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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1
윌리엄 포크너 지음, 김명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평점 :
'나'는 누구인가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의 '나'는 소설의 줄거리로 보아 '애디'일 것이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은 후에는 과연 '애디'만 죽어 누워있을 때의 이야기일까. 이후 누구라도 죽어 누워 있을 때의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소설 속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서술의 시점이 매 장마다 바뀌기 때문이다. 어느 시점에서 서술하느냐, 그리고 이 인물이 현재 어떤 입장에 처해있으며 어떤 인물인가를 이해하고 있어야만 사건의 퍼즐을 잘 맞춰갈 수 있다.
죽은 '어머니'와 살아있는 '자식들'의 40마일
죽은 '애디'는 4남 1녀를 둔 어머니이다. 그녀는 죽기 전에 남편 '앤스'에게 자신이 죽으면 고향 제퍼슨에 묻어달라고 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무려 40마일이나 떨어진 곳이다. 이 이야기는 그래서 시작된다. 제법 거대한 가족이 '시체'와 함께 40마일의 여정에 오르는 것이다. 무척이나 간단한 줄거리처럼 보이는가? 하지만 '죽음'이 한 인물의 전 생애를 모두 포함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절대로 간단한 스토리가 될 수 없다. 그녀의 생애 전부가 함께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 제각각이다. 남편 앤스는 그녀가 죽자 그동안 미뤄왔던 의치를 끼우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안심인지 위로인지 모를 생각을 떠올린다. 캐시는 어머니의 관을 만드는 데에 모든 정신과 노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이 관인지 어머니인지 모를 정도로. 둘째 달과 셋째 주얼은 3달러를 벌기 위해 일을 나가느라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지만, 어머니가 죽었다는 것을 달은 멀리서도 느낌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주얼은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했던 어머니에게 등을 돌린 채 말을 어머니처럼 사랑하고 아낀다. 그리고 딸 듀이 델은 어머니의 죽음보다도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 때문에 모든 정신이 그곳에 가 있다. 막내 바더만은 자신이 잡아 온 물고기와 어머니를 동일시하며 어머니는 물고기이고 그래서 어머니는 아직 죽지 않은 것이라는 현실부정에 빠진다. 그녀의 부재. 아니 그녀의 존재.
40마일이라는 거리도 문제였지만 비가 와 강물이 불어나고 다리까지 떠내려가면서 그들의 여정은 주변의 시선으로 이야기하자면 그야말로 '미친' 짓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모든 일에 게으르고 무딘 앤스는 그것 하나가 자신이 그녀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약속 인 양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결행한다. 그의 무능력함은 불어난 강물을 여울목으로 건너다가 노새를 잃고, 이때문에 다리가 불편한 캐시의 다리가 다시 부러지고, 잠깐 묵었던 집 헛간에 불이 나서 말과 소들, 아내의 관까지 모두 불에 타버릴 뻔 하고, 그 때문에 달이 잭슨에 갖히는 신세가 될 때까지도 한결같다. 자녀들 모두가 아버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아처럼 보이는 것은 그의 이런 무능력함과 무심함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일부를 남기고 간 그녀 '애디'
결국 아이들은 어머니의 죽음과 이후 여정을 따라가며 어머니와 같은 운명을 일부 자신의 몸에 지니게 된다. 캐시는 다친 다리를 회복시키지 못하고 절게 될 것이고, 주얼은 등에 화상을 입은 데다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말을 잃게 되었다. 달은 잭슨의 철창에 갖히게 되었고, 딸 듀이 델은 몸 안에 다른 사람의 씨를 품은 채 어머니와 같은 운명을 걸어야 할 지 모른다. 그리고 막내 바더만 혼자 현실을 아직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크리스마스 기차의 꿈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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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질이 끝나면, 내 살 위에 그 아픔이 느껴졌다. 회초리로 후려칠 때마다 흐르는 피는 다름 아닌 나의 피였다. 회초리를 들 때마다 나는 너의 비밀스럽고 이기적인 삶 속에 하나의 존재가 되어, 너의 피에 내 흔적이 영원히 남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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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지 : 19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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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 그 때 나는 잊혀진다.
그녀가 남편에게 자신을 제퍼슨에 묻어달라고 말했던 처음은 그녀가 달을 낳은 후였다. 그녀는 그에게 보복하기로 결심했고, 그러나 그것을 숨기기로 했다. 그녀가 달을 낳고 제퍼슨에 돌아가는 것은 자신이 죽은 다음일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처녀'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결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 때에는 코웃음쳤던 남편 앤스가 그녀를 그토록 처절하게 처녀적 있던 공간으로 돌려놓은 이유는 마지막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딸이 어떤 어려움에 처했는지 그녀에게 얼마나 중요한 10달러인지 아랑곳 않고 빌려간 다음 의치를 해 넣고 새 번드런 부인을 맞이한다. '애디'는 그 순간 '번드런 부인'이었던 시절 전으로 돌아가고 그리고 '진짜' 죽음을 맞이한다.