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에게 트랑이 있다면 나에게는 종로구 누상동이 있다. 지금은 서촌이라고 불리우며 트랜디한 동네로 여겨지는 그곳. 그곳에서 사십여년을 보내고 이사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지금도 가끔 찾아보는 누상동집에 딴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않는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빠가 안방에 앉아 계실것만 같은 그곳. 아빠가 벽돌 하나하나 지고 날라 몇년에 걸쳐 지었던 내방과 안방이 눈에 선하다.
알랭에게 빌카르티에 숲이 있다면 나에게는 인왕산 코끼리바위가 있다. 봄이면 아카시아가 지천으로 피던 그곳. 하루종일 코끼리바위 근처에서 뛰어놀다가 해가 뉘엇뉘엇지면 집으로 돌아오곤했었다. 인왕산이 나에게는 놀이터였고 힘들고 지칠때면 한참을 울다 내려오던 힐링의 장소였다.
누상동은 지금은 서촌이라 불리우며 멋진 카페와 맛집들로 채워지고 있지만 내가 어릴때 살던 그곳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살던 달동네였다. 매일 밤마다 누군가의 집에서는 삶의 고단함으로 부부싸움의 고함이 들려오던 곳. 말썽피우는 아이들에게는 매타작이 일상이던 그곳. 그러나 아침이 오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아줌마들의 수다스러움으로 가득차던 골목이 있던 그곳.
그리고 이제 그 세계는 모두 사라졌다. 나의 모든 하루하루들이 작별의 나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