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성의 사나이 그리폰 북스 16
필립 K. 딕 지음, 오근영 옮김 / 시공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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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K.딕의 명성이먀말로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한 유일한 힘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조금은 실망이었다. 블레이드 러너의 묵시론적 비장미, 토탈 리콜의 깔끔한 상상, 그 어느 것도 이 소설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읽는 내내 심기를 건드린 것은 저자의 지극히 미국적인 관점이었다. 말미의 평문에서 말하듯 일본인에 대한 평면적인 이해, 미국적 가치에 대한 의미 부여, 독일인에 대한 멸시 등은 제법 탄탄한 소설적 구조마저 짜증나는 것으로 만들었다. 거기에다 그 모호한 결론,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을 때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은 왜였을까.

대체 역사란 매혹적일 수 밖에 없기 마련이다. 비명을 찾아서의 그 리얼한 현실 묘사, 그리고 주인공의 결단이 아직까지도 내 마음 속에 살아있는데 비해 어제 읽은 이 책의 주인공들의 모습은 좀처럼 머리에 그려지지 않는다. 관념적이고 실체가 없는 주인공들. 거기에다가 일본과 독일이 지배한다는 가정은 결구 이 소설에서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당대 미국 현실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기에는 메시지가 너무도 약하고, 그저 재미로 바꿔본 것이라고 하기에는 별 재미가 없고...

이 한 편으로 저자의 역량을 평가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번역된 다른 책이 없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원서로 읽어야 하는 것일까? 아! 우리 나라 sf 시장의 빈약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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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들어선 길에서 (구) 문지 스펙트럼 17
귄터 쿠네르트 지음, 권세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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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슬픈 것, 구동독의 풍경이 결코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나는 이 책은 동독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읽으려했지만 이야기는 항상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로 읽혔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은 <때아닌 안드로메다 성좌>와 <가정 배달>이다. 우리의 삶은 진실인가, 혹시 통제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인 때아난은 짧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통제되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 개체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통제 사회에 필요한 것은 깨달은 자가 아니라 순응하는 자이므로. 가정 배달은 충격적이다. 각 사람에게 시체들이 배달된다. 그 동안 자신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의 시체다. 끔찍하지만 과연 시체의 배달을 받지 않을 사람이 존재할 것인가? 결국 우리 모두는 이 사회의 죄악을 만든 책임자가 아닌가 하고 작가는 묻고 있다.

sf 기법이 주로 사용된 작가의 글은 실로 흥미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번역의 문제이다. 만연체 문장은 원문을 확인해보고 싶은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역자의 소망이 낯설게 하기였다면 성공한 느낌이 든다. 한국말이라고 보기에는 좀 어려운 문장이 많았다. 번역투의 문장, 그것이 아니었다면 이 책은 보다 흥미를 끌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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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폭풍의 날
모르데카이 로쉬왈트 지음 / 세계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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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핵전쟁이 일어났다는 가정하에 출발하고 있다. 인류, 아니 인류 중의 선택받은 일부는 전쟁 직전에 지하에 들어간다. 지하는 레벨이 나뉘어있다. 가장 깊은 곳, 즉 가장 낮은 곳은 레벨 세븐(이 책의 원제)이라 불리는 곳으로 군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레벨 식스 역시 군인의 차지다. 민간인 중 중요 인물은 3-5, 그냥 그런 일반인은 레벨 1-2이다. 군인이 가장 안전한 곳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시사적이다.

그리고 이렇게 등급이 나뉘어 있다는 것은 이 세계가 계급 사회임을 보여준다. 죽는 것도 등급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풍경이다. 전쟁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끝난다. 하지만 그 동안 이 세계는 완전히 멸망해버린다. 세계를 명망하게 만든 것은 폭탄이지만 그 실행은 오로지 푸쉬 버튼의 간단한 조작만으로 이루어진다. 푸쉬 버튼을 누르는 군인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행동이 이 세계의 파멸을 불러왔다는 인식은 도달하기엔 너무나 먼 인식이다.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중간중간에 나오는 옛이야기들이다. 아니다. 핵폭발의 시대에 맞게 새롭게 각색된 옛이야기들이다. 그 얘기들은 현 시대 우리의 삶에 대한 냉철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어 읽는 이의 가슴을 찌른다. 책을 덮으면서 느낀 것, 한반도를 둘러싼 지금의 상황과 너무도 똑같다는 것, 그것이 다시 한번 내 가슴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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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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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사는데 대해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시사 프로에서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나라의 도움을 받기는커녕, 죽음에 내던져지기 일쑤인 사건들을 볼 때, 그리고 이런 책을 읽을 때이다. 박노자의 책은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시내 곳곳에 군인들이 있는 나라, 호국 불교가 있는 나라, 조선족, 고려인을 멸시하는 나라, 그것이 바로 우리 나라의 초상이다.

이 책이 더욱 부끄러움을 주는 것은 그의 비판이 굉장히 논리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대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결코 병역의 의무를 저버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랬다가는...... 나의 미래는...... 하는 게 평범한 인간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런 생각은 나의 신념 체계와 어떠한 교집함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소시민적 파시즘에서 벗어날 때가 온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익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함을 박노자는 너무도 아프게 지적하고 있다. 정말 대한민국에 사는 게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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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창비시선 211
이면우 지음 / 창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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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니. 참 자극적인 제목이다. 그 제목에 끌려 샀다. 깊은 밤 사내들은 운다. 대놓고 낮에 울기는 뭐한 사내들이 밤에 운다. 언젠가 이 시와 비슷한 시를 읽은 일이 있다. 장난감을 손에 들고 눈물을 글썽이던 남자에 관한 시... [쓸쓸한 길]의 사내 역시 눈물을 흘리던 사내와 다르지 않다. 손공구 하나로 평생을 살아온 사내, 그러나 늘 주위의 타박만이 있을 뿐인 인생. 사내는 보일러공, 보일러 스위치를 넣고 박용래시전집을 읽는다.

부끄럽다. 난 손공구 하나 제대로 만진 적이 없다. 시 역시 마찬가지다. 제대로 울어본 적은 있던가? 잘 모르겠다. 결국 나는 사내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낄 뿐이다. 손공구와 함께 한 삶, 적어도 추상적이고 무의미한 내 삶보다는 격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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