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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평점 :
설화의 종류를 구분할 때 '민담' 영역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렇게 얘기를 한다. 부족하고 모자란 주인공이 각종 우연을 통해 성공하는 이야기라고. 혹은 가진 것 없이 평범한 주인공이 지혜를 발휘해 뛰어난 성취를 이루는 것도 있다.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는 바로 이 부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민담요소 3분의 1에 진짜 역사적 사실이 3분의 1쯤이 더해져 있고, 3분의 1쯤은 요나스요나손의 유머감각이라고 보면 되겠다. 한 마디로 대중들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민담에 대해 설명할 때 한 마디 더 붙이는 말이 이것이다. 민담은 재미의, 재미를 위한 재미있는 이야기다. 라고. 그러니까 이 책은 무지하게 재미가 있다.
흑인을 차별하고 한 구역에 몰아 넣고, 분뇨를 치우게 하는 일을 하는 게 당연한 세상에서 태어난 까막눈이 놈베코는 심심해서 '숫자'를 세기 시작했고, 무료해서 그 숫자를 더하고 곱하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세상을 알고 싶었고, 제한된 자원 안에서 최대한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하고자 노력했다. 그녀는 '배운'여자다. 그래서 분뇨통을 치우는 자기 동료들이 인도인의 지능이 떨어진다며 헛소리를 읊어댈때 분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의로운 분노는 '배우지'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 생각하지 않으면 비판할 것이 없다. 시키는대로 말하고 생각하는 게 익숙한 사람들의 입에서는 '똥'만 나올 뿐이다.
이 '배움'과 '배우지 못함'의 차이는 놈베코가 소웨토를 벗어난 다음에도 계속된다. 이 차이는 단순히 '공부'를 하느냐의 문제만은 아니다. 현 상황을 이해하고 정확하게 분석할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엔지니어 판 데르 베스타위전은 꽤 많은 '공부'를 한 사람이었지만 이 능력은 매우 부족했다.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핵문제를 다루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하지만 그 핵을 결국 감당해야 하는 쪽은 이 능력이 뛰어났다.(물론, 홀예르1과 그의 휘발유녀는 좀 달랐지만) 이 이분법이 정의로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론적으로 볼 때 다행한 일이기는 했다.
이 소설은 여기서 시작한다.
'소웨토 공동변소의 모든 분뇨 수거인들이 실제로 까막눈인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어쨌든 그들은 <까막눈이>라고 불렸다.'p.14.
그리고 여기서 끝난다.
'그들은 소웨토의 까막눈이들을 더 이상 까막눈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이 실제로 까막눈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이다!'p.537
차별이 당연한 곳이 차별이 당연하지 않은 곳으로 가는 과정. 그 여정이 이렇게 복잡하고 길고 힘들었다고, 그리고 여기엔 수많은 우연도 필요했다고. 그게 이 500페이지가 가장 말하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