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3
어린 돼지에게 실지하는 모든 외과적 조취는 마취 없이 행해진다. 임금은 국적이나 성별이 아닌 노동에 대해서 지급하는 것이듯 약품은 이성이나 도덕성이 아닌 상처에 바르는 것이다. 개를 생각해보면 명확하다. 만약 개를 마취하지 않고 이빨을 뽑거나 중성화 수술을 한다면 동물의 권리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정도와 상관없이 아마 사람들은 이를 고문이라고 부를 것이다. 사람들은 개와 돼지는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빨을 자르면 피를 흘리고 살을 잘라 장기를 뜯어내면 고통스러워하며 비명을 지르는 것은 개나 돼지나 마찬가지다. 성서의 황금률을 동물에게 적용해보자면(예수님은 달가워하지 않으시겠지만) 여러분의 개나 고양이에게 나쁜 것은 여러분이 먹는 닭이나 돼지에게도 나쁜 것이다.
439
닭이나 돼지를 기르는 사람들의 배경은 제각각이지만 개를 기르게 된 사연은 대부분 비슷하다. 자영업을 하던 사람이 사업에 망하고 시골로 내려와서 큰 돈 안 들이고 시작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개에게 눈을 돌린 것이다. 농업이나 축산업에 관심은 있지만 상대적으로 자본금이 현격하게 부족한(또는 빚이 있는) 사람이 식용 개 사육에 느끼는 매력을 이해하기 위해선 영구 동력 장치를 떠올려보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일반적으로 축산 농가에서 생산비의 대부분은 사료비가 차지한다. 농장의 수익성은 결국 '동물들이 사료를 얼마나 많이 먹었나?'로 귀결된다. 하지만 개고기 농장에서는 사료 비용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짬은 당연히 공짜고 닭발은 싼 가격(상자당 천 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오늘날의 식용 동물은 "신진대사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값싼 탄수화물 원료(옥수수 가루)를 비싼 단백질과 지방으로 바꿔주는 기계라고들 하는데, 그런 맥락에서 개는 말 그대로 공짜 원료로 돌아가는 기계인 셈이다. 석유 대신 물로 돌아가는 엔진, 사양 산업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개고기 농장이 여전히 성행하고 또 새로운 농장들이 생기는 이유가 바로 이 산업의 특이한,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기형적인 구조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중략)
"개고기는 금지 못 해. 지금 개들이 먹어치우는 짬이 얼마나 많아?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 전체로 치면 어마어마할 걸. 나라에서도 그걸 아니까, 환경 단체에서 지랄지랄해도 내버려두는 거야. 지들도 방법이 없으니까. 그걸 하루아침에 못 하게 해봐. 그럼 그 많은 음식 쓰레기는 다 어쩔 거야? 지들이 먹을 거야? 아님 땅에 묻을 거야? 공무원들은 다 알고 있거든. 답이 없다는 걸. 그러니까 쉬쉬하면서 내버려두는 거지. 환경에 안 좋다 그러는데 이것만큼 환경에 좋은 게 어딨어? 우리가 그걸 태우기를 해? 강물에 쏟아붓기를 해? 사람들은 냄새난다고 손가락질을 하는 그거 먹여서 고기로 만드는 건데. 그러니까 사람들이 가만 보면 참 치사한 거야. 음식 쓰레기 처리하는 데 돈 많이 드는 건 싫지만 그걸 개한테 먹이는 것도 싫다. 이게 앞뒤가 안 맞잖아? 금지할 테면 하라고 해봐. 한 달도 안 돼서 다시 개한테 먹이라고 사정할 걸?"
<고기로 태어나서 / 한승태>
다른 나라들은 음식쓰레기를 어떤 방법으로 처리하는지가 몹시 궁금해졌다.
사육당하는 개의 주요 사인은 장염이라고 했다. 수시로 재발하는 복통으로 인해 결국엔 근본 원인을 제거해버리는 처지를 한 나인지라...만든지 좀 오래된 음식(그렇지만 상하진 않은, 남들은 먹어도 괜찮은) 먹고 혼자 복통으로 고생하는 몸인지라... 개가 장염으로 죽는다는 게 너무 맘에 걸렸다. 이 책에서 언급한 많은 인간의 부덕에 대해서 나름 떳떳했었는데, 음식쓰레기 문제에 대해서는 나도 공범이니...
개사육장에서는 개가 낭비되고 그 다음으로는 저임금 노동자(주로는 외국인 노동자)의 삶이 낭비된다.
저비용 친환경 음식 쓰레기 처리 장치로서의 식용개.
바로 이 점에서 내가 나 자신이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 비관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삶이 행복하다면 심각하게 무지하거나 심각하게 이기적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