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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무조건 궁금해야 한다. 세 번째 소설 <고스트라이터즈>에서 나는 한 캐릭터의 입을 빌려 이 진실을 밝힌 바 있다. 이야기는 재미있어도 흥미로워도 안 되고 궁금해야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는 게 넘치는 세상이다. 유튜브 알고리즘만 따라가도 하루가 가버린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언제라도 뒤로 밀려날 수 있다.
하지만 궁금한 이야기라면? 그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계속 읽을 수밖에 없다. 궁금증이 풀려야만 책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김호연의 작업실 / 김호연>
이 책을 읽고 나서 동시대의 한국 소설(등단작 또는 공모전 당선작)의 수준(??)이 궁금해졌다. 도서관의 813 구역에서 2023년 당선작 타이틀이 있는 책 두 권을 빌렸다. 제목은 공개하지 않겠다. 이유는 소설이 너무 별로였기 때문이다.
내가 밥을 먹으면서 보는 유뷰트 일상 브이로그가 있다. 밥을 먹으면서 보는 이유는 딱 그 정도로만 집중하면 때문이다. 그 유튜버가 카페에 앉아서 굵은 책을 앉은자리에서 다 읽는 장면이 있는데, 나는 그 장면이 늘 의심스러웠다. 책을 도대체 어떻게 읽길래 저렇게 빨리 다 읽는단 말인가. 초등학생용 동화책도 아닌데... 하다못해 <마당을 나온 암탉>도 다 읽는 것에는 저것보다 오래 거릴 거 같은데라고 늘 생각했는데, 내가 빌린 책이 <마당을 나온 암탉>보다 더 술술 쉽게 읽히는 책이었다.
'아 이런 책을 읽은 거였구나.'
독서를 치아청결 관리에 비유하자면, 내가 즐겨하는 원하는 독서는 스케일링 같은 것이다. 독서 행위가 내 뇌에 낀 치석 같은 걸 제거해 주는 역할을 할 것. 그래서 나는 한 페이지 읽는데 5분 정도 걸리는 책을 읽는 걸 좋아한다. 1시간 내내 읽어도 12페이지 읽을 수 있는 그런 책. 그런데 내가 읽은 소설은 양치질은 커녕 가글이었다. 그냥 책 한 권 읽었다 하는 느낌이상도 이하도 없는 책이었다. 2배속으로도 봐도 단 한 장면도 놓칠 게 없는 그런 유튜브 영상을 보는 듯한 독서였다. 이 정도까지 수준을 낮추어야 '시장성'이 있는 거구나!!!
김사과 신간 알림을 보자마자 김사과 신간 <하이라이프>를 구매했다. 대충 훝어만 봤는데도 맘에 들었다. 촌스럽지 않아!!!
촌스러운 소설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다. 하염없이 응답하라 1988하고 있는 소설. 2023년에 발표된 소설인데, 여전히 라떼는 말이야 하는 소설. 소설 계의 국힘당이다. 성석제의 <투명인간>(2014. 6월 출판) 도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2007년 9월)같은 라떼 소설은 그만 보고 싶다. 이 책들이 출판되었을 때 읽었고, 싫었다. 뭐 어쩌라고? 그렇지만 <투명인간>은 현대까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읽을 만했지만, 성석제가 주인공의 누나에 대해서 너무 담담하게 서술한 점에서 빡이 차 올랐다. 시발 고생한 건 남동생이 아니라 누나라고!!!!!!!!!!!! 남자 작가의 남자라서 힘들다 징징대는 소설이 너무 읽기 힘들다. 니가 김연수든 성석제든 그 누구라도 싫다. 대신 리모와 캐리어가 등장하는 <달까지 가자>, 옥수수 수염차가 나오는 <불편한 편의점>, 페이스북과 유튜버가 나오는 김사과의 요.즘.시.대 소설이 좋고, 자주 읽고 싶다!!!! 요.즘.소.설!!!
ps. 촌스러운 문청 대학원생이 주인공인 소설은 그만 읽고 싶다. 진짜 어쩌자는 건데?? 얼마 전에 꽤 잘나가는 작가의 소설집을 읽고 한국 등단 소설 작가(나름 문학하시는!!)들은 다들 샤넬도 애플도 인스타도 k pop도 없는 어디 수도원에서 집단생활하나 싶었다. 소설에 요즘 사람의 삶이 없고, 자신들의 대학원생의 삶 뿐이다. 진심 공감 안 됨.
소설 습작하면서 학원 국어 강사하는 주인공 등장하는 소설 개극혐이다. 절대 쓰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