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닥터 코페르니쿠스 - 뿔 모던클래식 6
존 반빌 지음, 조성숙 옮김 / 뿔(웅진)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기 전 당신이 무엇을 상상했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무엇을 상상했던지 간에 그 상상은 옳지 않으리라는 것, 그것 하나뿐이다.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클리세적인 사실들을 반빌은 가볍게 무시하고 넘어간다. 반빌이 그려내는 코페르니쿠스는 참피나무의 비밀을 이해하려는 소년일 뿐이고, 끝내 그 비밀을 풀지 못하고 죽인 노인일 뿐이다. 그의 삶은 가치가 있었나? 그는 절망한다. 그는 자신의 삶이 실패였다고 느낀다. 단단히 여겨지던 신과 하늘과 대지를 부정해버린 존재였을 뿐이라고 인식한다. 그러므로 그는 그저 외로운 한 인간일 뿐이었다. 돌아갈 신도 없게 되어버린 존재. 삶의 비밀을 평생 찾아헤맨 대가치고는 가혹하다. 그러나 그가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고 해도 다른 길을 갔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므로 그는 닥터 코페르니쿠스다.
읽기 전 반빌 같은 모더니스트가 왜 코페르니쿠스를 썼을까 몹시 궁금했다. 다른 건 몰라도 아무리 반빌이라도 전기소설만큼은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았다. 반빌은 그저 반빌이었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도 놀라웠지만 '닥터 코페르니쿠스'는 더 놀랍다. '플로베르'가 호화롭고 날렵하다면 '코페르니쿠스'는 느리고 견고하다.
이 책을 내고도 나머지 책을 내지 않은 출판사의 결정이 놀랍다. 더 놀라운 건 이 책이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지 못했다는 우리 독서 시장의 현실일까? 모르겠다. 그러나 지나치게 영악한 출판사의 결정에 더 반발심을 느끼게 되는 것은 한 사람의 독자로서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