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타민 F
시게마쯔 키요시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김광석이 부른 노래 가사 중에 '긴 침묵으로 야위어가네.'라는 구절이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대변하는 구절이다. 젊은 날의 꿈을 상실한 주인공은 그렇다고 늙은 것도 아닌 모습으로 조금씩 야위어간다. 이 때의 야윔은 물론 육체적인 것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의 마음이, 꿈이 조금씩 야위어간다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마음을 제대로 표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내도, 아이들도 그의 편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세계에 있고, 주인공은 주인공 나름의 세계에 있다. 누굴 탓할 문제도 아니다. 다만 그저 그런 것이다. 늙지도 않고 젊지도 않고, 꿈을 포기한 것도 아니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듯 막연한 주인공이니 결코 다른 이를 탓할 수는 없다. 그렇게 늙어가는 것일까? 그렇게 꿈을 잃어버리는 것일까? 누가 보지 않으면 가족을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 싶다는 기타노 다케시의 인터뷰 내용이 생각난다.
이 책은 한번 쓰레기통에 넣었다가 뒤돌아서 다시 가족을 꺼내는 남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 버리려고 해도 버릴 수 없는 것, 다시 주워왔지만 또다시 버리고 싶은 것. 앞으로 갈 수도, 뒤로 갈 수도 없는 것. 하루키의 주인공이 자신의 내면만 바라보고 있다면 이 책의 주인공은 자신의 내면과 외부를 번갈아가며 보고 있다. 누가 이 남자를 용기 없다고 탓할 것인가? 이제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