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소리 마마 밀리언셀러 클럽 4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출간을 앞두고 있던 작년 초여름, 일본 미스터리 소설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 소설의 대한 이야기가 꽤 자주 오고 갔던 걸로 기억한다. 생각이 날 때마다 가끔 들리는, 미스터리 소설 관련 카페에 접속을 하면 게시판에서 이 소설을 소재로 한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대단히 흥미를 끌만한 것은 아니어서 그저 제목 정도만 알고 지나갔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책이 출간되었을 때, 책표지가 미스터리 소설 치고는 꽤 예뻐서 좀 놀랐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음울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배어나오고 있지만 핑크색을 사용해서 그런가 그냥 슬쩍 보기엔 꽤 화려하고 예뻐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제목에 '마마'가 들어가서 그런가, 뭔가 아기자기한 느낌도 들고.; 뭐, 책을 다 읽은 지금에야 그런 생각은 전혀 안 들지만.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데도 불구하고 딱히 읽고싶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책과 인연이 있었던 건지 우연히 읽을 기회가 생겼다. 여전히 제목만 알 뿐, 그 어떤 상세내용도 알지 못한 채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어내려갔는데, 첫 챕터 읽자마자 뭔가 찝찝한 기억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이다. 챕터의 마지막 단락이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이어서 그런가... 하여간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엽기적인 사건이 <검은집>의 사치코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찝찝한 느낌에 도대체 작가가 누구야? 싶어서 책 표지를 다시 들여다봤더니, 헉 '기리노 나쓰오'다.; (여기서 잠깐! 나는 가끔 제목만 보고 바로 첫 장을 넘겨서 책을 읽는 습관이 있는데, 그래서 작가랑 작품이랑 매치를 못 시킬 때가 있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다. [아임 소리 마마]라는 제목과 표지의 색깔만 슬쩍 보고는 바로 책을 읽어서 작가가 누군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기리노 나쓰오'라면 대표 작품이 몇 되지만 내게는 오직 하나, [그로테스크]다. 제목만큼 내용도 꽤 그로테스크해서 몇 번이나 책 읽기를 중단했었던 책이다. 사실 읽으려면 다 읽을 수는 있었는데, 묘하게 사람 신경을 자극하는 설정과 문장 표현에 기분이 안 좋았었다. 그래서 150여페이지 정도 읽고 그만둔 책이며, 아직도 '언젠가는 읽어야지!'하고는 책장에 꽂아둔 책이다. 그런 관계로 '기리노 나쓰오'는 내게 참 불편한 작가인데 우연히도 그녀의 작품을 읽게 되다니. 아이러니~♪ 말도 안돼~♬

잠시 놀라움(?)을 진정 시키고 다시 책을 읽어내려갔다.
어린 시절 사창가에서 자란 아이코는 또래의 놀이문화 없이 어른들의 밑바닥 인생을 보며 자랐다. '왕엄마'와 몸을 파는 언니들 틈에 끼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죽지 않기 위해 살아온 아이다. 아이에게는 '마마'가 필요했지만, 그 누구도 '마마'가 누군지 알려주지 않았고, '마마'가 되어주지도 않았다. 그런 아이코에게는 '마마'의 유품인 '흰색 구두'가 '마마'대용이며 전부다.그러는 동안 아이코에게는 행복과 사랑이 아니라 미움과 증오만 자리잡아 간다. 어느 정도 자랐을 무렵, 아이코는 시설에 맡겨진다. 그러나 또래의 아이와 섞이기엔 지나온 환경의 영향이 너무 크다. 항상 어른들 틈에 끼어 살아온 아이코에게 또래 아이란 가깝지만 다가가기 힘든 존재다. 점점 아이들의 세계에서 겉도는 아이코는 혼자서 몰래 '흰색 구두'와 대화하는 습관이 생긴다. 그것도 1인 2역이다. 엄마와 아이코. 그리고 그러는 사이 미움과 증오는 악(惡)이 되어 아이코의 마음에 점점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세월이 좀 더 흘러,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질투나는 것들에 대해 무차별 범죄를 저지른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이 모든 범죄의 발단이라면 발단이겠지만 그것만 가지고 그녀가 악녀가 되었다고 하기엔 무언가 석연치 않다. 이는 책의 마지막에서 밝혀지는 아이코의 태생적 환경과 결합되어 더욱 또렷해지는데, 유전적, 환경적으로 이렇게 최악의 조건을 타고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다. 그런 배경 아래 만들어낸 극단적인 캐릭터는 마치 악(惡)이라는 무형의 어떤 것을 의도적으로 형상화시키는 것 같다. 책의 말미에 덧붙여진 해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이코는 그야말로 괴물같은 여성이다. 섹스와 살인을 놀이하듯 즐기는... 그리고 목적은 오직 한가지다. 엄마의 존재를 찾는 것.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시키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야기가 조금 촉박하게 진행됨을 느낄 수 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데, 과도한 가지치기 덕분에 갑작스럽게 이야기가 붕 뜨는 느낌이다. 좀 더 유기적으로 엮일 수 있는 이야기들이 각자 따로 노는 바람에 몰입을 방해한다. 230여 페이지로 끝내기에는 심각하고 어려운 이야기인데, 너무 빨리 끝났다는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내 머리에서 마무리 되지 못한 이런저런 생각과 떠오르는 단상들로 머리가 아프다. 유전 요인이든, 환경 요인이든 아이코는 불행했고 그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했다. 사랑 받지 못한 아이는 당연히 사랑을 베풀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눈에 거슬리는 것을 제거함으로서 행복해진다고 믿었을 것이다. 게다가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 최악의 결과다. 그렇게 방치해 둔 주변인과 사회를 마냥 욕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살인자를 동정만 하기에는 아이코의 수법이 너무도 악랄하다. 무기력한 사회의 객체로서 허무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인 것일까?

[아임 소리 마마]는 총 12개의 챕터가 있고, 각 챕터별로 소제목이 달려 있는 형식이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첫 번째 챕터부터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나 범인을 추적하는 형식이 아닌,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범인의 행적을 따라 이동하면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원인을 되짚어 보는 형식이다. 이 경우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하면서 느끼는 스릴과 긴장감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왜?'에 집중하게 됨으로써 범죄를 둘러싼 범인의 환경과 심리상태에 초점을 맞추게 되어 좀 더 깊은 사고를 요하게 된다. 한마디로 단순히 미스터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현상'들이 구체적, 직접적으로 와닿아서 머리가 아파지는 것이다. 이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에서도 느끼는 것인데, 그녀가 예리하면서도 따뜻하다면, '기리노 나쓰오'는 작가 특성상 신랄하고 날카로우며 차갑다. '미야베 미유키'가 송곳이나 바늘같다면 '기리노 나쓰오'는 날 선 일본도(日本刀) 같다. 가차없이 베고, 찌르고, 확인사살까지 한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있다. 머릿속에 형체없는 검은 물체들이 일렁이는 느낌이 자꾸 든다. '기리오 나쓰오'는 여전히 내게는 불편한 작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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