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주제나 교훈을 얻기 위함도 아니고, '감춰진 중심부'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도 아닙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분명희 어떤 교훈을 얻은 것 같기도 하고, 주제를 찾아낸 것 같기도 하고, '중심부'를 열심히 찾아 헤매다 얼추 비슷한 곳에 당도한 것도 같은데, 막상 다 읽고 나면 그게 아니었다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설을 읽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헤메기 위해서일 겁니다. 분명히 목표라는 게 실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이상한 세계에서 어슬렁거리기 위해서입니다. 소설은 세심하게 설계된 정신의 미로입니다. 그것은 성으로 향해 길을 따라 걸어가지만 우리는 쉽게 그 성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대신 낯선 인물들을 만나고 어의없는 일을 겪습니다.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을 경험하기도 하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를 곰곰이 짚어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굳이 소설을 집어드는 이유는, 고속도로로 달리는 것에 싫증이 난 운전자가 일부러 작은 지방도로로 접어든 이유와 비슷합니다. (중략)
그러므로 좋은 독서란 한 편의 소설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작가가 만들어놓은 정신의 미로에서 기분좋게 헤매는 경험입니다.
-김영하 <읽다> 101~103페이지.
나폴리 4부작을 읽고 있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에 대한 김영하의 <읽다>의 해석은 이렇게나 적확하다. 나폴리 4부작을 읽는 동안 레누와 함께 기뻤다, 화냈다, 좋아했다, 절망했다, 반가웠다, 레누를 탓하기도 했다가 릴라를 책망하기도 했다가, 이 무슨 소설읽기가 롤러코스터도 아니고... 참 다양한 감정의 기복을 느꼈다가 펼쳤다가 닫았다가 하고 있다.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레누와 릴라가 뼈와 살이 있는 실체인양 내 앞에 걸어다니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이제 2권을 1/5 정도를 읽었을 뿐인데 이러고 있다... 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