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들은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고 있어요." 그가 말을 계속 했다. "아버지도요. 자기 자신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까지도 파멸의 길로 몰아놓고 있어요. 여기에는 얼마 전에 파이시 신부님이 표현하신 대로 '카라마조프적인 대지의 힘'---대지의 광폭하고 다음어지지 않은 힘이 도사리고 있어요... 이 힘 위에서 하느님의 정기조차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그건 나도 모르겠군요. 내가 알고 있는 건 나 자신도 카라마조프라는 것뿐입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 / 도스토예프스키>



언제 구입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권을 펼쳐보니 고모에게 물려받은 책처럼 누렇게 바래있다. 아주 오래전 구입했을 당시에 1권의 시작 부분 약 50쪽 정도만 읽고 정중히 책장에 다시 꽂아 넣은 채로 이사할 때만 책장에서 꺼내고 이사한 집에서 다시 꽂아두고를 반복했을 뿐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 더 이상 읽은 적은 없었던 러시아 막장 가족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그렇게 십 수년이 흐른 지금, 5월! 국가가 정한 가정의 달에 나는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곱씹기 위해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이런 것이 바로 고전!! 인가 싶다. 


현재 나에겐 가족이 없다. 가족관계증명서에는 일촌과 이촌이 출력되어 나오지만 그 인간들 전부를 내쫓아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인연을 끊어내고 싶었던 자들은 나의 생모와 생부, 즉 일촌 두 명인데 껴묻거리로 이촌과 이촌의 자녀들까지 다 쓸려나갔다. 나의 선의와 베풂을 기본 옵션이라고 생각하는 몰염치한 인간들을 파면해버리고 나서 놀란 것은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좋다는 것이다. 어떤 점이 가장 좋냐면 그 누구도 내 시간에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 즉, 그들의 연락이 없다는 것이 좋다. 저녁에 씻고 침대에 기대어서 하릴없이 이미 읽은 책의 좋아하는 부분을 다시 읽으면서 음미하고 있을 때 걸려오는 영상통화가 사실은 싫었다. 난 이미 방전상태인데 내일 사용할 체력을 땡겨쓰면서 나를 기억도 못할 조카에게 과장된 하이톤과 과잉 미소로 혼자 말하는 게 싫었다(조카는 아직 말을 할 줄 모르니까). 또는 특별히 나에게 보내는 것이 아닌 전달하기 기능을 이용해 보낸 십 여장의 사진에 답장을 하는 것도 귀찮았다. 이런 부정적인 마음의 이면에는 내가 조카에게 뭘 해줘도 단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이촌에 대한 불만이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다. 더 정확히는 '왜 이 집구석 인간들은 부모나 자식이나 한결같이 나에게 무임승차하는 걸까?'라는 생각!


이촌들과 나는 나이 차이가 좀 나고 그래서 그들이 학생일 때 나는 직장을 다녔기에 이촌들에게 사소하게 많은 것을 해주었다. 그리고 생부생모도 그 당시에는 현금 수입이 적었기 때문에 사소한 것들은 내가 전부 사주었다. 세월이 흘러 이촌들은 취업도 하고 결혼도 했다. 이촌 중 한 명은 부자 배우자와 결혼해서 돈 걱정 집 걱정 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 도심의 대형 평수 신축 아파트에 입주했기 때문 인지, 원래도 좀 그랬지만 더 집요하게 사람의 등급을 아파트 평수와 가격으로 매기는 일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잘 돌아가는 건 아니라서 그 배우자 놈은 인색한 사람이고 이촌은 육아휴직 중이라 수중이 돈이 충분한 거 같지 않아, 내가 이것저것 조카에게 선물을 해주었는데 단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현타가 왔다. '왜 나는 나보다 더 더 더 부자인 사람에게 선물을 하고 있으며, 그에 대해서 제대로 된 고맙다는 말조차 못 듣는가?' 하는 의문이 쌓여만 갔다. 이 점에 대해서 이촌에게 톡을 했고 읽씹 당했다. 그걸로 끝, 사요나라. 


그래서 나는 '아 이촌도 나에게 쌓인 불만이 많았구나. 그래서 이걸 계기로 관계를 끊고 싶은 거구나.'라고 해석했다. 관계를 이어가고 싶었다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고맙다고 말하지 않은 거 미안하다고 답장했겠지. 각자 상대에게 불만이 많고 더 이상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지도 않다면 그건 그거대로 평화적인 끝냄 인 셈이지.라고 생각을 정리하고 늘 하던 대로 별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더 이상 입지 않는 옷을 기부 상자에 넣고 택배 보내듯이 이촌도 치워버렸다. 별 미련도 아쉬움도 없었던 이유를 이 일기를 쓰면서 깨달았는데, 나는 이촌에게서 그 어떤 정서적 만족감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건 이촌의 잘못이 아니라 아마도 내가 타인에게서 정서적 만족감을 얻는 부류의 인간이 아니어서 그런 것.


가족이라는 인간관계가 나에게 아무런 정서적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 건강이 망가지지 않았을 텐데. 실제로 그 자들을 내 인생에서 도려내고 난 후에 건강검사 결과가 좋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JTBC 사건반장에 나올 법한 이상한 짓을 나에게 했다는 건 아니다. 나라는 인간 개인의 특성이 그렇다는 것일 뿐. 내가 가족 혹은 가족제도에서 그 어떤 정서적 만족을 얻지 못하는 성향인 것, 오히려 혼자 있을 때 더 정서적으로 풍족한 인간인 것. 그걸 반 평생을 가족이라는 것들과 엮여서 살고 난 후 깨달았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


오늘 같은 토요일에는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카톡도 전화도 없는!!) 주중에 있었던 일을 곱씹으면서 일기를 쓸 때 나는 더 없는 충만감을 느낀다. 내가 듣고 싶은 음악(지금은 임윤찬의 베토벤 5번 황제를 듣고 있다)을 마음껏 들으면서. 혹은 무음 상태로 있고 싶으면 무음 상태로 있으면서. 물리적으로 혼자 있을 때의 가장 강력한 특권은 공간을 무음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것이 내 시력에 맞지 않은 안경, 내 발 크기에 맞지 않았던 신발이었던 것. 어쩌면 그랬기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 


가족 없이 혼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심지어는 정서적으로 더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 더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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