게 노력하나 보다. (사실, 학교다닐때 실제로 혼자 밥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그 결과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감수성 예민한 10대에 혼자라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공포다.)

그 기분을 아는 탓에 그들(무리)를 유치하다고 생각하며 시니컬하게 대하는 '하츠'를 보며 묘하게 쾌감을 느낀다. 아예 '무리'에 신경도 안 쓰는 '니나가와'가 멋있어 보이기까지 하다. 은근히 지지를 해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지 않았는가? 혼자서는 살 수 없는게 세상이다. 무리하게 집단속에서 나를 꾸밀 필요도 없지만 호의로 다가오는 그들을 비뚤어진 생각으로 애써 거부할 것도 없지 않을까? '호의인지 동정인지 모른채, 나에게 다가오는 그들이 싫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어설픈 열등감이다. '하츠'와 '니나가와'는 사실 '타인과 교류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냉소와 방관으로 포장하고 있을 뿐.

그러던 그들이 서로 어울리게 되면서 세상과의 첫 번째 교류를 시작한다. '하츠'가 '니나가와'의 등을 볼 때마다 발로 차 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교류의 물꼬를 트기위한 의식일지도 모른다. 나를 포장하지 않고, 남에게 잘 보이려 애쓰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조금씩 세상에 발을 내딛는다...

'하츠'와는 반대로 혼자 다니기를 싫어하여 무엇이든 친구와 같이 하려들었던 나는 나이가 들고 생각이 자라 이제는 혼자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것 쯤 (여전히 힘들긴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고(심지어는 아저씨들 수두룩한 백반집에서 혼자서 밥먹는 일도 해봤다-_-;), 여행이라던지, 쇼핑도 혼자 잘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친구와 같이 하는게 좋은 것은 함께 할 수 있는 즐거움이 때문이겠지. 집단에서 도태될까봐 두려워하는게 아니라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여유. '하츠'가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그 집단속의 아이들도 나이가 들고 생각이 자라면 나처럼 혼자서도 뭐든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하츠'도 어울려 살아가는 즐거움을 알게 될 거고.. 그런게 바로 성장일테니까!

오랜만에 읽는 성장 (혹은 청춘)소설이 나를 기분좋게 한다. 평론가들이 극찬을 할 정도의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과연 감각적이고 세련된 작품이다. 보통 책을 읽고나면 인상깊은 구절이나 상황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슬라이드 필름을 보듯 영상이 주욱-떠오른다고나 할까? 특히 하츠와 니나가와, 키누요 이 세사람이 콘서트에 늦지 않기 위해 전력질주하여 뛰는 장면이 묘하게 머릿속에 남아 '아- 뭐라고 해도 청춘은 청춘이구나..'싶은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삐져나온다.

읽을 당시에는 몰랐던 묘한 여운이 가슴 언저리에 남는 책이다. 마치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하나와 앨리스>처럼... 막상 볼때는 지루하고, 별로 재미있어 하지도 않았는데 이따금씩 보고 싶어지는 <하나와 앨리스>. 나에게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은 그런 책이 될 것 같다.


덧) 분명 감각적인 언어가 작품의 매력을 더해주고 있고 번역도 무난하지만, 가끔 보기 싫은 번역투가 영~ 껄끄럽다. 원본에 어떻게 써져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굳이 이렇게 직역하지 않았어도 되었을텐데...'하는 아쉬운 부분이 몇 군데 있어 원본의 느낌도 알고싶으니 아무래도 원서를 살 것 같다. (하드커버는 국내판을 갖고 있으니 웬만하면 문고판으로 사고 싶은데 있으려나...; 하드커버는 비싸!-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옥문도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 시공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에서는 가끔 트레이드 마크처럼 반복 사용되는 대사나 내레이션이 있다. <세일러 문>에서 주인공인 세라(우사기)가 적과 맞서싸울때면 어김없이 외쳐대는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어!'라던가 <아르미안의 네딸들>에서 사용되는 '인생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같은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우리에게는 추리 만화로 잘 알려진 <소년탐정 김전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주인공인 김전일(긴다이치 하지메)이 늘상 외쳐대는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가 바로 그것이다. 대관절 그 할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하관데 그렇게도 이름을 걸어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름만 언급해도 슬며시 태도가 바뀌는 주위 사람들이라던지 김전일의 말투를 미루어보아 '그 세계에서는 꽤나 유명한 명탐정'일 꺼라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 대단한 김전일의 할아버지인 '긴다이치 코스케'가 활약한다는 <옥문도>
추리소설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출간되자 마자 상당한 이슈가 되었고,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소년탐정 김전일>을 본 사람들이라면 그의 할아버지가 나온다는 이 소설에 한번쯤 눈을 돌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물며 역대 추리소설 1위(문예춘추)라는 타이틀을 떡-하니 달고 출간되었으니...이제는 의무적으로 봐줘야 할 것 같은 느낌.

평소라면 서점에서 판형이라던지 디자인, 대략의 내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내가 그저 광고문구와 리뷰 몇 편만 보고 바로 주문을 하다니..;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우부메의 여름>이후, 일본 추리/미스터리 소설에 매력을 느끼고 있던 찰나, 이 소설의 출간 소식은 앞,뒤 잴 것없이 주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웠으니 탁월한 선택!

때는 소화 21년(1946년), 전우의 유언으로 '옥문도獄門島'에 가게되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아, 물론 그 전에 옥문도에 대한 길다면 긴 설명이 나오는데 한자를 봐도 느껴지는 이 꺼림칙한 섬 이름에 대한 유래라던지 전설 뭐 그런 것들이다.) '섬'이란 무릇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육지로, 환경에 제약을 많이 받아 다분히 배타적인데다 결속력이 강하다. 이것은 공간의 폐쇄성과 더불어 외부인이 보기에는 무서울 정도의 것이다. 이런 섬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면... 더욱이 죽은자가 묘한 방식으로 살해되었다면 느껴지는 공포심이나 음산함은 배가 된다. (물론 추리/미스터리 소설 속 장치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겠지만.)

<옥문도>는 여타 유럽이나 미국의 그것과는 느낌이 판이하게 틀린 소설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섬 나라 특유의 기질이랄까... 일본에서만 형성된 독특한 인습과 전통적 가치가 사건 발생의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그 특수성은 우리나라의 경우 '전설의 고향'같은 것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한恨으로 응축된 망자의 집념이 무형의 형태로 나타나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유사하다. 차이점이라면 일본은 죽은 자보다 산 자의 집념이 더 무섭게 작용한달까?(물론 그것도 어쩌면 죽은 자가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런것도 동양의 신비함(?)이라고 한다면 좀 억지스럽고 무섭긴 하지만 확실히 서양 쪽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사실, 스토리 참신함은 기대했던 것 만큼은 아니다. 사건 진행방식과 트릭, 해결하는 과정은 <소년탐정 김전일>의 팬이라면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그것은 작품이 발표된 시기를 감안한다면 실망보다는 놀라워 해야할 것들일지도 모른다.(그저 번역본이 늦게 출간된게 아쉬울뿐.) 대신 만화와는 다르게(아니, 만화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고급스러움이 있다. 일본의 역사와 그 속에서 형성된 전통, 독특한 섬 문화와 신앙, '하이쿠'라는 특유의 문학장르는 스토리의 진부함을 커버하고도 남으며, 오히려 품위를 더해주기까지 한다. 일본쪽 사정에 어두운 사람이라면 이런것들이 작품을 이해하는 걸림돌이 될지도 모르나 그건 걱정마시라. 친절하게 설명된 각주가 있으니 차분하게 읽기만 한다면야 오히려 지식창고에 저장할 것들이 늘어나는 셈이니 일석이조다. 다만, 각주가 나오는 빈도가 제법 잦아서 읽다가 맥이 끊기는 걸 감안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뭐 이것도 중반을 넘어가면 나아지니 염려할 것 없고... (나의 경우, 전공탓에 싫든 좋든 일본의 역사와 문화, 문학을 배웠던 것이 소설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수업시간엔 그리도 싫던 것이 뜻하지 않게 접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달까? 반갑기까지 하다. ^^)

번역은 만족스러운 편이다. (일본색이 짙은 탓에 번역하기 여간 까다롭지 않았을 이 소설을 이 정도로 번역해내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지...) 물론 가끔 매끄럽지 못한 것이 눈에 띄고, 도저히 한국말로 고칠 수 없는 것들은 일본어를 그대로 옮겨오면서 까지 직역을 했으니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정도야 눈감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어를 전혀모르는 사람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간혹 있기에 그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다.

아, 책을 읽기전에 가장 궁금했던 '긴다이치 코스케가 사건을 해결하는 실력'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김전일이 걸핏하면 할아버지의 이름을 거는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다만 생각했던 이미지가 아니어서 조금 놀랬다. 샤프한 외모에 냉철하고 야무진 성격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와는 반대로 덥수록한 스타일에 긴장하면 말을 더듬고, 머리를 긁을때면 비듬이 우수수 떨어진다. 김전일이 자신의 능력을 잘 아는 능글능글하고, 뺀질이 같은 타입이라면 긴다이치 코스케는 똑똑하긴 하지만 어수룩한 시골청년 같은 타입? 뭐, 하여간 내 느낌은 그렇다. 앞으로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이 계속 번역되어 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상을 더 많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원서를 구해봐도 되지만 그러기엔 난 너무 게으른 아이..;;;)

덧) 1. 단서가 되는 3개의 '하이쿠'가 나올때 원문도 같이 실어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속담같은 것들은 잘도 원문과 함께 실었는데 왜 그 3개의 '하이쿠'만 원문을 안 실은거지? -_-; 왜?)

2. 책을 다 읽고 책장 구석에 쳐박아 두었던 '일본 역사'와 '일본 문학사'책을 뒤적뒤적 해 본다. <옥문도>에서 언급되는 문학가들과 역사적 인물들에 관한 내용을 한번 읽어본다. 확실히 수업시간에 억지로 머릿속에 입력하려 애 쓸때보다 훨씬 쉽게 기억된다. 에이~ 조금만 더 일찍 출간 될 것이지. 그러면 시험볼 때 더 좋은 점수 받았을지도 모르는데...아쉽다! (과연-)

3. 처음 책을 받았을때는 하드커버 양장본도 아닌것이 만원이나 한다며 '너무 비싸잖아!'라고 신경질 냈었는데, 읽다보니 손에 딱 잡히는 크기와 질감, 두께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버려 '만원 값 하는군!'하며 납득하는 나! 동생은 책을 보더니 "디스커버리 같애!"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출판사가 '시공사' -_-;;
예리하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5-08-21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품 너무 재밌게 봤지요...;;; 그런데.. 이벤트 응모 메일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금 떠올랐습니다......흠.....--;;

다소 2005-08-22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이런..; 아까워라-
전 책을 19일에 배송받고, 그날 바로 다 읽고는 20일(응모 마지막날)에 메일 보냈죠. 하하-
사실 이벤트 응모하려고 배송받은 책들중 가장 먼저 읽었다는 비화가..흐흐-
 
디지털 포트리스 1
댄 브라운 지음, 이창식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다빈치 코드>의 작가, 댄 브라운의 첫 번째 소설.
작년에 서점가를 뜨겁게 달구었던 <다빈치 코드>는 아직도 그 열기가 사그라 들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흥행돌풍을 이루었다. 붐을 넘어 거의 신드롬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기에 그 후에 출간되는 댄 브라운의 작품들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전작과 비교를 당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디지털 포트리스>는 시기상 분명히 <다빈치 코드>보다 먼저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늦게 발간되었기 때문에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다빈치 코드>를 읽고 난 후에 이 소설을 접하게 될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제서야 이 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작년 6월쯤 <다빈치 코드>를 읽었으니 거의 1년만에 이 작가의 또 다른 소설을 읽은 셈이다.

책은 컴퓨터 보안 프로그램을 풀기위한 암호해독과 그것을 위해, 죽은 자가 남긴 단서(암호)의 행방을 쫓는 과정이 주된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가 계획한 숨겨진 음모가 드러나고 그와 함께 반전도 이루어진다. (부분 설정이 <다빈치 코드>와 별반 다를게 없다.) 그러나 광고에서 처럼 '정교한 복선들과 함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치밀한 구성'까지는 무리가 아닐까? 남자 주인공, '데이비드'가 암호를 쫓는 과정은 우연이 빈번하고, 정교한(?) 복선은 너무 직접적으로 '범인'을 알려줘서 오히려 정체를 드러내기 까지의 과정이 지루할 정도다. 게다가 정작 암호해독가인 '수잔'보다 그의 애인인 '데이비드'가 더 많은 활약을 하니 이거야 원! 마지막 암호해독 작업때도 오히려 '데이비드'쪽이 더 침착하게 실마리를 찾아내지 않았는가..! 물론 '수잔'의 활약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똑똑하고 영리한..조금은 교활한 여주인공을 기대했는데 고집만 세고, 드러난 현실을 쉽게 믿어버리는 순진한 여주인공이랄까..!

물론, 책은 초반 40페이지 정도만 제외하면 물 흘러가듯 술술 잘 읽힌다.(앉은 자리에서 2권 다 읽었으니까..) 특히 마지막에 시간적 여유가 없는 급박한 상황에서 암호를 해독하는 부분은 정신없이 읽기도 했다. 또 책에서도 논쟁거리가 되었던 '국가 안보와 테러 방지가 우선인가,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권리가 우선인가'하는 문제는 책을 마냥 흥미위주로 가볍게만 볼 수 없게 만든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X-파일, 도청문제와 연관시켜 본다면 더욱.

평소에 암호풀이 하는 것을 좋아했거나, <다빈치 코드>를 재미있게 봤다면 읽어 볼 만한 소설.
단, 너무 큰 기대는 금물. 앞에서도 말 했듯, 이 책은 댄 브라운의 첫 번째 소설이다.
<다빈치 코드>보다는 내공이 부족한 게 사실. 비교하지 말고 순수하게 즐기도록 하자.^^

덧) 1. 책의 앞부분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 어떤것은 심하게 거슬릴 정도.. 뒷부분으로 갈 수록 나아지긴 하지만, 부분부분 이해가 안되는 번역이 있어 몇번이고 읽게 만든다. 내가 이해를 잘 못해서 그런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나 말고도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꽤 많은 것 같으니 다음 인쇄때는 수정본이 나와줬으면 한다.

2. 에필로그 뒷 부분에 나오는 숫자가 뭘 의미하는지 몰라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책에서 '수잔'이 말하던 몇몇 암호 해독 방법으로 풀어봤는데, 쉽게 안 풀려서 애 먹었다는...;; 결국 인터넷 검색해서 알아냈는데 결과가 놀라웠다. 어쩌면 이 책의 가장 큰 재미는 마지막 숫자일지도...

3. 사실은 별 반개 정도 더 주고 싶은데 반은 선택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3개..^^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5-08-19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 이상하게. 댄 브라운 소설이 재밌다고 생각하면서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다소 2005-08-20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님/ 아- 그거 어떤 느낌인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재미도 있고, 속도감있게 진행되는 전개도 괜찮긴 한데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 그게 뭘까요? -ㅁ-;;

블랙홀 2007-04-13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시드니 셀던 아저씨 소설들도 다 그 얘기가 그 얘기인것같아서 손이 가질 않는다는..ㅎㅎ

다소 2007-04-14 0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랙홀 님 / 그만큼 대중적이지만 몇 작품을 접하다보면 패턴이 눈에 쉽게 보이는 단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고교땐 시드니 셀던 소설 꽤 읽었는데, 사실 비슷비슷하긴 했어요. 그래도 읽고 있는 동안에는 재밌어서 일단 잡으면 끝까지 다 읽긴 했지만요. 전 '영원한 것은 없다'랑 '여자는 두 번 울지 않는다'를 좋아했어요. 그 두 작품만큼은 기억에 남아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