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일본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한국에 개봉하는 일본영화들은 인디도 아니고 오락상업도 아니고 1990년대 KBS2에서 방영하던 드라마게임 같단 말이지. 영화와 드라마 사이 어디쯤. 막 각본가 시험에 합격한 이들의 인턴쉽 같은. 

평론가들의 평이 매우 좋았음에도 불구하고(평론가의 평과 나의 영화 취향은 다르기에) 별 기대 없이 봤던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일본영화는 이제 이제 시시해 별점 6점이 최선이야 생각했던 나를 놀라 자빠지게 했다.

모든 장면이 거의 완벽하게 다 아름다웠다. 사소한데 흥미진진하고. 심지어 스릴러??

<드라이브 마이카>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이브 마이카>를 보면서도 보고 나서도 '아... 역시 천재다 천재.'라는 생각만 했다. 어떤 시대 어떤 상황에서도 주기적으로 천재들은 태어나는구나. 같은 교복을 입어도 다른 교복인 것 처럼 하이패션인 것처럼 굉장히 세련되게 입은 급우를 본 듯한 기분. 러닝타임 179분!! 이 패기는 어쩔 건가. 이 179분은 드라이브, 연극연습으로 대부분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다. 대사와 화면 둘 다 완벽하다. 이런 영화가 있을 수 있나? 특별한 플롯 없이 179분을 흥미진진하게 끌고 나가다니!! 뭐, 원작이 무라카미 하루키이긴 하지만. 하루키도 이 영화보고 놀라 자빠졌을 거 같다. 청출어람데스네 하면서!! 

<드라이브 마이카>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친하지 않은(직업으로서의 동료일 뿐인) 두 사람이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한담으로 시작해서 내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서는 한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적인 이야기고, <드라이브 마이카>는 더 무거운 인생사에 대한 고백이다. 사실 나는 인생사에 대한 무거운 고백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편.

**다희와 만나고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이 해온 대화가 사실은 서로를 향한 독백일 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을 메우기 위해, 혹은 최소한의 사회적인 관계를 위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했던 말들이 어른이 되고 나서 그녀가 나눈 대화의 전부였으니까. 그제야 그녀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자기 방에서 온전히 혼자가 되기를 바랐던 마음,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듣기 싫었던 마음 안에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희가 더 깊은 이야기를 할까 한편으로는 두려웠다는 말도. 사람들은 때로 누군가에게 진심을 털어놓고는 상대가 자신의 진심을 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상대를 증오하기도 하니까. 애초에 그녀는 깊은 이야기를 할수록 서로 가까워진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는 말도.

**괜찮아요. 제가 오늘은 피곤해서....

다희는 미소 지으며 그렇게 말하고 차에서 내렸다. 서운하다,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나, 상처받았다, 예전의 다희라면 그렇게 말했으리라는 걸 그녀는 알았다. 애정이 상처로 돌아올 때 사람은 상대에게 따져 묻곤 하니까. 그러나 어떤 기대도, 미련도 없는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을 걸어 잠근다. 다희에게 그녀는 더는 기대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일 년 / 최은영>

나는 <드라이브 마이카>의 홋카이도행 드라이브에서 차 안 대화 같은 건 부담스럽다. 그런 인생사 고백은 듣고 싶지 않달까.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서의 대화 정도가 적당하다. 이 회사에 오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 소개팅 어플에서의 만남은 어땠는지 사소한 사생활 이야기 정도는 감당가능하나 '내 아내에겐 남자가 많았다.'라는 고백의 대답으로 '내가 엄마를 죽였어요.' 같은 것은 역시 상당히 부담스럽지 않을까. 이 대화를 했다고 치자. 그다음 스텝은? 서로의 내밀한 인생사 고백을 나눈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이 절친베프가 되어야 할까? 아니면 그 고백을 나누기 전처럼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사이여야 할까? 

요즘 나는 시간을 메우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인 관계를 위한 대화조차도 하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이 궁금하지도 않고, 하고 싶은 말도 없으며, 할 말 도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서재에서 일기로 모조리다 다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해소해 버리면 충분하기도 하고. 최은영의 단편 <일 년>과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카>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내가 더 이상 타인과의 한담조차도 바라지 않는 인간이 되었음에 관한 글(일기)만 쓰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이걸 쓸 시간(틈)을 확보하는 것에 한 달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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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8 13: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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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9 12: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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