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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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십을 바라보는 엄마는 여전히 아기가 우는 소리를 못견뎌하신다. 길에서 애가 울고 있으면 일나가면서 집에 두고 나온 자식들의 울음소리로 들렸다고 한다.
나는 문이 쾅하고 닫히는 소리를 싫어한다. 어릴적 싸움이 빈번한 동네에서 자랐기에 문이 쾅하고 닫히는 소리는 폭력적인 일이 생기는 전조였다.
기억이란 그런거다.
내이름은 루시바턴은 떨치고 싶어도 떨칠 수 없는 가족의 이야기고 엄마에 대한 기억의 이야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떨치고 나온 나에 대한 이야기다. 언제나 행복한 가족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나에게도 가족은 내 모든 감정의 근원이고 영원한 숙제이다.

나는 작가가 되려면 냉혹해야한다는 제레미의 말에 대해 생각한다. 또한 내가 늘 글을 쓰고 있고 시간이 충분치 않다며 오빠나 언니, 부모님을 만나러 가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진정 냉혹함은 나 자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 것에서,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게 나야 -일리노이 주 앰게시-에는 가지 않을 거라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결혼생활은 하지 않을 거고, 나 자신을 움켜잡고 인생을 헤치며 앞으로 , 눈 먼 박쥐처럼 그렇게 계속 나아갈 가야 !. 라고. 이것이 그 냉혹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엄마는 그날 병원에서 내가 오빠나 언니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지금 네 인생을 봐. 너는 묵묵히 네 길을 가서...... 원하는 걸 이뤘잖아' 그 말은 아마 내가 이미 냉혹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 내이름은 루시바턴 204페이지

내가 내 아이들이 느끼는 상처를 아느냐고? 나는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 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아이였을 때 품게 되는 아픔에 대해, 그 아픔이 우리를 평생 따라다니며 너무 커서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그런 갈망을 남겨놓는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꼭 끌어안는다. 펄떡거리는 심장이 한 번씩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끌어안는다. 이건 내거야. 이건 내거야 - 내이름은 루시바턴 21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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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fine day 2024-04-16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 알라딘 서재 알림으로 5년 전 오늘 내가 작성한 글이라며 이 글이 떴다. 그때만 해도 구십을 바라보시던 나의 엄마는 집안에서는 움직일 수 있으셨고, 나와 정치적 논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력을 가지고 계셨다. 그때의 나는 여전히 엄마에게 상처를 받을 수 있었고, 내 딴에는 엄마에게 모진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다.
이제 내 곁에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었던 엄마는 안 계신다...

그날 난 며칠동안 식사를 못하시던 엄마를 위해 가장 좋아하시는 간장 게장을 차려드렸다.
그날은 어쩐 일인지 엄마가 식사를 하셔서 얼마나 기뻤던지...
식사가 끝나고 엄마는 나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아, 그동안 섭섭했니? 섭섭했다면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것이 엄마의 마지막 식사였다.
그날 밤 자정 무렵 엄마는 갑자기 정신을 잃으셨고, 그렇게 다음 날 내 곁을 떠나셨다.

엄마가 내 곁에 다시 온다면 나 여전히 섭섭하겠지만, 그리고 또 난 엄마에게 모진 말을 하겠지만,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첫째 단편부터 내가 과연 이 아픈 이야기들을 끝까지 읽을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여름에 읽다 만 이 책을 올해 가장 추웠던 날 다시 펼쳤다.
읽으면서 지난주 어쩌다 어른에 나왔던 철학자 강신주의 말이 떠올랐다. 무상을 보면 사랑할수 밖에 없다는. 힘들지만 끝까지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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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부터 선식을 탄 우유 한잔이 나의 아침식사다.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우유를 마시고, 컵을 씻고 있는데 갑자기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한 남자가 약간 어두운 원목 색깔톤의 주방에서 혼자서 차를 마시고 싱크대에서 컵을 씻어 선반에 올려놓는 장면이었다. 아주 구체적으로 그 남자의 모습도 떠올랐는데 밝은색 옥스퍼드 버튼다운 셔츠와 짙은 갈색 치노바지를 입고, 약간 긴 스포츠형의 머리를 한 남자였다. 갑자기 생각난 장면인데 도무지 무슨 드라마인지 영화인지 생각이 나질 않는거다.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서 어느 영화였는지 기억속의 파일들을 들쳐보았는데 출근해서 커피를 마시다가 딱 생각이 났다.

그건 영화가 아니라 소설책이었던 거다. 그 소설을 읽으면서 그 장면이 내 머리속에서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각인이 되었던건데, 공감각을 경험한 듯해서 상당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소설을 읽으면서 묘사들이 영상으로 잘 느껴지기는 했는데, 시간이 흘러 이 정도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다니 잘 쓴 글이라고 할밖에...

 

 

그 소설의 제목은 하루키의 <기사단장죽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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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서촌이라고 불리우는 곳의 한부분으로 포함된 누상동을 떠난지 벌써 10년이 넘었는데도 난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운동을 한다는 빌미로 매주마다 와서 뭐라도 한다.
나의 모든 추억과 영혼이 이곳에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어제 알쓸신잡의 종로구 중구편이 문학의 밤이 된것은 나의 이런 감정과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읽으면서 또 40여년전의 누상동 골목을 헤매고 다니던 그 꼬마 계집애로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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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눈이 소복히 내리니 마사지 치료도 취소하고 리흐테르의 드뷔시가 듣고 싶을 뿐이다.
마침 리흐테르 전기가 알라딘 중고로 나왔기에 잽싸게 주문했다.

리흐테르의 드뷔시 달빛 연주는 실황앨범밖에 구할수없다. 이 앨범도 1960년 카네기홀 연주실황이라 주변의 소음이 매우심하다. 그런데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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