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의 소리 - 이와아키 히토시 단편집
이와아키 히토시 지음 / 애니북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출간 소식을 접한 것은 지난 여름이었나? 발매된 지 하루가 채 안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이미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고, 그에 따라 브랜드 파워를 공고히 다지고 있는 작가인 만큼, 각 인터넷 서점 만화 카테고리에는 그의 새 작품(그러나 실은 오래된;)을 알리는 광고배너가 보기좋게 자리하고 있었다. 습관처럼 클릭하는 공간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소식을 접했으니 난 당연히 신이 났고, '오옷, 이거 뭐지?' 하고 싱글벙글 상세내용을 읽어내려갔다. '이와아키 히토시의 초기 단편집, [뼈의 소리] 국내 라이센스 발간'이라는 타이틀 아래, 부가 설명으로 그의 초창기 시절 6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고 전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한창 [히스토리에] 4권에 목이 말라 탈수증세가 점점 심해져 가고 있을 때라(지금은 거의 포기상태-_-), 이 책의 발매소식은 마치 가뭄에 단비같은 촉촉함이 배어있었다. 게다가 초기작이라면 일본내에서도 현재 절판 상태가 아닌가. 잘 됐군, 잘 됐어. 그렇게 나는 이 작품의 출간을 기꺼이 박수치며 환영했다.

말은 환영한다고 했지만 실은 그로부터 한참 뒤에서야 책을 샀다.(어제 샀음;) 나라는 인간의 성질이, 원래 모든 쇼핑은 '삘'이 왔을 때 해야 하는 법이거늘, 그 때를 놓치니까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 벌써 해를 넘겨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도 아닌 것이, 틈나면 [뼈의 소리] 리뷰를 읽어보며 사전 평가를 하곤 했는데, 이게 좀 혼란스러운 것이 좀처럼 책의 재미를 가늠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구입을 차일피일 미룬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실망했다는 리뷰부터 무척 좋았다는 리뷰까지 천차만별이다 보니 기준을 어디다 둬야 할지를 모르겠는 거다. 특히 이와아키 히토시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이 '의외로 실망'이라거나 '2% 부족하다'는 말을 주저없이 하니, 아직 읽어보지 못한 독자로서 갈팡질팡 할 수밖에. 그러나 호기심은 죽은 시체도 벌떡 일어나게 하는 법.(누가 그래?) 궁금한데 어쩔 수 있나. 직접 평가해봐야지. 게다가 내게는 [기생수]와 [히스토리에]를 무척 좋아하는 독자로서, 그의 초기단편집 하나 정도는 기념으로 사'줘'야 한다는 묘한 의무감도 있었다.;

책을 받자마자 마치 먹이에 달려드는 강아지처럼 책을 집어들었다. 우선 주루룩 훑어보니, 가장 오래된 작품인 '쓰레기의 바다'와 '미완'을 제외한 나머지 4작품은 [기생수]나 [히스토리에]의 그림과 대동소이 했다. 예의 그 단순한 듯 묘하게 섬세하고, 평면적인 것 같지만 묘하게 역동적인 작화가 얼마나 그리웠던지. 조금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책을 읽어갔다.

첫 번째 작품인 '쓰레기의 바다'는 이와아키의 데뷔작으로, 그의 세계관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쓰레기(인간)로 오염되어가는 바다(세상)와 그 바다를 바라보는 소녀가 구원의 손길를 구하고, 어떤 식으로 구원되는지 보여주면서 미약하게나마 희망의 끈을 드리운다. 인간과 환경에 관한 메시지를 읽으면서 혹시 이 작품이 [기생수]의 모티브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미완'은 딱 잘라 말하기는 힘들지만 내가 보기엔 이해와 소통에 관한 이야기다. 다들 각자의 생각에 빠져 헛꿈 꾸는 세상, 혹은 냉소로만 일관하고 노력하지 않는 세상에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한발자국 다가서게 된다는 동서고금의 진리. 잊기 쉬운 것을 일깨운다. 인생은 미완성이라잖아. 부족함이 모이면 언젠가 완전해지는 날도 오겠지. 그 비슷한 거라도. '반지의 날''와다야마'는 1회성으로 끝내기에는 조금 아쉬운 이야기들. 특히 '반지의 날'의 경우는 이와아키의 만화치고 드물게(?) 약간의 소녀만화적 요소도 포함되는데, 앞으로 언니와의 관계라든가 그 오토바이 청년과의 뒷 얘기가 궁금해진다. 그에 비해 '와다야마'의 경우는 뒷 얘기가 아니라 예전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데, 전문용어로 프리퀄이라고 하던가? 와다야마가 그런 공포스러운(?) 장난을 치게 된 사정을 속편 형식으로 풀어도 재미있겠다. '살인의 꿈'과 마지막 '뼈의 소리'는 현재의 이와아키의 특징이 가장 비슷하게 나타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이상하게 공포스러운 시선처리(특히 감정을 상실한 듯한 동공(瞳孔) 묘사)라든가 피칠갑의 섬뜩한 표정, 얼굴이나 신체의 한 부분을 클로즈업 했을 때는 만화 그림이라기보다 거칠고 가벼운 미술 데생을 보는 듯한 느낌까지, 내가 알던 이와아키에 가장 가깝다. 내용 역시 마찬가지. 참으로 '이와아키'스럽다.

일반적으로 만화 작가의 초기작이라고 하면, 두 가지중 하나다. 상큼, 발랄, 풋풋하거나 거칠고 투박하거나! 굳이 따지자면 이와아키는 후자다. 그러나 너무 거칠고 투박해서 세공 좀 했으면 싶으면서도 그 원초적인 매력이 싫지가 않다. 그가 가진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묘미를 느껴보고 싶다면 한번쯤 [뼈의 소리]를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큰 기대는 금물이지만 초기작임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단편집. 자, 아직도 [뼈의 소리]가 어떤지 궁금하십니까?



덧) 하드커버 애장판도 아니고, 겨우 200여 페이지 갖고 8000원이나 받아먹는 출판사에 잠시 거품을 물었으나, 일본웹 검색해보니 원서도 790엔이었네.-_- 도대체 왜 이렇게 비싼거래? 어디 금테 두른 것도 아니고. -_- 뭐, 종이질이 좀 좋긴 하다만 그래도 너무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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