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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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는 '어바웃 어 보이'의 주인공 윌의 비관적 센티멘탈 버전이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는 '인간은 섬이 아니다'라고 말한 이가 누군 지를 묻는 퀴즈로부터 시작한다. 윌은 본 조비라고 답하고 이내 자신의 명제를 내뱉는다. '인간은 섬이다'라고.

<그 후>는 '어바웃 어 보이'와 동일한 지점에서 시작한다. 서른 살 먹은 다이스케는 아버지가 주는 생활비를 받으며 살아간다. 덕분에 일하지 않으면서도 생활에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윌이 아버지의 저작권료로 살아가는 것과 동일하다. 그렇게 계속해서 살았다면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인간은 섬이다'라는 명제대로 살아가기가 결코 녹녹치 않다는 것. 세상 일에 조금만 등을 돌리면 되지만 우리의 주인공들은 결코 그렇게 쿨하게 살지는 못한다. 쿨을 외치지만 이내 주변의 쿨하지 않은 일들에 말려들어가기 시작하고 결국은 육지에 달라붙는 섬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섬이다'라는 명제는 일종의 유토피아다. 그곳은 도달할 수 없는 섬이고, 명제로만 존재하는 섬이다. '어바웃 어 보이'에서 윌은 육지 생활에도 그럭저럭 만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의 경우는 그보다는 더 비관적일 것이다. 윌은 육지인들에게 두 손 다 들어보였지만 다이스케는 손에 날카로운 칼을 쥐고 있다. 그러고도 육지인들에게 환영을 받으리라고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다. 오산치고도 엄청난 오산이다. 윌, 다이스케, 그들의 엇갈린 결론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나는 계속해서 섬이 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시선을 던지고 있다. 섬으로는, 정말 살 수 없는 것일까? 우정, 정의, 비분강개 그런 것들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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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04-07-29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씩 섬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분명 가끔씩입니다. 어느 순간 TV를 보든, 영화를 보든, 책을 읽든 정말 어느 순간 느닷없이 비분강개하고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정말로 저는 섬이 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때론 정말 가끔 그렇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