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 일기 - 1916~1943
윤치호 지음, 김상태 엮음 / 역사비평사 / 2001년 2월
평점 :
품절


 윤치호…어찌되었건 일제시대 조선의 최고 원로로서 여러가지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 중의 한 명이다. 특히 본인의 경우 윤치호에 대해서 딱 한 마디로 "친일파의 대부"라고 인식하고 있었으나 다른 독서모임에서는 최소한 윤치호는 기존의 친일파와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친일파면 친일파지 무슨 고려할 것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북한과 달리 친일파의 숙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이른바 '역사 바로세우기'가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결국 스스로 윤치호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 위해서 <윤치호 일기>는 반드시 거쳐야 할 징검다리였다.

 원래 윤치호 일기는 1883년부터 1943년까지 계속되어서 방대한 양을 자랑하고 특히 영어로 대부분이 쓰여져 원문을 읽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윤치호 일기 중에서 일제시대의 것만을 대상으로 각 주제에 맞게 발췌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특히 일기를 단순히 시간 순서대로 배열할 경우 흐름을 잡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편역자인 김상태 교수는 [3.1운동 전후], [만주사변 전후],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전후], [일제하 조선 기독교와 윤치호], [윤치호가 본 일제하 조선의 자화상] 이렇게 5개의 주제로 윤치호 일기를 발췌하여 구성한 점은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싶다. 단순히 시간 순서로 번역하는 것이 쉬웠을텐데 이렇게 일일이 주제별로 발췌하기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리고 일단 윤치호에 대해 평가하기에 앞서서 최소한 윤치호가 장장 60년 동안 매일같이 영어로 일기를 쓴 점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다. 그는 일기에 자신의 일상생활과 공인으로서의 활동상황은 물론, 국제정세와 국내 정국의 동향에 대한 견해와 전망 등을 꼼꼼히 기록해 놓았다 그래서 윤치호 일기는 유명인사들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에서 적잖이 나타나는 것처럼, 과거에 대한 기억에 오류가 있거나 집필 당시의 관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의 행위를 과장 또는 은폐했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래서 이 책에서 드러나는 윤치호의 생각은 굉장히 신뢰도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 자신도 윤치호의 영향을 받아서 매일 매일 일기를 쓰기로 결정하였다. 일기라 함은 원래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면서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고 반성하는 역할도 하지만 윤치호 일기를 보니 역사적 사료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물론 내가 윤치호 만큼 역사에 영향을 미칠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준비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윤치호 대하여 편역자인 김상태 교수는 "'주관적'으로는 분명히 애국자임에 틀림없지만 그가 '객관적'으로는 나라와 민족을 저버린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평하고 있다. 아마도 김상태 교수는 윤치호에 대해 이른바 쉴드를 쳐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던 같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데 나는 김상태 교수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윤치호 일기를 끝까지 읽어본 결과 윤치호는 3.1 운동에 반대하고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일제가 징병제를 실시했을 때 찬성 의견을 방송을 통해 발표하고 각종 친일 단체에 참여했으며 특히 기독교 YMCA의 친일을 주도하는 등 분명 친일파 대부로서의 행동을 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무슨 '주관적'으로는 애국자라는 등 말도 안되는 궤변으로 윤치호를 감싸주는가? 설혹 윤치호가 '주관적'으로 애국자라고 하더라도 김상태 교수가 윤치호의 마음 속에 들어가 보지 못한 이상 어떻게 이렇게 단정할 수 있는지 매우 의문이다. 

 이 책은 일제시대 이른바 지식인이 어떻게 친일 대열에 합류하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독립협회 회장등을 거치면서 민족주의 진영의 존경받는 원로로 추앙받던 윤치호가 변절하는 과정을 이 책을 통해 하나 둘 깨달으면서 존경받는 원로가 사라진 우리나라의 역사의 비참함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읽다보면 윤치호가 조선 민족에 대해 가차없는 비판을 함으로써 읽기에 불편한 곳도 곳곳에 있지만 한국 일제시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으로써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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