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건은 내가 잠든 사이에 벌어지고 끝(?)이 났다.
밤 10시 전에 잠들었고, 아침 6시 좀 지나서 일어났기 때문.
그래서 딱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생애 첫 계엄 선언을 잠 때문에 놓쳤다.
윤 씨가 당선되었을 때 나는 반은 농담으로
"어휴, 난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전쟁이나 안 일으키고 임기나 다 채웠으면 좋겠다."
라고 동생에게 말했다.
촛불집회, 탄핵정국은 한 번으로 충분.
하지만 윤 씨는 전쟁을 일으키려 했고,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감옥으로 갈 것 같다.
힘든 사건들은 부모 세대에서 끝난 거라고,
나는 평온한 시대를 살다 노화로 인한 병으로 죽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총 맞아 죽거나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서 죽거나
굶어 죽거나
맞아 죽거나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과거의 일이거나 남의 나라(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시리아 등)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참사가 내 코 끝까지 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잠든 사이에.
그러니까 그 일들은 소설의 소재로 존재할 뿐이고
나는 이제 그것을 노벨문학상 작가의 소설로 즐기는 시대를 살아갈 뿐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인생의 가장 큰 미션은
누구나 죽기 전에 한 번은 전쟁(인간의 참 모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충격적이고 절망적인 이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조금의 희망이라도 건져 올리기 위해
한국 사람들의 민주주의(민주제)수호에 찬사를 보내지만
이번 계엄 사건을 계기로 나는 민주제가 한낱 인간들의 선의에 기댄
허약한 제도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 사건에서 선의를 보인 사람은 류혁 법무부 감찰관 한 사람뿐이지 않는가(적어도 공개적으로는)
하지만 그가 사표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전직 검사, 변호사이니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사표가 실업과 동의어가 아닌 사람이니까.
그리고 웃겼던 것은 1차 담화에서 모든 것을 당에 맡긴다던 윤 씨는
며칠 후 류혁의 사표에 사인하는 것으로 다시 자신의 권한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윤 씨가 계엄을 하지 않았더라면
1968년생 조지호는 경찰청장으로 끝판을 깨면서 퇴직할 수 있었겠으나
수갑을 찬 모습의 인생컷을 남기게 된다.
누구를 탓하리.
너라는 인간의 내면에는 민주제를 지키고자 하는 선의가 없었던 것.
하지만 이 또한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
관료제 사회에서는 선의가 없을수록 조직의 상부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
계엄만 아니었으면 자신의 직장에서 조직의 우두머리쯤으로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내면의 선의 없음은 꼭꼭 숨겨둔 채) 사람들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도 진짜 한 순간.
하지만 구데타가 성공했더라면 누렸을 권력과 사치를 거절할 순 없었을 것(마이 프레셔스 골룸, 골룸).
진빵같이 생긴 전 행안부장관 이상민
세균맨 증명사진 같이 생긴 전 국방부장관 김용현
엉덩이 탐정처럼 생긴 미래(조만간)의 사형수 윤 씨
이 웃기게 생긴 세 놈은 도대체 뭔가.
손 잡고 같이 감빵 가라.
적어도 외롭지는 않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