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이유없이 가혹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가련한 벌레처럼 가혹한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언니, 이 모두가 신의 섭리다, 망루가 불타고 배가 침몰해도, 이 모두가 신의 섭리다,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신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말할 수 없어요. 섭리가 아니라 무지예요. 이 모두가 신의 무지다, 그렇게 말해야 해요. 모르는 건 신이다, 이렇게......


<레몬> 권여선


모던하우스 시즌3의 어느 에피소드에서 글로리아는 필이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는 이유는 친하지 않아서라고 하면서 그걸 몹시 서운해했다. 하는 수 없이 필은 글로리아에게 화를 냈고 글로리아는 필이 자신에게 화를 내는 상황을 즐기며 좋아했다. -> 친하기 때문에(진짜 이유는 만만해서 무시하기 때문에) 쉽게 화를 내고 예의를 갖추지 않고 그러는 거 딱 질색이다. 친하기 때문에 화를 낸다면 그냥 친하지 않은 사이 합시다. 


모던하우스 시즌4의 어느 에피소드에서 필은 정관수술을 받기로 한다. 하지만 자신은 반려동물이 아니라면서 받지 않기로 한다. -> 인간이야 자의로 중성화 수술을 한다지만 반려동물은 타의로 중성화 수술 당하는 건데, 그것도 주인의 반려동물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징표로. 야만이다. 


저 두 에피소드 모두 역겨웠다. 인간의 무지. 신의 무지.


거실쇼파에 드러누워서 2019년식 장편소설책의 물리적 가벼움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권여선의 장편소설(이게 장편소설이라니......인류의 독서능력은 심각하게 퇴화했구나.)<레몬>을 읽고 있는데,  코알라 친구가 깜짝 방문을 하여 유칼립투스 블랙잭과 리시안셔스와 장미가 보기 좋게 어우러진 꽃다발을 선물해주었다. 참으로 시의적절하구나. 마침 나는 새벽에 일어나서 '유칼립투스 나무와 같은 삶의 방식'을 애찬하는 글을 썼기 때문이다. 오랫만에 긴 글을 써서 기분이 좋았고, 내 맘에 들어서 더 기분이 좋았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니 오타도 있고 문맥이 고르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편집자가 없으니까 그리고 독자도 없으니까 뭐 어떠리. 내 맘에만 들면 되지.

Q. 글을 쓸 때 독자들을 염두에 두시나요?

토니 모리슨 : 저 자신만 염두에 두고 씁니다. 확신이 서지 않는 곳에서는 등장인물들에게 의지하지요. 

<작가란 무엇인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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