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육에 이르는 병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시공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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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마 내가 산 책 중에 처음으로 대놓고 빨간 딱지(?) 붙은 책일 거다.(아, 만화책은 좀 있군;)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고 큼지막하게 디자인 된 문구가 [살육에 이르는 병]이란 제목과 맞물려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것에 손을 뻗는 느낌이 자꾸 든다. 마치 피가 튄 것 같은 으스스한 표지도 제대로 한 몫 했다. 읽기 전부터 공포감은 자꾸 늘어가고, 그러면서도 손은 표지를 넘기고 있다. 홍보문구에 따르면 '충격적인 결말을 확인한 순간,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어디 얼마나 충격적인지 봐주지, 첫 페이지 잘 읽어놔야겠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유없는 오기를 방패 삼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구성 참 독특하다. 프롤로그가 아니라 에필로그부터 시작한다. 사건 발생이 아니라 범인 체포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에 놀라야 하는 걸까? 잠시 궁금증을 뒤로 하고 다시 책을 읽어나갔다.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마다 3명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그 시점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퇴역 형사 히구치, 범인 미노루, 엄마 마사코. 시점도 다르거니와 시점에 따른 시간도 약간씩 어긋나 있어 행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정신 바짝 집중해서 읽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시간순으로 재배열해서 사건을 정리하고, 작가의 의도에 속지 않으려고 꽤 애쓰면서 읽었다. 결국 아무 소용 없었지만.

작가의 충실한 살인 묘사는 내 상상력과 더해져서 거의 스너프에 가까운 영상을 눈 앞에서 재현해냈다. 너무 잔인하고 냉혹해서 입 딱 벌리고 그냥 보고만 있었다. 엽기적이라느니, 미쳤다는 소리도 감히 안 나오더라. 이마에 가로 주름, 미간에 세로 주름이 평소의 2배는 잡히고, 심박수도 1.5배는 증가한다. 아아, 난 정말 이런 거 싫은데... 180여 페이지 정도 읽었을 때, 결국 참지 못하고 책을 덮어버렸다. 책 읽기 전에 먹은 과일이 역류할 것 같았다. 아, 일단 자야겠다, 싶어 바로 침대로 기어들어가 잠을 청했다. 제길, 꿈에서 내가 난자당하고 있더라. 땀 삐질삐질 흘리며 잠에서 깨고나니, 잠든지 고작 4시간 밖에 안 된 시각. 기분이 그렇게 더러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일단 시작했으니까 마저 읽어야지, 싶어 눈 뜨자마자 책 펼쳐서 눈에 바짝 힘주고 읽었다. 약간의 면역력이 생겨서인지, 아니면 잔인한 묘사 부분이 다 지나가서인지 훨씬 수월하게 읽힌다. 그때부터는 좀 더 차분하게 작품 속 인물들의 말과 행동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이 얼마 안 남았을 무렵, 이미 범인을 다 알고 있는데도 긴장감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충격적인 결말이란 도대체 뭐지? 다시 심박수가 증가한다. 두근두근.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정말 홍보문구 그대로 '단 하나의 문장'에 K.O패 당했다. 헉, 이 아니라 꺄악 소리를 질렀다. 이럴수가. 이럴수가... 한치의 과장도 없이 정말 놀라운 반전이었다. 그리고 끔직했다. 잔인해서가 아니라, 엽기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런 결과에 이를 수 밖에 없던 미노루의 심리상태가 조각조각 맞춰지듯 들여다 보여서. 그제서야 살육에 이르는 병의 의미가 와 닿아서. 그리고 그 상황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눈 앞에 보여서. 정말로 꺄악- 소리를 지르며 마지막 장을 몇 번이고 읽었다. 그리고 지나온 내용을 스르르 들춰보는 내 모습. 하아, 이런거였어.

반전에 대한 놀라움이 가시자, 머리가 아파왔다. 아버지 역할의 부재,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황폐해진 가정 뭐 이런 것들에 대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휙휙 떠올랐다 사라진다. 굳이 이 책이 아니라도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대두되기 시작한 문제다. 그런 것과 관련해 이런 끔찍한 범죄가 벌어진다고 생각하니 으스스, 소름이 돋는다. 사랑 결핍으로 빚어지는 결과는 언제나 가슴 아프고 끔찍하다. 아, 답답하다. 언제고 한번쯤은 머리 맞대고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문제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무래도 내게는 힘든 소설이었나보다. 가슴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소설로 위로받고 싶다. 당분간 추리 소설은 금지. 이 소설의 여파가 좀 사라질때쯤 다시 읽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여러모로 충격적인 소설이 맞긴 맞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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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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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정하'나 '원태연'의 시집 제목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제목을 읽을 때에는 목소리를 한톤 올려 마치 시를 낭송하는 기분으로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라고 읽은 뒤에 약간의 여운을 남겨야 될 것 같기도. 표지도 하늘색 배경에 입술 빠알간 소녀풍의 여인이 벚꽃 한 잎, 두 잎 휘날리는 곳에서 아련한 표정으로 쳐다봐주신다. 로맨스 소설이래도 믿을 것 같은 이 표지에, 이 제목이 사실은 추리 소설이랜다. 이 묘한 이질감. 소위 장르소설이란 타이틀이 따라 붙는 책들은 그에 걸맞는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되는데, 추리계열은 흔히 무채색이나 강한 원색계열의 표지가 주를 이루고, 제목도 밝은 느낌보다는 어둡고 침침한 게 보통이다. 근데 이 소설은 제목부터 추리랑은 거리가 멀어보이고 표지나 색깔은 더욱 그러하니... 외관부터 기존의 선입견을 무너뜨리는데 성공. 내용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먼저 줄거리를 잠깐 살펴보면,
나름대로 자유분방한 성격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보기엔 글쎄...; 여하간 프리터 일을 하고 있는 주인공 나루세는 학교 후배의 부탁으로 뜻하지 않은 일을 맡게 된다. 그 일이란 대충 이러하다. 나루세는 후배, 세리자와 기요시와 같은 헬스클럽을 다니고 있다. 세리자와는 그 곳에서 한 여성에게 반하는데, 그녀는 구다카 아이코로, 세리자와 보다 연상의 여인. 어느날 그 여인의 할아버지가 사고로 죽게되는데, 실은 '호라이 클럽'이라는 곳과 연관이 있으며 사고가 아니라 살해달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세리자와는 한 때 사립탐정으로 일한 적이 있는 나루세에게 이 사건을 조사해봐 달라고 의뢰를 하고, 아이코 또한 정중하게 부탁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 사건을 조사해보기로 한다. 그 즈음, 나루세는 지하철 역에서 자살하려는 한 여인을 구하게 되는데, 그 후 잊고 있던 그 여성에게 전화가 걸려오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형성한다.

굳이 나누자면 추리소설 보다는 사회파 소설이 적당하겠지만, 이 소설의 최대 묘미는 사람들이 누누히 말하는 '반전'에 있다 할 수 있겠다. 하긴 표지와 제목에서 이미 반전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지. 떨쳐내려고 노력하지만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것이 인간의 편견 및 선입견인데, 책은 그런 것을 잘도 이용하여 독자에게 반전을 제시한다. 아무리 '난 당하지 않겠어!'라고 작심하고 꼼꼼히 읽는다고 해도 이런 반전이라면 누구나 속게 돼 있다. 일명 '서술트릭'이라고 하나? 웬만한 가설과 상상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절대로 미리 알아차리지 못할 듯. 뒷통수 맞았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그런데 헉,하는 짜릿한 반전 뒤에 묘한 찜찜함이 남는다. 이상하다. 그게 무엇인지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힘든데 하여간 시원한 기분은 아니다. '와, 이런거였어? 그랬구나...' 이게 아니라 '헐, 보기 좋게 당했군!' 이런 기분? 이것은 단순히 내가 가진 선입견/편견에 속아서 분하거나 어이없어서가 아니라, 내용의 구성과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은 데서 오는 일종의 불만족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뒷통수 치는 반전까지는 좋은데 그 반전 말고도 좀 더 깊이 있게 파헤쳐줬으면 하는 것들을 반전의 제시와 함께 유야무야 덮어버려 그게 아쉬운 것이다. 그래서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2% 부족하게 느껴진다. 반전이 워낙 세서 그게 별로 티가 안난다는게 장점이자 단점이겠지만. 솔직히 반전이 없었다면 이야기가 도중에 툭- 끊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에필로그가 더 있는데 미처 못 읽은 느낌이랄까?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하게 얘기를 못해서 답답하군;) 여튼 좀 아쉽긴 해도 작가의 의도가 사회문제 폭로와 놀랄만한 반전 제시라면 그건 제대로 달성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는 대체로 만족.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되기는 하니 이름 알리기에는 충분한 소설이 되지 않나 싶다.


덧. 아무래도 내가 미미여사(미야베 미유키)의 팬이라 그런지 사회파+추리 소설을 보면 안 그러려고 해도 자꾸 비교를 하게 된다. 아무리 복잡한 구성에 인물이 수십명이 나와도, 디테일한 이야기 뒤에 버티고 있는 중심축이 흔들리지 않는 미미여사의 저력을 일찌감치 알아서 그런가, 우타노 쇼고는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 큰일일세.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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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5-31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비교하기 시작하시면 끝이 없어요^^:;;

다소 2007-05-31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 님 / 그러니까 '끙'소리가 나올 수 밖에요.^^;
 
아임 소리 마마 밀리언셀러 클럽 4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출간을 앞두고 있던 작년 초여름, 일본 미스터리 소설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 소설의 대한 이야기가 꽤 자주 오고 갔던 걸로 기억한다. 생각이 날 때마다 가끔 들리는, 미스터리 소설 관련 카페에 접속을 하면 게시판에서 이 소설을 소재로 한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대단히 흥미를 끌만한 것은 아니어서 그저 제목 정도만 알고 지나갔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책이 출간되었을 때, 책표지가 미스터리 소설 치고는 꽤 예뻐서 좀 놀랐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음울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배어나오고 있지만 핑크색을 사용해서 그런가 그냥 슬쩍 보기엔 꽤 화려하고 예뻐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제목에 '마마'가 들어가서 그런가, 뭔가 아기자기한 느낌도 들고.; 뭐, 책을 다 읽은 지금에야 그런 생각은 전혀 안 들지만.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데도 불구하고 딱히 읽고싶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책과 인연이 있었던 건지 우연히 읽을 기회가 생겼다. 여전히 제목만 알 뿐, 그 어떤 상세내용도 알지 못한 채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어내려갔는데, 첫 챕터 읽자마자 뭔가 찝찝한 기억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이다. 챕터의 마지막 단락이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이어서 그런가... 하여간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엽기적인 사건이 <검은집>의 사치코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찝찝한 느낌에 도대체 작가가 누구야? 싶어서 책 표지를 다시 들여다봤더니, 헉 '기리노 나쓰오'다.; (여기서 잠깐! 나는 가끔 제목만 보고 바로 첫 장을 넘겨서 책을 읽는 습관이 있는데, 그래서 작가랑 작품이랑 매치를 못 시킬 때가 있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다. [아임 소리 마마]라는 제목과 표지의 색깔만 슬쩍 보고는 바로 책을 읽어서 작가가 누군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기리노 나쓰오'라면 대표 작품이 몇 되지만 내게는 오직 하나, [그로테스크]다. 제목만큼 내용도 꽤 그로테스크해서 몇 번이나 책 읽기를 중단했었던 책이다. 사실 읽으려면 다 읽을 수는 있었는데, 묘하게 사람 신경을 자극하는 설정과 문장 표현에 기분이 안 좋았었다. 그래서 150여페이지 정도 읽고 그만둔 책이며, 아직도 '언젠가는 읽어야지!'하고는 책장에 꽂아둔 책이다. 그런 관계로 '기리노 나쓰오'는 내게 참 불편한 작가인데 우연히도 그녀의 작품을 읽게 되다니. 아이러니~♪ 말도 안돼~♬

잠시 놀라움(?)을 진정 시키고 다시 책을 읽어내려갔다.
어린 시절 사창가에서 자란 아이코는 또래의 놀이문화 없이 어른들의 밑바닥 인생을 보며 자랐다. '왕엄마'와 몸을 파는 언니들 틈에 끼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죽지 않기 위해 살아온 아이다. 아이에게는 '마마'가 필요했지만, 그 누구도 '마마'가 누군지 알려주지 않았고, '마마'가 되어주지도 않았다. 그런 아이코에게는 '마마'의 유품인 '흰색 구두'가 '마마'대용이며 전부다.그러는 동안 아이코에게는 행복과 사랑이 아니라 미움과 증오만 자리잡아 간다. 어느 정도 자랐을 무렵, 아이코는 시설에 맡겨진다. 그러나 또래의 아이와 섞이기엔 지나온 환경의 영향이 너무 크다. 항상 어른들 틈에 끼어 살아온 아이코에게 또래 아이란 가깝지만 다가가기 힘든 존재다. 점점 아이들의 세계에서 겉도는 아이코는 혼자서 몰래 '흰색 구두'와 대화하는 습관이 생긴다. 그것도 1인 2역이다. 엄마와 아이코. 그리고 그러는 사이 미움과 증오는 악(惡)이 되어 아이코의 마음에 점점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세월이 좀 더 흘러,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질투나는 것들에 대해 무차별 범죄를 저지른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이 모든 범죄의 발단이라면 발단이겠지만 그것만 가지고 그녀가 악녀가 되었다고 하기엔 무언가 석연치 않다. 이는 책의 마지막에서 밝혀지는 아이코의 태생적 환경과 결합되어 더욱 또렷해지는데, 유전적, 환경적으로 이렇게 최악의 조건을 타고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다. 그런 배경 아래 만들어낸 극단적인 캐릭터는 마치 악(惡)이라는 무형의 어떤 것을 의도적으로 형상화시키는 것 같다. 책의 말미에 덧붙여진 해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이코는 그야말로 괴물같은 여성이다. 섹스와 살인을 놀이하듯 즐기는... 그리고 목적은 오직 한가지다. 엄마의 존재를 찾는 것.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시키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야기가 조금 촉박하게 진행됨을 느낄 수 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데, 과도한 가지치기 덕분에 갑작스럽게 이야기가 붕 뜨는 느낌이다. 좀 더 유기적으로 엮일 수 있는 이야기들이 각자 따로 노는 바람에 몰입을 방해한다. 230여 페이지로 끝내기에는 심각하고 어려운 이야기인데, 너무 빨리 끝났다는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내 머리에서 마무리 되지 못한 이런저런 생각과 떠오르는 단상들로 머리가 아프다. 유전 요인이든, 환경 요인이든 아이코는 불행했고 그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했다. 사랑 받지 못한 아이는 당연히 사랑을 베풀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눈에 거슬리는 것을 제거함으로서 행복해진다고 믿었을 것이다. 게다가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 최악의 결과다. 그렇게 방치해 둔 주변인과 사회를 마냥 욕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살인자를 동정만 하기에는 아이코의 수법이 너무도 악랄하다. 무기력한 사회의 객체로서 허무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인 것일까?

[아임 소리 마마]는 총 12개의 챕터가 있고, 각 챕터별로 소제목이 달려 있는 형식이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첫 번째 챕터부터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나 범인을 추적하는 형식이 아닌,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범인의 행적을 따라 이동하면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원인을 되짚어 보는 형식이다. 이 경우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하면서 느끼는 스릴과 긴장감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왜?'에 집중하게 됨으로써 범죄를 둘러싼 범인의 환경과 심리상태에 초점을 맞추게 되어 좀 더 깊은 사고를 요하게 된다. 한마디로 단순히 미스터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현상'들이 구체적, 직접적으로 와닿아서 머리가 아파지는 것이다. 이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에서도 느끼는 것인데, 그녀가 예리하면서도 따뜻하다면, '기리노 나쓰오'는 작가 특성상 신랄하고 날카로우며 차갑다. '미야베 미유키'가 송곳이나 바늘같다면 '기리노 나쓰오'는 날 선 일본도(日本刀) 같다. 가차없이 베고, 찌르고, 확인사살까지 한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있다. 머릿속에 형체없는 검은 물체들이 일렁이는 느낌이 자꾸 든다. '기리오 나쓰오'는 여전히 내게는 불편한 작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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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의 소리 - 이와아키 히토시 단편집
이와아키 히토시 지음 / 애니북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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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소식을 접한 것은 지난 여름이었나? 발매된 지 하루가 채 안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이미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고, 그에 따라 브랜드 파워를 공고히 다지고 있는 작가인 만큼, 각 인터넷 서점 만화 카테고리에는 그의 새 작품(그러나 실은 오래된;)을 알리는 광고배너가 보기좋게 자리하고 있었다. 습관처럼 클릭하는 공간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소식을 접했으니 난 당연히 신이 났고, '오옷, 이거 뭐지?' 하고 싱글벙글 상세내용을 읽어내려갔다. '이와아키 히토시의 초기 단편집, [뼈의 소리] 국내 라이센스 발간'이라는 타이틀 아래, 부가 설명으로 그의 초창기 시절 6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고 전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한창 [히스토리에] 4권에 목이 말라 탈수증세가 점점 심해져 가고 있을 때라(지금은 거의 포기상태-_-), 이 책의 발매소식은 마치 가뭄에 단비같은 촉촉함이 배어있었다. 게다가 초기작이라면 일본내에서도 현재 절판 상태가 아닌가. 잘 됐군, 잘 됐어. 그렇게 나는 이 작품의 출간을 기꺼이 박수치며 환영했다.

말은 환영한다고 했지만 실은 그로부터 한참 뒤에서야 책을 샀다.(어제 샀음;) 나라는 인간의 성질이, 원래 모든 쇼핑은 '삘'이 왔을 때 해야 하는 법이거늘, 그 때를 놓치니까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 벌써 해를 넘겨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도 아닌 것이, 틈나면 [뼈의 소리] 리뷰를 읽어보며 사전 평가를 하곤 했는데, 이게 좀 혼란스러운 것이 좀처럼 책의 재미를 가늠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구입을 차일피일 미룬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실망했다는 리뷰부터 무척 좋았다는 리뷰까지 천차만별이다 보니 기준을 어디다 둬야 할지를 모르겠는 거다. 특히 이와아키 히토시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이 '의외로 실망'이라거나 '2% 부족하다'는 말을 주저없이 하니, 아직 읽어보지 못한 독자로서 갈팡질팡 할 수밖에. 그러나 호기심은 죽은 시체도 벌떡 일어나게 하는 법.(누가 그래?) 궁금한데 어쩔 수 있나. 직접 평가해봐야지. 게다가 내게는 [기생수]와 [히스토리에]를 무척 좋아하는 독자로서, 그의 초기단편집 하나 정도는 기념으로 사'줘'야 한다는 묘한 의무감도 있었다.;

책을 받자마자 마치 먹이에 달려드는 강아지처럼 책을 집어들었다. 우선 주루룩 훑어보니, 가장 오래된 작품인 '쓰레기의 바다'와 '미완'을 제외한 나머지 4작품은 [기생수]나 [히스토리에]의 그림과 대동소이 했다. 예의 그 단순한 듯 묘하게 섬세하고, 평면적인 것 같지만 묘하게 역동적인 작화가 얼마나 그리웠던지. 조금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책을 읽어갔다.

첫 번째 작품인 '쓰레기의 바다'는 이와아키의 데뷔작으로, 그의 세계관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쓰레기(인간)로 오염되어가는 바다(세상)와 그 바다를 바라보는 소녀가 구원의 손길를 구하고, 어떤 식으로 구원되는지 보여주면서 미약하게나마 희망의 끈을 드리운다. 인간과 환경에 관한 메시지를 읽으면서 혹시 이 작품이 [기생수]의 모티브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미완'은 딱 잘라 말하기는 힘들지만 내가 보기엔 이해와 소통에 관한 이야기다. 다들 각자의 생각에 빠져 헛꿈 꾸는 세상, 혹은 냉소로만 일관하고 노력하지 않는 세상에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한발자국 다가서게 된다는 동서고금의 진리. 잊기 쉬운 것을 일깨운다. 인생은 미완성이라잖아. 부족함이 모이면 언젠가 완전해지는 날도 오겠지. 그 비슷한 거라도. '반지의 날''와다야마'는 1회성으로 끝내기에는 조금 아쉬운 이야기들. 특히 '반지의 날'의 경우는 이와아키의 만화치고 드물게(?) 약간의 소녀만화적 요소도 포함되는데, 앞으로 언니와의 관계라든가 그 오토바이 청년과의 뒷 얘기가 궁금해진다. 그에 비해 '와다야마'의 경우는 뒷 얘기가 아니라 예전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데, 전문용어로 프리퀄이라고 하던가? 와다야마가 그런 공포스러운(?) 장난을 치게 된 사정을 속편 형식으로 풀어도 재미있겠다. '살인의 꿈'과 마지막 '뼈의 소리'는 현재의 이와아키의 특징이 가장 비슷하게 나타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이상하게 공포스러운 시선처리(특히 감정을 상실한 듯한 동공(瞳孔) 묘사)라든가 피칠갑의 섬뜩한 표정, 얼굴이나 신체의 한 부분을 클로즈업 했을 때는 만화 그림이라기보다 거칠고 가벼운 미술 데생을 보는 듯한 느낌까지, 내가 알던 이와아키에 가장 가깝다. 내용 역시 마찬가지. 참으로 '이와아키'스럽다.

일반적으로 만화 작가의 초기작이라고 하면, 두 가지중 하나다. 상큼, 발랄, 풋풋하거나 거칠고 투박하거나! 굳이 따지자면 이와아키는 후자다. 그러나 너무 거칠고 투박해서 세공 좀 했으면 싶으면서도 그 원초적인 매력이 싫지가 않다. 그가 가진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묘미를 느껴보고 싶다면 한번쯤 [뼈의 소리]를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큰 기대는 금물이지만 초기작임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단편집. 자, 아직도 [뼈의 소리]가 어떤지 궁금하십니까?



덧) 하드커버 애장판도 아니고, 겨우 200여 페이지 갖고 8000원이나 받아먹는 출판사에 잠시 거품을 물었으나, 일본웹 검색해보니 원서도 790엔이었네.-_- 도대체 왜 이렇게 비싼거래? 어디 금테 두른 것도 아니고. -_- 뭐, 종이질이 좀 좋긴 하다만 그래도 너무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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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의 귀향 - 캐럿북스 1
이선미 지음 / 시공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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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실은 책이 나오자마자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뭐에 그리 바빴는지 '읽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그 기회를 날려버렸고, 시간은 2년(아니 3년이 다 돼 간다)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 사이에 이 책은 품절을 지나 절판의 단계에 이르러 웬만한 서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고, 뒷북치기의 명수인 나는 그제서야 '아아, 읽고 싶어!!!!'라고 발버둥 치며 헌책방을 뒤지게 되었다는 얘기. 다행히 책과의 인연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는지 새 책과 같은 상태는 아니어도 괜찮은 중고책으로 어렵지 않게 구했고, 며칠 전에 받아서 얼른 읽어버렸다. 그저 읽는 것 뿐이라면 대여점이나 도서관을 이용해도 충분히 읽을 수는 있었지만, 이 책은 왠지 소장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로맨스나 판타지, 무협 소설 같은 특정 장르는 취향을 많이 타기 때문에 내용 파악이 제대로 안 되면 함부로 사지 않는 법인데, 이상하게 이 책은 사서 읽고 싶더라. 아무래도 주위의 여러 사람으로부터 '재미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런가보다.

원래 '재미있다' 내지는 '괜찮다'는 말을 많이 들은 소설(혹은 영화)을 보면 기대에 미치기 보다는 실망감이 클 소지가 많은데, 이 책은 그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었다. 정말로 재미있었다. 읽는 내내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웃음이 실실 새어나와 급기야는 방에서 뒹구뒹굴, 깔깔거리면서 봤고 그러다가 마지막 클라이 막스 부분에는 훌쩍훌쩍, 콧물까지 흘려가며 울었다. 물론 로맨스 소설 답게 순간순간,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제목에 '모던걸'이라는 말을 쓴 것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책의 시대적 배경은 한창 개화의 붐이 일던 시기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미국에 입양되어 갔던 한 근영이(문.근.영이 아님;)가 부모의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급속한 개화의 바람이 들이닥치기 직전의 농촌이 공간적 배경이 된다. 그저 소문으로만 듣던, 이른바 '신여성'이라 불리는 근영이가 나타나자 동네사람들은 별세계 사람이 온 것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까지 저고리에 한복 치마 두르는 게 의복의 전부인 줄 아는 아낙네들의 눈에 예쁜 레이스 블라우스에 발목을 드러내는 짧은 치마를 입은 근영이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인 것이다. 근영을 데리고 온 규학이라는 총각은 그 농촌의 지주쯤 되는 심참봉 댁 둘째 아들로, 서울로 유학가 있던 참에 근영을 만나 이러저러한 사정을 듣고 '아, 거기 우리 고향인데? 한번 가보실래요?' 해서 근영을 데리고 온 것이지만 사실 감춰둔 속 마음은 따로 있다. 근영이가 마음에 든 규학은 이런 기회를 발판 삼아 자연스럽게 근영을 부모님께 소개하고 또 다른 기회를 엿봐 그녀에게 프러포즈 한 뒤 색시로 맞이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만사 계획한 대로만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겠누. 근영은 규학이 생각한 그런 호락호락한 여자가 아니다.

규학이 한창 미래의 단꿈에 빠져 있을 때, 근영은 예상치도 않은 곳에서 한 남자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저 급하게 변소를 찾아 안채 뒤꼍으로 들어가는 길에 오른쪽 곳간에서 허연 김이 새어나오는 게 이상하여 그 문을 열었을 뿐인데 거기에 사람이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게다가 하필 남자는 벌거벗은 몸으로 목욕중이었다. 어이쿠, 첫 만남이 얄궂기도 하여라. 알고보니 그 남자는 규학의 형님 되시는 '규용'이란다. 이 무슨 신의 장난일꼬.(///) 원래 첫만남이 앞으로의 인간 관계의 반 이상을 좌지우지 하는 법이다. 통성명도 하기 전에 제 몸부터 보여줬으니 규용으로서는 낯 뜨거운 일이고, 그건 얼떨결에 장가도 안 간 총각 나신을 훔쳐 본 근영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의 관계는 항상 티격태격. 아니지, 정확히 하자면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얘기하는 근영의 말에 아예 대꾸를 안 하거나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짧은 말로 맞받아치는 규용이다. 규용의 눈에는 조신한 여느 처자와 달리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얘기하는 근영이 탐탁치 않고, 근영은 자기가 원해서 본 것도 아닌데 첫만남 때문에 규용이 자신을 싫어한다 생각하여 속상하다.

그러나 '미운정이 더 무서운 법'이라고 거의 모든 로맨스의 법칙 중 하나가 '티격태격 하다 정 들어서 죽고 못사네 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 점차 사랑에 빠져가는 두 사람을 보고 있노라니 그게 너무 예뻐서 내가 다 기분이 좋다. 사실 소설 내용에 따르자면 근영이 그냥 미인이 아니잖아? 게다가 어떻게 하면 남자에게 더 예쁘게 보이는지 잘 아는 새침데기인데, 아무리 목석 같은 남자라도 안 넘어가고 못 배기지. 마찬가지로 내가 봐도 규용이 멋있다. 그저 무뚝뚝하기만 한 남자가 아니라고. 그런데 그런 두 사람이 매일매일 부딪히는데, 당연히 사랑의 불꽃이 튀겠지. >_<

[모던걸의 귀향]은 물론 로맨스 소설로서 아주 괜찮은, 기분좋은 책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것만으로 별 다섯개를 준 것은 아니다. 로맨스 외에도 큰 줄거리가 되는 '근영 부(父)의 행방 찾기'에 관한 이야기도 제법 좋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근영 모(母), 금달래에 관한 이야기와 '그녀의 아버지는 과연 누구인가?'에 관한 추적은 로맨스가 아니라도 시선을 끈다. 인심 좋은 시골 사람입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라서 제 잇속 차릴 줄도 알고 교활하진 않지만 머리속으로 이해관계를 따질 줄도 안다. 그러나 사건이 터지고 일단락 되면서, 제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것 또한 참으로 그들다워서 처음에 '못됐다' 생각 했으면서도 어느새 측은한 마음이 생겨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소박한 농촌의 모습과 개화기의 분위기와 어울려 이야기에 잘 녹아나고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또 다른 감동을 준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이다.

작가가 이 소설 쓰면서 꽤 많이 공을 들였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사투리며 옛말, 개화기의 분위기라든지 농촌 모습, 머리며 복장 등 조사도 많이 했겠고, 무엇보다 흔한 플롯으로 흔하지 않은 이야기를 만드느라 고생깨나 했겠다,싶다. 사실 줄거리만 보자면 전혀 땡기지 않는 게 이 소설이다. '출생의 비밀'이라든지 '미운정이 고운정 되는 커플 이야기'는 드라마에서 신물나게 봐 왔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읽고 나서 '정말 재밌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소설을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아아, 요고요고 딱 4부작 짜리 특집 드라마 만들면 진짜 재미있을 것 같은데.(물론 더 길어도 상관없다) 기승전결 뚜렷하고, 트렌디 드라마에 뒤지지 않을 사랑 얘기에, 전원일기 버금가는 소박함과 단란함, 에피소드까지 갖췄는데 말야. 누구 눈독 들이는 PD님들 없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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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시대인지라 '~하오'체를 구사하는 규용과 '~여요'체를 구사하는 근영이 커플 귀여워 죽겠다. ♡♡♡
소설 읽으면서 막 따라해봤는데, 아오~ 간질간질한 게 닭살 돋아 추울 지경이다. (-_-;;;)(>_<)(///)
그러면서 로맨스는 또 어찌나 뜨겁게 하시는지...
'사랑한다고 말해주셔요' 한다고, 대번에
'사랑하오. 매일매일‥‥‥조금씩‥‥‥조금씩 더 사랑하오' 라고 말할 수 있는 남자가 어디 흔한가 말이지.


...그러고보니 이 소설 염장소설이었군아!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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