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내가 권하고 싶은 권태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그것은 아무런 할 일이 없거나, 그리 급할 것도 없는 일을 잠시 뒤로 밀쳐 놓을 수 있을 때, 느긋한 행복감에 젖어서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며 만족스러운 하품을 해댈 수 있는 그런 권태이다. 때때로 그런 권태에 빠져들 수만 있다면, 당신은 하나도 급할 것 없다는 기분으로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운은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 권태에 젖어들 수 있기 위해서는 일찌감치 준비를 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 갖고 싶은 장난감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친구가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또는 엄마가 저녁 밥상에 시금치를 올려 놓았기 때문에 등, 아이가 칭얼댈 수 있는 이유를 미리미리 제거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다행히도 당신은 평범한 일상 생활로 덮여 있는 마을에서 단조로움을 느끼고 있다. 당신은 다락방에 올라가 창문을 열고서, 뭔가 사건이 일어나 주기를 기대하며 밖을 내다본다. 하다못해 집시들을 가득 태운 대형 트레일러라도 지나가 주기를, 그것도 안 되면 오토바이 한 대라도 부-앙 소리를 내며 지나가 주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런! 오늘도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자동차는 단 한 대도 없다! 자, 다락방의 창문가에서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는 동안 노근노근한 시간이 흘러간다. 오후가 거의 끝나갈 무렵, 당신은 다락방에서 보낸 평안하고 느긋한 시간을 흡족해하며 몸을 일으킨다. 나는 그런 당신의 태도에서 당신의 건강 상태를 점쳐 볼 수 있다. 당신은 아스팔트로 덮인 당신 집 앞 도로 위에서 먼지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건강한 것이다. 

한가로움을 즐기는 권태에 빠지기 위해 당신은 일단 성공적인 출발을 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아직까지는 삶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의 삶 속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경탄할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런 당신은 오후 내내 허리를 굽힌 채 거리를 내려다보던 다락방에서 일단 내려오면, 이번엔 틀림없이 멋진 자연과 흥겨움을 약속해 주는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비디오 테이프 녹화기를 들고 떠나는 로마 여행! 아니 영원한 도시 예루살렘으로 가볼까? (중략)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 피에르 쌍소>


권태 감별사 피에르 쌍소 옹의 진단에 의하면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내가 나 자신에게 의아해하는 것이 무엇이었냐 하면, 나는 분명히 이 삶이 너무 지겹고 따분하고 태어난 것이 후회되는 그런 마음인데, 제 3자의 눈으로 내가 내 행동을 분석해보면 하루하루 사는 걸 아주 만족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권태로 인해 절망에 빠진 사람은 자신을 방치하던가 다른 무언가에 중독되기 십상인데 나는 삶에 대한 나의 불만족스러운 견해와는 달리 엄청나게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는 점이다. 


사실 나는 자기애가 너무 강해서 나 자신을 훼손할 수가 없는 부류의 인간일 뿐인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아껴주지 않으면 누가 나를 아껴주나. 이 세상에 태어나짐 당해서 수준 낮은(질서의식이 없는 멍청한 사람들)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공존해야 하는 내가 너무 가엽지 않은가. 그러니 적어도 나 자신만은 나 자신에게 최선을 다해서 잘해주자. 솔직히 나는 그 마음 하나로 사는 중이다. 나를 잘 입히고 잘 먹이고 편하게 해주고 싶고 좋은 것만 사주고 싶다. 나의 자기애는 타인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자기애다. 애초에 남이 나에게 잘해주지 않을 거라는 전제하에 어쩔 수 없지 나라도 나에게 잘해주자라는 식이었기에. 내가 그렇게 된 것의 가장 큰 원인은 내 부모가 나에게 잘해주지 않았던 탓이다. 부모가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는 사람들이어서 부모가 안 해주면 내가 나에게 해주면 되지 하면서 독립적으로 살아온 게 지금에 이르렀다. 


자기애가 강한 독립적인 성격이라서 스스로를 잘 챙기고 살고 있음과 동시에 지루하고 따분하다. 피에르 쌍소에 의하면 나는 지금 '느긋한 권태'의 상태인 것 같다. 그래서 그 따분함을 만회하기 위해서 블랙유머를 찾는데, 내가 찾은 블랙유머는 리사이클 섬유나 에코 코튼으로 만든 의류다. 그냥 웃기다. 그런 것들이. 헛되고 부질없음이 그저 웃길 뿐이다. 또다른 블랙유머는 사치품(일반적으로 말하는 명품)이다. 성실한 노동의 댓가로 벌어들인 숫자를 명품이나 사는 골빈 것들이라고 욕하는 수준낮은 인간들의 욕지거리(주로는 동생이 링크해주는 샤넬런 등등의 명품관련 기사들의 댓글에서 본다. 다른 사람의 소비 취향에 그렇게 달려들어 댓글을 달 일인가 싶지만, 그게 나를 둘러싼 인간들의 수준. 아침 출근길 운전을 하면 알게 된다. 나를 둘러싼 인간들의 수준을 제대로 알게 된다. 차로변경위반, 신호위반, 끼어들기, 꼬리물기, 방향지시등 미사용 등등 즉 이 글을 읽는 너도 당연하다는 듯이 어기는 사소한 교통법규 위반들. 그 사소한 것 하나도 지키지 못해서 어기는 게 대다수 인간들의 준법 수준이고, 그것이 내가 인간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를 들어가면서 그것을 구입해서 일상에서 입고 쓰고 다닐 때 나는 인생이 한없이 하찮고 가소롭게 여겨진다. 



가난한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낸 아버지는 가훈을 '근검절약'으로 정했고,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호구 조사하는 통신문을 내어주면 항상 가훈에 근검절약이라고 적어줘서 날 부끄럽게 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를 보면 돈을 아껴 쓰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반문을 한다. 내가 돈을 아껴 써야 한다면 내가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나는 아껴 써서는 지금 내가 버는 돈을 다 쓸 수가 없어. 재산을 물려줄 자식도 없는데 돈 모아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반문하면 아버지는 당황해한다. 나에게 선택지는 딱 2가지다. 일을 그만두고 돈을 아껴 쓰고 살든지, 일을 계속하면서 사치를 하고 살든지. 둘 다 한심하고 따분하긴 매한가지. 



이 한심하고 따분한 상태가 쌍소가 말하는 아이가 칭얼댈 수 이유를 미리미리 제거한 준비된 상태인가 보다. 이 권태의 상태를 어떻게 즐겨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고 불만족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고작 이게 최선인가? 이게 인생의 최정점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아는 동생은 자신이 나처럼 먹고 살 걱정이 없었다면 딩크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라고 했다. 내가 자식을 낳지 않는 이유는 이 삶이 딱히 누군가에게 권할 정도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이가 들어보니 청춘도 너무 잠깐이고 노화로 인한 각종 질환은 상상 이상이다. 남은 생을 노화로 인한 지병들을 감내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사람으로 태어나서 너무 오래 사는 걸 태어나지 않아도 되는 존재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앞서 태어난 사람으로서의 최선의 도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이 따분한 상태는 먹고 싶은 것이 없는 상태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내 동생은 맛있는 걸 먹는 걸 인생의 큰 낙으로 여기는데 그 즐거움의 치명적인 근심거리는 바로 뱃살이다. 그래서 늘 먹으면서도 살찔 것을 걱정하고 또 걱정한다. 그래서 내가 살찔 것에 대한 그 어떤 근심 걱정 없이 초코칩 쿠키를 우적우적 씹어먹고, 초밥 12피스를 다 먹고, 자바칩 프라프치노에 크림을 얻고 토핑도 추가해서 먹는 걸 보면서 "아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살찔 걱정 없는 사람은 정말 좋겠다 좋겠다 좋겠다." 하는데 사실 절대적으로 먹는 양을 보면 나는 동생의 반에 반도 먹지 않는다는 사실. 



내가 나 자신에게 주겠다는 인생도 사실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예상한 나이에 내가 설계했던 것들을 대충 다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권태의 단계에 이르렀을 따름이다. 영화 <패터슨>의 패터슨을 본받야 할 터. 그것만이 해결책이다. 나는 이 따분함을 극복하고자 인생 성취의 수준을 높인 후 다시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살 생각은 전혀 없기에. 따분함 다음 단계인 관조로 등업 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ps. 현재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절판,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스테디셀러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대체로 자기 계발서만 읽는 남자애들이 주로 말하던 책 제목을 지난주에 <책읽아웃>에서 김하나 작가가 추천해 주어서 제대로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김하나 너마저... 야 만다꼬라메!! 목차만 읽어도 내 눈에 이물질이 낀 것 같아서 안약을 넣아야겠다 싶은 책이다. 성공에 관심 없고요,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에도 관심없으므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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