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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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감정이지만 누구도 다시 겪고 싶어하지 않는 감정일 것이다. '모멸감'은 어떤 철학자에게는 '생을 억눌리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리고 '생을 억눌린다'는 것은 인간에게 '죽음'보다 낮은 위치에 처한 '어떤 것'이다.

 

최근의 한국 사회를 진단하면서 이렇게 적절한 한 단어를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영화, 소설, 가사, 철학을 아우르는 저자의 방대한 지식의 양에 감탄했다. 이 지식의 향연은 저자가 이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게 해 주는 지표라고도 할 수 있겠다.

 

평범한 것이 점점 '보통 이하'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기에 모멸감의 스펙트럼도 더 넓어지고 있다. '글로벌'한 시대에 '글로벌'한 비교를 하면서 스스로를 '글로벌'한 초라함에 위치시키기 때문에 더더욱 모멸감이 증폭되고 있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더더욱 최고가 아니면 하찮게 여길 뿐 아니라 최고가 되지 않을 거면 시작도 하지 말라며 꿈을 무시해버리는 세대가 안타깝다. 

 

모멸감은 큰 에너지 없이 상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다. 사소한 말투, 눈빛만으로 상대를 자살하게 할 수도 있다. 여러 말 없이도, 잦은 만남 없이도 가능하다. 아니 아주 사소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으로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위험하고 무서운 무기다.

 

뉴스를 보며 우리는 '경제'가 문제라는 생각을 한다. 저 대단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급격하게 성장하던 시기의 우리들이 얼마나 넉넉했던가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곧 '경제'가 살아난다면, 모두가 잘 사는 사회가 된다면, 하는 대답은 모두 회피일 뿐이다. 경쟁 상태에서, 최고지향의 상태에서, 상대로부터 자기의 자존감을 확인받아야 하는 사회에서는 '모두'라는 개념 자체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관계'에서 그 해답을 찾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또 최근의 여러 지식인들이 다시 되돌리고자 하는 사회 공동체의 부활과도 맞닿아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한 관계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사람들. 억지로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다." p.258

 

저자는 모멸감을 주는 행동을 비하, 차별, 조롱, 무시, 침해, 동정, 오해의 범주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리고 모욕당하지 않을 권리를 철저하게 지키는 사회인 '품격있는 사회'를 이야기한다. 이 책을 읽는다면 누구나 상대에게 무심코 던졌던 눈빛이나 단순한 마음으로 했던 말 한마디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반대로 자신이 겪었던 불쾌한 경험이 사실은 모멸감 때문이었던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든, 좀 더 따뜻해지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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