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김에 침대에 누워서 '일을 그만두고 사는 삶'을 상상하며 유튜브에서 '새로운 삶' 혹은 '다른 삶'을 주제로 이것저것 검색해 봤다. 그러던 중 두 채널을 알게 되었다. <김작가tv> <스터디언> 이 두 채널 모두 예전에 내가 정희원(노년내과 의사)의 모든 영상을 검색해서 볼 때 봤던 채널이지만, 구체적으로 뭐하는 곳인지는 몰랐고 알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스터디언은 자기개(계)발에 최적화된 수첩을 파는 것이 채널의 핵심 사업처럼 보였고, 김작가tv는 성공을 위한 성공, 부자가 되기 위한 성공, 성공을 위한 부자 뭐 이런 뫼비우스의 띠 같은 구호가 채널의 자아 같았다. 놀랍게도 두 채널의 공통된 신념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생산성을 높이면(자기개발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거였다.
1. 효율적 시간 사용
유감스럽게도 나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운동에 비유하면 빨리 걷기 30분의 운동효과= 2분의 전력질주(연속 2분 전력 질주가 얼마나 힘든데, 사망할지도 모름!!) 100미터 달리기 18초에도 내 몸이 산화될 거 같은데, 이걸 같은 속도로 2분해야 한다? 불가능!!
내 생각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과다 체력 손실이 반드시 발생하므로 지속적으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체력적으로 불가능하다!!! 라는 것!!!! 매일을 크레이지 모드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시간과 체력은 상관관계에 있으므로 조삼모사라는 것. 시간을 아끼면 체력 소모가 크고 시간을 좀 낭비하면 체력 소모가 덜 하다는 것!!!!!
2. 자기개(계)발
한국에서 자기계발을 하는 인간이 있긴 할까? 다들 자기개발 정도나 하겠지! 싶지만.
자기계발도 하기 싫은 나 같은 인간에게 자기개발이라니!!
생각만해도 숨이 막힌다.
예전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인생 책으로 꼽는, 그 책이 너덜거릴 때까지 읽고 또 읽고, 또 샀다는 사람을 소개받은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한국 기준으로 나보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김하나(<힘 빼기의 기술> 저자)마저도 책읽아웃의 어느 화에서 인생책으로 꼽으면서 이 책을 소개해서 실망 대실망을 하고 말았던 ㅠ. 살아오면서 내가 유일하게 읽은 자기개발서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인데 이걸 읽은 이유는 학업(취업준비)으로 바쁜 남동생에게 읽혀야 할지 말지를 감별하기 위해서였다. 저 책이 인기를 끌기 시작할 때 읽었는데, 남동생에게 이걸 읽는 건 시간 낭비 인생 낭비다라고 전했다. <금수저의 아픈 청춘> 정도가 이 책의 제목으로 적당!
스티브 코비가 말하는 '성공'은 도대체 뭘까? 그건 아마도 역시 부와 명예(사회적 지위)일 거라고 추측해 본다. 나로선 부와 명예가 왜 필요한지, 왜 그것을 위한 습관을 체득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으로 태어나 지향해야 할 유일한 가치는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내 욕망에 충실하게 사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7가지 습관 같은 것은 추려낼 수도 없을 것이고. 공통적 습관이 있을 리가 없잖아.
성공을 목표로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나 자신에게 내면화시키는 것을 생각만 해도 감옥 같고 지옥 같다. 그건 나 자신을 살아내는 게 아니잖아. 단지 사회가 정한 욕망을 살아내는 나 자신일 뿐인데, 그런 인생을 왜 살아야하지?
3. 경제적 자유 vs 경제로부터의 자유
또한 이 두 유튭 채널에서는 '경제적 자유'라는 것도 매우 중시하는 것 같았다.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지만 그 누구보다 더 경제에 집착하는, 구속받는 모습에서 그것이 어떻게 경제적 자유인가? 하는 의문만 들었을 뿐이다. 경제적 자유보다는 경제로부터의 자유(안빈낙도)가 더 현명할 거 같은데.
경제적 자유라는 구호를 곱씹으며 나는 내가 가진 현금의 전체금액을 계산해 봤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이다. 하지만 재테크를 위한 종잣돈으로는 충분히 많은 돈.
서울 모처의 구축 아파트가 12억에 경매물건으로 나왔다는 여동생의 말에 "12억? 그 돈이면 월 100만 원씩 쓴다고 가정하면 100년은 존재할 수 있는 돈. 월 200만 원씩 쓴다면 50년은 존재 가능."이라고 대꾸했더니, 여동생은 "역시 안분지족의 대가다운 발상."이라고 했다.
2004년 김현주, 지진희 주연의 <파란만장 미스김 10억 만들기>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그 드라마의 명대사는 단연 이것이다.
지진희 : 넌 10억이 있으면 뭘 할 거니?
봉태규(대학졸업 후 무직이던가): 10억이 있으면 하루에 5000원씩(2004년 물가 기준) 쓰면서 그냥 살래요. 아무것도 안 하고.
지진희: 넌 어째 젊은이가 야망이 없냐?( 이 비슷한 말을 함)
나도 봉태규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
가끔 검색해서 보는 유튜버가 있다. 주제는 금은보화, 명품가방 등의 패션. 내가 유튜브에서 본 사람 중에 샤넬과 디올이 제일 많은 사람. 과장해서 말하면 신상을 거의 다 구매하는 사람?? 그 유튜버는 50대 여성으로 부산출신(부산억양이 베이스에 깔려 있어서 더 맘에 들었던)으로 자세히는 모르지만 의류 편집숍을 청담동 같은 곳에서 여러 개 운영하는 거 같았다. 영상의 질에 비해서 구독자가 너무 적어서 아쉬웠던. 그제 갑자기 생각나서 이번 시즌에는 또 뭘 샀을까 하고 유튜브에 가봤는데 암으로 사망했다는 영상이 있었다. 3월에 암진단받은 후 11월에 사망. 그 사이에 계속 영상 업로드(파리 등등 여행), 계속 사업. 스티브 잡스가 떠올랐다. 어떤 삶이 더 현명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몇 년째 암 위험군의 삶을 살고 있는 나는 많은 것을 내려놓고(??) 지내는 터라. 그분이 3월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었더라면 회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미 자산이 많으므로 월 500만 원씩 써도 기대수명까지 존재할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부와 성공에 대한 기준이 다르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하루하루 자족하며 그럭저럭 사는 삶이 가장 건강한 삶이라는 생각이고,
그것 말고는 인생에서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낮은 상태에 적응해버리는 것이 제일 나쁘다.'라고 김작가가 어느 책(카네기 같은 사람)에서 읽은 구절을 인용했다. 낮은 상태=안빈낙도? 나를 말하는 건가?? 웃겼다, 낮은 상태의 삶과 높은 상태의 삶을 구분짓는 그런 사고방식이 졸렬했다.
4. 부자들이 뽑은 나쁜 습관 1위
하지만 놀랍게도 내가 이 두 채널을 수박 겉핥기 하듯 보면서 한 가지 건진 명언이 있었으니 그것은 '눕지 마라'이다!!!!!!! 부자들이 뽑은 나쁜 습관 1위!! 그것은 눕는 습관(소파에 눕거나 기대어 앉는 것 포함) ㅋㅋㅋㅋㅋㅋㅋㅋ (난 지금 아프니까)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저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서재방에 가서 앉거나 서 있어야겠다는 대오각성이 일었다.
참으로 시의적절하게도 넷플릭스는 계정 공유를 금지해서 tv로는 넷플릭스를 볼 수가 없게 된 지금. 추가요금을 지불해도 되지만, 굳이? pc로 보면 되는데 굳이 돈을 쓸 이유가? 난 경제로부터의 자유 추구자인데!!(나는 지인 계정에 꼽사리로 무료 이용 중)
눕지 않고(거실 쇼파에 기대어 앉아 멍하니 유튜브를 보지 않은) 하루 종일 서재에서 삐댄 덕분에 이런 긴 글을 완성하게 되었다. 이 글은 나를 더 부자로 만들어 주지 않겠지만, 내 소중한 하루를 다 탕진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지 않겠지만, 나 자신을 개발하지도 계발해 주지도 않았지만.
난 그냥 이글을 쓰는 동안 엄청 즐겁고 행복했다.
이거면 충분
뭘 더 바래?
ps. <페미니즘의 도전>과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이 도착했다. 남은 이번주는 이 두 권의 책에 내 모든 시간과 체력을 탕진할 계획!(몸이 낫지 않아서 이번 주도 내내 안정가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