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멀고도 먼 감정적인 거리는 어려서 형성되기 시작해서 날마다 강화된다. 누구에게도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는 문화에서 자라는 것, 상상해본 적 있는가? '어떻게 지내니?'하는 일상적인 인사도 아주 개인적인 질문이어서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문화 말이다. 나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를 무슨 일이 있어도 다란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 훈련을 받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문제는 그 사람이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절대 입에 올리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고 배우는 문화 말이다. 완전히 고립된 공간에서 식량을 비롯한 자원이 점점 고갈되어가는 길고도 어두운 겨울을 지나면서, 불필요하게 서로를 죽이는 일을 피하기 위해 침묵을 지켜야 했던 바이킹의 생존 전략이 흔적인지도 모른다.

<랩걸 / 호프 자런>



주변 사람들의 대소사가 전혀 궁금하지 않다.

그래서 마땅히 물어야 안부들 마저도 묻지 않게 된다. 

묻지 않게 되는 안부에는 1) 지금 물어보지 않아도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에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 2) 굳이 내가 몰라도 되는 사소한 것들 3) 알아도 몰라도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들(오히려 모르는 것이 더 이득이 경우가 많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너에 대해서 손톱만큼도, 눈곱만큼도, 치석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태도가 사회생활(가족 내, 직장 내 등등)에서 도움이 되어서 더 안물안궁하게 된다. 어떤 도움이냐 하면, 일반적인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인사치레(감사와 답례 등)를 나는 매우 하기 귀찮아하는데, 남들에게 '원래 주변의 대소사에 관심이 없는 자'로 인식되고 나면 남들이 나에 대해서 기대하는 바가 전혀 없게 되어서 편하다, 매우 편하다. 당연히 나 또한 남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다. 남들에게 바라는 것이 많으면 어떻게 되느냐? 야당 놈들이 나에게 손뼉 쳐 주지 않는다고, 나를 환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삐져서 계엄을 저지르는 내란수괴가 된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를 좋아해 주고, 내 말을 잘 들어야 해. 내가 원하는 건 다 들어줘야 해.'라는 세 살 아이 같은 태도를 환갑 넘은 노친네가 하고 있다는 게, 그런 놈이 대통령이었다는 게 가소롭기만 할 뿐. 이 세상에는 '나만은 특별 우대'해달라는 인간들이 어찌나 많은지. 나는 그 모두를 공평하게 무시해 준다. 특별 우대는 소비금액에 따라 고객등급을 촘촘히 나누고 있는 백화점에 가서나 해달라고 하시라고요.


나는 나에 대해서, 나의 대소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거의 안 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의 길고 긴 대소사를 듣고 있는 것이 고역이기 때문이다. 헌재 판사들은 윤 씨와 윤 씨 변호인들의 개소리를 어찌 다 듣고 있는 것일까... 나는 <분노의 포도>의 톰 조드(주인공)가 출소하고 걸어서 고향집으로 가던 중 거북이를 발견하고는 '저 거북이를 잡아가서 동생들에게 선물로 줘야지.' 하는 장면에서의 길고 긴 풍경 묘사, 거북이의 느린 걸음을 묘사하는 페이지를 전혀 지루하게 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눈앞의 흥미롭지 않은 실제 인간의 TMI는 정말 견딜 수가 없고, 말 그대로 머릿속이 '멍'해진다. 내용의 절반 이상은 정치 윤리 철학에 대한 빅토르 위고의 위대한 랩이었던 소설 <레 미제라블>(혜원세계문학 상 권 532쪽, 중 권 550쪽, 하 권 536쪽, 대략 삼체 시리즈와 맞먹는 페이지 수이며 글자 폰트는 더 작기 때문에 글자 수는 삼체 보다 많으리라) 도 한 글자도 빠짐없이 재미있게 읽었던 나인데, 내 눈 앞의 개성도 모험도 없는 사람(인원???)의 TMI는 정말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역지사지로 나의 TMI도 나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 남들에게는 듣기 싫은 정치인의 성명 발표와 같겠지 하는 생각에서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TMI를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남들에게 내 얘기 좀 들어봐 식의 TMI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이렇게 일기를 쓰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기를 쓰고 나면 어딘가 대나무숲을 찾아가서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이 해소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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