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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1999년 4월
평점 :
여기에 사랑이 없다면 도대체 사랑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은희경의 소설에서 사랑은 비정상적인 부부간의 것(멍) 이거나 부부가 아닌 사람들의 것(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인 마이 라이프), 사랑해서는 안되는 사람들간의 것(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이다. 질기디 질긴 사랑이지만 희미한 것. 사랑을 찾는다는게 누구나 꿈꾸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분명하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찾아보면 생각보다 더 많은 숫자가 이렇게 질긴 사랑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 세상이란 갑의 불행이 을의 행운을 가져다주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정도는 나도 일찌감치 깨친 바 있다.' p.43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에서 '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엄마의 불행이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을 직접 경험하면서 기꺼이 그 행운을 포기해버린다. 이 제로섬게임은 그 이후의 단편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남의 사랑을 훔쳐서 갖게 되는 행복은 언제나 남의 불행을 담보한 것이니까. 그런 이기심에서 비롯된 죄책감을 안고도 사랑을 찾는다. 저 사랑이 다시 없을 것 같다. 죽음으로써 시계를 보지 않을 행복을 찾아 날아가버릴만큼 간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사람은 살고. 다른 사람을 찾고.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버린다.
은희경의 소설은 이야기에 푹 빠지고 싶을 때 읽으면 좋다. 기차에 앉아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면서 창 안에 있는 나를 잊고 창 밖의 풍경속에 빠져들듯이. 가을이 선뜻 다가와 창밖을 바라보기 좋은 시절이다. 은희경의 책을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