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24. 일요일 오후 4시 공연
연극 나생문 리뷰
인간이라는 찌질한 존재에 대한 차마 거둘 수 없는 신뢰
한 때는 내게도 존경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내게 있어 존경이라는 것은, 그 대상이 완벽하다는 착각이 유지됨을 전제로 할 때만 유효한 것이었다.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이의 약점, 혹은 결점 등이 하나 둘 씩 드러날 때면, '그래, 인간은 그냥 인간이지'하는 나를 포함한 인간에 대한 어떤 자조섞인 생각과 함께, 그 존경의 대상에 대한 나마음을 접고는 하였다. 그리고 이 연극 나생문을 보면서 역시 인간은 존경할 수는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인간은 나약하다.
나생문은 전반적으로 진지하게 흘러간다. 공연의 다소 지루하고 무거운 분위기는 다행히도 사이사이 등장하는 가발장수로 인해 상쇄된다. 가발장수는 매우 해학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가끔은 의미심장한 대사를 던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귀속(?)을 앞 둔 스님에게, '조금만 지나면 다른 사람들과 다 똑같아진다'는 것과 같은 말을. 이는 작품의 주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연극은 이 가발장수와 나무꾼, 그리고 스님이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전개된다.
어느 마을의 산 속에서 한 무사가 살해되고 그의 아내가 강간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두고 법정에서 심리가 열린다. 그런데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산적 타조마루와 무사의 아내, 무사의 혼이 빙의된 무당의 증언이 제각각이다. 모든 사건들이 그러하듯 진실은 단 하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든 불리한 정황은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진실을 이야기 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스스로를 지키고 싶을 뿐이며, 끊임없이 자기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인 나무꾼은 이 사건의 전말을 지켜보았다. 그는 객관적 시각에서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법정에서 심리를 지켜 본 스님은, 증언한 이들의 말이 모두 사실인 것만 같았고, 특히 진정성을 담아 슬피 우는 것만 같던 단아한 인상의 무사의 아내를 믿었다. 그러나 나무꾼이 그가 본 것을 모두 말하자 스님은 곧 낙담하고 만다. 법정에서 증언한 세 사람의 증언 모두가 진실이 아니었고, 그들이 각자에게 유리한 진술만 늘어놓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나무꾼은 일말의 거짓도 없이 완전한 진실을 꺼내놓은 것일까. 불행히도 증인으로 불려갔던 그는 법정에서 거짓을 고했으며, 스님과 가발장수에게 들려준 이야기 또한 빠짐없이 복원된 사실의 원형은 아니었다. 나무꾼 역시 이 살인 사건과 관련해서 숨기고 싶은 자신만의 치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발장수의 추궁에 의해 그의 숨기고 싶었던 행위가 드러난 순간, 스님은 이제 사람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어 버릴 것만 같다.
그 때, 갑자기 나생문 뒤에서 쌩뚱맞게도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얼른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서 아기를 안아온다. 나무꾼은 이미 집에 자식이 여섯이나 있고, 비록 가난하지만 자신이 그 아이를 맡겠다고 이야기한다. 나무꾼, 아니 모든 인간에게 실망한 스님은 처음에는 그가 아기를 팔아버릴지 어쩔지 모르고, 믿을 수 없다며 거절하지만 이내 그에게 아이를 내어준다. 나무꾼을 한 번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연극 나생문은 이렇게 마지막을 맺는다.
수능 지문처럼 해석하자면 일반적으로 새 생명은 희망과 같은 어떤 긍정적인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등장한 아기는 생명의 재생산, 그리고 스님이 인간을 다시 신뢰해보려는 계기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일지 모를 인류 멸망의 순간까지, 끊임없이 죽고 또 태어날 것이다. 나면서부터 사회에 속하는 모든 인간은 숱한 다른 이들과 부대끼며 살아야한다. 다른 인간을 믿지 않고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다. 스님처럼 인간에 실망하더라도, 계속 믿어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을 합리화시키면서 사는 인간들 틈에서 우리는 속고, 또 속인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어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어떠한 포장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까발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언급했듯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마 앞으로 내게 존경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존경은 신에게나 어울리는 단어이다. 인간은 존경하고 존경받아야 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고 사랑받아야할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랑과 연민만이 찌질한 인간에 대한 신뢰의 끈을 놓지 않게 해 줄 유일함일 것이다.
뱀발) 남자치고 여자의 나신을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만은, 공연 중의 여주인공 가슴 노출이 좀 불편했다. 영화도 아니고 실제로 사람을 보는 건데 ㄷㄷㄷ. 솔직히 누가봐도 극 중에서 강간당한 거 다 알겠는데, 리얼리티를 위해서라고는 해도 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