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양장)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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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제목을 정할 때는 상투적인 표현을 피하고자 노력하지만, 이 책의 경우에는 이런 상투적 제목이 오히려 책을 제대로 표현하는 제목이므로 부득이 "SF 소설의 걸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자 한다. 사실 SF 소설이란 장르가 굉장히 마이너한 장르고 이 책을 포함해서 단 두 권 밖에는 읽어본 적이 없는 장르이므로 "걸작"이란 표현을 사용함에 딱히 거리낌이 없었다. 이렇게 SF 소설이 마이너한 이유는 간단하다. "SF 소설"이란 문구를 분설해보면 왜 그런지 명확해지는데 "SF"는 글쓴이 뿐만 아니라 읽은 사람에게도 기본적인 과학 소양을 요구하고 "소설"이다 보니 이에 더하여 글쓴이의 수려한 글 쓰는 솜씨까지 요구하기 때문이다.

최근 문이과가 통합되는 방향으로 교육과정 등이 변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문과는 문과, 이과는 이과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문과 출신이 SF 소설을 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그나마 이과 출신이 SF 소설을 쓰는 것이 대부분이나 나도 그렇지만 이과 출신은 수식에는 강할지 몰라도 글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SF 소설이 그 양도 적을 뿐만 아니라 마이너한 장르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은 마이너한 SF 소설의 걸작으로 SF 소설의 장점을 보여주는 정말로 훌륭한 책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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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wer of Babylon



또 사람들은 의논하였다.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야훼께서 땅에 내려오시어 사람들이 이렇게 세운 도시와 탑을 보시고 생각하셨다.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이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 할 일이 없겠구나. 당장 땅에 내려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해야겠다."

야훼께서는 사람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도시를 세우던 일을 그만두었다.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놓아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

<창세기> 11장 4~9절 (공동번역)

현재 "바벨탑"은 기술적으로 또는 재정적으로 실현하기 어렵거나 지나치게 야심적이어서 성공할 수 없는 비현실적이나 공상적인 계획을 뜻하는 단어 혹은 과학이나 문명 등이 발전하여 금기시되는 영역까지 닿으려 할 때도 은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테드 창의 소설에서는 금기시되는 영역까지 닿았음에도 성경과 달리 야훼가 이 탑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결국 원통형 인장처럼 하늘 끝까지 닿으면 다시 땅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며 "몇 십 세기에 걸쳐 역사한다고 해도 인간은 천지창조에 관해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 이상의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이고 이를 통해 "야훼의 업적은 밣겨지고, 그와 동시에 숨겨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 많은 연구 끝에 우주의 나이는 137억년 정도임을 밝혀 냈으나 우리는 아직까지 우주의 끝이 어디인지, 우주의 시작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앞으로 수십 세기가 지난다고 하여도 "천지창조"에 관해 금기시되는 영역인 해당 내용에 대해 알기는 쉽지 않을 것이지만, 인간의 호기심은 분명히 튼튼한 바벨탑을 세워 하늘 끝까지 세우고자 노력할 것이고 비록 하늘 끝까지 닿진 못하더라도 그 과실을 우리의 후손들이 누릴 수 있으리라.


광선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선택하기 전,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 하지만 나는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내가 달성하게 될 것은 최소화일까, 아니면 최대화일까?

네 인생의 이야기

"네 인생의 이야기"는 절반쯤 읽고 나서야 책의 구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책을 읽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시계열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책을 읽게 된다. 그런데 이 단편은 두 개의 별개의 이야기를 가지며, 그 중 한 가지 이야기는 시간적 순서도 뒤죽박죽이다. 벌써 책의 구성에서 부터 시간의 흐름으로 원인과 결과로 구성되는 뉴턴역학과 달리 해석역학에 따라 책을 구성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또한, 자유의지와 전지(全知)는 양립 불가능함이 분명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딸이 젊은 나이에 사고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유의지로 "아이를 가지고 싶어?"라는 질문에 "응"이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자유의지와 전지(全知)는 어떻게 보면 양립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다면 그거야 말로 따분한 일 아닐까? 나라면 다른 선택을 하고 마치 오이디푸스처럼 해당 결과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에 대해서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이 책은 SF 소설의 걸작 중에 걸작이며 SF 소설은 황당무계한 헛소리들의 항연이라는 선입견을 무참하게 깨뜨릴 수 있는 책이다. 감히 평가하건데 올해 읽은 책 중에서 한 손가락에 꼽힐 수 있는 책이고 타인에게 과감하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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