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나라 한국유학 2천년 교양 교양인 시리즈 1
강재언 지음, 하우봉 옮김 / 한길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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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부터 끝까지 실용주의적인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이 책에서 내가 제일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사림을 비판하는 대목들이었다. 사림, 단어 탓인지는 몰라도 훈구에 대립되는 세력으로서의 사림이란 말은 늘 어떤 종류의 정신적 결벽성과 함께 연상되곤 했다. 그것은 다시 깨끗함과 의연함, 진정한 선비라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림을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조광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내 생각을 완전히 박살내버렸다.

이 책에서 사림파는 나라를 망치고 붕당 정치를 조성한 원흉으로 지적된다. 그들은 이념만을 알았을 뿐 실제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젬병이었다는 말이다. 이에 대립되는 인물이 바로 정도전이다. 정도전은 조선 500년 역사 내내 무시당하기만 했다. 그것도 모자라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 또한 그를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협잡꾼, 정권에 붙어 사는 어용 유학자 등이 그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저자는 정도전이야말로 유학을 가치있게 사용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훈구파들은 현실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음을 지적한다. 그러한 훈구파들의 맥이 사림에 의해 끊기는 바람에 나라의 실제적 삶의 모습은 엉망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실학이 사실 훈구파들의 주장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주장에 100퍼센트 동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는 확실한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과격하게 느껴지는 그의 주장은 오히려 신선한 충격이 된다. 하나 아쉬운 것은 일종의 유학사이다보니 개개의 사례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없다는 것이다. 그랬을 경우 저자의 주장은 더욱더 충격적이고, 독서의 즐거움은 배가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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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담 - 구니오와 미나에의 문학편지
쓰지 구니오·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김춘미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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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리 달가운 책이 아니다. 톨스토이, 노신, 스탕달 등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들의 필담을 듣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그 책들이 사고 싶어지니 말이다.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듯한 두 작가의 은밀한 목소리는 나를 추억에 젖게 만들고,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한 번 열어보게 만든다. 이 책의 매력은 두 사람의 박식함보다는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소설에 대한 애정에 있는 것 같다. 두 사람은 마치 소꼽동무들처럼 자신들이 읽었던 책들을 솜씨좋게 우리 앞에 내놓는다. 그것들은 격식을 갖춘 요리는 아니다. 엄마가 부쳐주는 김치전에 더 가깝다고나 할까. 그들의 지식은 시큼한 김치 밑에 감추어져 있어서 꼭꼭 씹어야 비로소 제 맛을 드러낸다. 그런 추억과 옛기분에 젖어 나는 그들은 읽었으나 나는 읽지 않을 책들을 찾아내고는 읽고 싶은 욕구를 뿌리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이 책은 참으로 독자에게는 달갑지 않은 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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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소설향 18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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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빠이 이상을 읽고난 뒤부터 나는 김연수가 최고로 글 잘쓰는 소설가 중 하나라고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단점이 있었다. 지나치게 문학적이라는 단점말이다.(이렇게 써 놓고 보니 단점인지 잘은 모르겠다.) 특히나 비슷한 연령대의 작가인 김영하에 비춰 보면 왠지 무겁고 나이든 어른의 글처럼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김연수 자신도 이러저러한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는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전기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 김연수는 연속적으로 날렵한 잽을 날린다. 그러다가 헤비한 펀치까지 구사해 읽는 이를 떨어지게 한다. 물론 한 방은 아니고, 경량급이니만큼 연타에 의한 승리겠지만 말이다. 요즈음 김영하가 스트레이트만 날리다 경기를 끝내는 것에 비하면 오히려 흥미를 느끼게 만드는 것은 김연수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참 잘 쓴다. 본인은 두렵다고 하지만 다음 소설은 아마도 더 나은 소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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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오랑캐의 옷을 입었소 - 이릉과 소무
도미야 이따루 지음, 이재성 옮김 / 시공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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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릉의 이름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다섯수레에서 나온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이란 책을 읽고난 뒤였다. 이릉의 비극적인 삶이 묵직하게 다가와 몹시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그 책에 대한 기억은 또 다른 책인 '이릉과 소무'로 나를 이끌었다. 이릉과 소무가 주고받았다는 편지는 감동적이었다. 그들은 역사를 걺어진 사람들이었다. 물론 책의 말미에는 이릉 신화가 상당 부분 위작일 가능성이 드러난다. 그 편지 또한 위작의 누명을 벗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한 시대를 살았던 이릉과 소무의 삶이 달라지는 것을 아니다. 역사의 평가와 무관하게 그들은 분명 한 시대의 첨예한 고민을 온몸으로 안고 살았던 인물들이다. 오히려 역사가의 공정하려 애쓰는 시선은 그 속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책의 가격이다. 12,000원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얇은 책이었다. 전문 학술서도 아닌데 이 정도 가격을 받는다는 것은 지나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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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 2003 제2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종은 지음 / 민음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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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라 절묘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거기다가 오늘의 작가상도 수상했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한 미끼였다. 물론 나도 덥썩 그 미끼를 물었다. 다 읽고 난 뒤 기억나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이었다. 찰리, 호기, 유진, 종만......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그들이 주고 받았던 말들이 무엇인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거기다가 도적질을 하는 장면은 생뚱맞게까지 느껴졌다. 버거 킹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도적질 관련 사건들은 내가 보기엔 그저 장난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서울특별시인 걸까? 작품 제목에 의미를 부여할 이유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인간이란 제목 따위 사소한 것에 유난히 민감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각종 서평을 보면 이 책이 서울의 과거, 현재를 겪은 사람들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책을 다시 열어보았다. 아니었다. 이 정도의 이야기에 서울특별시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분명 오버였다. 왜 가벼운 소설들은 읽고 나면 허망해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특별시의 삶을 좀더 신랄하게, 눈물나게 그릴 작품은 없단 말인가? 가벼움이 경박함과 동일하게 여겨지는 현실이 신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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